은유의 책 <도시기획자들>

[공지사항]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함께 자라네

- 횔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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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입부에는 얼룩소라는 도시가 나온다. 10년 동안 산속에서 수행을 마친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러 찾아가는 곳이다. 도시 이름이 왜 얼룩소일까? 그곳은 역사상 실제 인물인 페르시아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가 설교했던 도시라고 한다. 그런데 니체는 독수리, 사자, 낙타 등 여러 동물을 상징적으로 등장시키므로 얼룩소라는 이름의 숨은 의미도 따져볼만 하다. 털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얼룩소처럼, 온갖 가치와 습속이 덧입혀진 도시의 질감을 표현한 게 아닐까.

 

도시는 원래 세속적 가치와 규범을 따르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얼룩소 도시도 마찬가지다. ‘화폐가 풍기는 악취를 따라 사람들이 파리떼처럼 꼬이는 곳으로 그려졌다. 사람들은 양떼처럼 서로 닮았고 하나같이 복종함에 익숙하고 판단함에 피로를 느낀다. 차라투스트라가 전하는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에 실망한 차라투스트라는 들을 귀가 없는 자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곧 내가 사랑하는 얼룩소라 불리는 도시로 내려와 머문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브레히트의 말대로 도시는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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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삶의 너른 자리다. 삶이 전개되는 터전이고 삶의 실험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고귀하거나 비천하거나, 인류가 거둔 모든 성취와 인류가 겪은 모든 실패가 도시에 있다. 니체가 꼬집었듯이 돈 때문에 이전투구가 일어나는 시장터이자 개발과 분진의 소음으로 시야가 흐려지는 잿빛 섬이기도 하다. 품이 넓어 상처도 많다. 얼룩소라는 별칭이 서글프게도 어울린다. 그런 도시가 지긋지긋 하다며 떠나는 이들이 한동안 귀촌 행렬을 이루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누군가는 머뭇머뭇 거리며 도시에서 시도와 모험을 펼쳐나간다. 더 나은 도시를 위해서 말이다.

 

이 책 <도시기획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시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책 축제 와우북페스티벌을 탄생시킨 이채관, 도시에서 농사짓는 장사꾼 천호균, 서울 숲과 공원을 가꾸는 이강오, 재래시장 활성화의 주역 오형은, 홍대 클럽데이로 욕망의 물꼬를 튼 최정한, 청년몰과 늘장으로 유통실험에 앞장서는 김병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없애는 유다희. 이들이 도시에서 일구거나 얻어낸 것은 도시의 지리학적, 건축학적 형태들이 아니다. 사람들 표정, 발걸음, 관계, 이야기 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도시의 신(scene)이다.

 

사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말은 모호하다. 그 척도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한국전쟁 이후 도시계획은 건물 짓고 도로 닦는 건설 사업 위주였다. 도시의 외관을 단장했다. 80년대는 이념의 시대였다.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려 했다. 시민의 정신을 무장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들은 개발과 이념의 시대가 낳은 21세기 도시의 삶을 고민하는 도시기획자 1세대다. 예나 지금이나 아스팔트는 정치적 영토이다. 가령, 도시의 빈틈에 주차장을 만드느냐, 헬스기구를 놓느냐, 도시텃밭을 만드느냐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이것을 삶의 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상의 정치로 접근하는 사람이 바로 도시기획자다.

 

그들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전진하는 무사유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가 더 나은 도시를 위해 밤낮으로 일할 때, 그 열심이 낳는 가치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평범한 시민들인가, 토건·유통 재벌 같은 권력자인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도시기획자는 성형 중독으로 일그러진 도시의 표정에 어떻게 생기를 불어넣을까, 끊어진 사람 사이 관계와 이야기를 복원할까 고민한다. 비본래적 존재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의 가난을 무엇으로 해결할까, 대기업한테 빼앗긴 유통의 활로를 어떻게 되찾을까, 주체적 시민이 주도하는 공공의 재구성의 판을 벌일까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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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기획자라는 말이, 참 크다. 과연 도시를 한 사람이 기획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조심스럽기도 하다. 7인의 저자들끼리 우리는 도시기획자가 아니라 도시(에 사는) 기획자라는 진지한 농담도 나눴다. 그들은 도시를 쥐락펴락 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얼룩소 도시로 하강하는 차라투스트라 같은 설교자는 더욱 아니다. 차라투스트라와 문제의식은 공유하지만 행동양식은 다르다. 그들은 도시에 자신의 몸을 포갠다. ‘온갖 사람들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력 탱크 속에 들어가듯 대중 속에 들어간다는 보들레르의 시구처럼, 늘 현장으로 달려가고 현장에서 고민하고 현장에서 답을 구한다.

 

내가 만난 도시기획자는 나는 사람들을 만나 사람답게 되었다고 말하는 겸손한 직업인이며, 파란불로 바뀌었다고 후다닥 건너지 않고 신호등을 한번 굶고 건너는 몽상가이고, 한 걱정에서 또 다른 걱정으로 부단히 흔들리는 외로운 영혼이다. 그러면서도 도시가 주는 선물을 살뜰히 누리는 탐미주의자이다. 즉 우리는 도시기획자를 술어의 자리에 놓고 사유해야 한다. ‘도시기획자는 무엇이다가 아니라 무엇도 도시기획이다란 식으로 말이다. 상상력의 무한증식이 가능한 일이 도시기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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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가, 내가 태어난 서울이 좋다. 누군가 혼잡함과 각박함을 이유로 서울을 등질 때, 그것이 내게는 서울에 머물 이유가 되었다. 서울의 먼지까지 좋으니까 좋은 거라고 우겼다. 서울은 벤야민이 말한 상품 지옥 같은 대도시이지만 연인의 얼굴처럼 지루하지 않고 매번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마법의 시공간이기도 하다. 해질녘 붉은 물을 토해내는 한강처럼 약간 쓸쓸하고 사위어가는 공기, 저마다 단독자로 존재하는 고아 같은 도시의 느낌은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나는 본다. 모던보이 이상이, 기형도가 휘적휘적 지나갔을 거리, 널빤지 같은 하늘 아래 서류뭉치 같은 건물에서 기억할만한 지나침을 목도한다. ‘나 살자고 남 죽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미래가 있겠나외치는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에 나선 광화문 일인시위자의 피켓을 읽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 올라가 빨간약 같이 가난하게 반짝이는 야경을 가슴에 바른다. 도시에서 온갖 시적인 것과 마주친다. 인간의 비참이 서린 곳, 그래서 떠날 수 없는 곳, 도시가 주는 지적 생기에 힘입어 도시를 비판적으로 보았던 벤야민의 눈을 빌어, 나 역시 도시를 상형문자로 낯설게 인식한다. 그런 내게, 그것이 삶인 도시기획자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 <도시기획자들> 일곱 명 각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제나 사람 이야기는 나를 흥분시킨다. 매번 더 낫게 실패하는 그들의 실패한 성공담,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희귀한 어른들의 이야기, 혁명적 물음이 내포된 일상의 말들, 동료 시민을 대하는 따뜻한 윤리 감각, 긴 호흡으로 삶을 사는 태도는 큰 울림을 남겼다. 일곱 명과 대화하고 느낌을 공유하며 나는 모처럼 존재가 무한히 확장되는 인터뷰 오르가슴을 느꼈다. 내가 들은 정보와 느낌과 생각을 손실 없이 번역하고자 했다. 최소한의 개입, 최대한의 표현을 원칙으로 작업에 임했다.

 

이 책이 한 개인의 일대기도 아니고 사업 보고서도 아닌 매력적인 사람 이야기가 되길 바랐다. 한 사람이 어떤 계기와 인연과 동력으로 도시기획자가 되고 도시기획자로 살아가는지 궤적과 불안과 지향을 따라가고 싶었다. 도시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고 자기 삶의 자리를 찬찬히 둘러보게 해주는 책이길 바란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 네가 꼭 써야할 글이 있다며 운명 같은 말을 던진 친구 박희선 편집장에게 많이 고맙다. 우리가 도시를 누비며 같이 마신 커피와 침묵과 한숨과 웃음과 먼지 같은 것들이 쌓여서 이 책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201310월 나의 살던 고향, 목동에서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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