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분엄마는 타고난 씩씩함과 낙천성, 철저한 자기관리로 ‘꿈’을 이룬 희망 캐릭터다. 모험을 즐기며 무슨 일에든 일단 부딪혀보는 에너자이저다. 지하셋방에서 세일즈 여왕으로, 다시 만화 스토리 작가로 변신을 거듭하며 진화 중이며, 가수가 꿈이라고 밝힌다. 그간의 우여곡절, 생기발랄 인생 분투기를 만화 《꽃분엄마 파이팅》에 담아 낸 꽃분엄마, 이은하 씨를 만났다.
'희망 엔돌핀’ 꽃분엄마가 꽃보다 아름다워
홍대 앞. 까만 바바리코트에 커트머리의 그녀가 다가온다. 어딜 봐도 만화에 나오는 꽃분엄마 같은 구석이 없는, 홍대 인파에 섞여도 무리가 없는 세련된 스타일이다.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말문을 열자, 어느새 꽃분엄마 특유의 밝고 다정다감한 수다 보따리가 펼쳐진다. 놀이방 다니던 꽃분이가 벌써 고1이 되었고, 그녀는 현재 세일즈를 그만 두고 만화 스토리 작가 및 카툰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1996년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어요. 남편은 대학원 공부 중이어서 제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꽃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고 정말 쌀독에 쌀이 한 줌밖에 없을 지경까지 갔어요. 이대로 가다간 굶겠다는 절박한 상황이었죠. 서울이란 낯선 땅 에 내버려진 기분이었지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방문판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당시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면 끼니야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힘들어도 내 힘으로 극복해보자”는 결심으로 일자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학원 강사를 한 경험이 있지만 도무지 재미가 없어서 다른 일을 찾던 중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세일즈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한다.
세일즈, 새로운 나를 찾고 세상을 배우다
물론 처음엔 좌충우돌 좌절도 많았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났고, 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웃고, 일찍 퇴근한다고 누가 뭐라는 사람 없어도 매일 6시까지는 꼭 현장을 지켰다. 원칙대로 엄격하게 일했고, 그 결과 팀장으로 지점장, 방문판매 대리점 창업으로 승승장구하게 된 것.
“돌이켜보면 그 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거 같아요. 세일즈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소한 일을 시작하면서 저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했고, 세상을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어느 날은 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끼리 수다만 떨기엔 아깝다. 언니가 스토리를 쓰면 내가 만화로 그려볼게.’ 해서 시작하게 된 거에요. 동생이 만화가거든요.”
그렇게 《꽃분엄마 파이팅》이 태어났다. 벼랑 끝에 내 몰린 꽃분엄마가 엉겁결에 손에 쥔 ‘지푸라기’를 ‘황금 동아줄’로, ‘무모한 꿈’을 ‘당당한 현실’로 만들어 낸 눈물겹고 유머 넘치는 서울살이 이야기 《꽃분엄마 파이팅》. 이 책은 곧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고, 지난 3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기도 했다.
칠공주 중 다섯째로 살면서 다져진 ‘생존’ 내공
이렇듯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절대 기죽지 않고 인생역전 휴먼드라마를 살아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체득한 ‘생존전략’이라고 고백했다.
“제가 칠공주 집안의 다섯째에요. 고만고만한 언니동생들 사이에서 더 챙겨먹으려면 악착같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원래 부지런하고 행동 빠르고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한 실속파였답니다.”
그뿐 아니다. 특유의 씩씩한 기질로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갈아 끼우는 등 집안에서 아들노릇을 도맡아 했다. 그녀에게는 애당초 ‘여자’라서 안 되는 건 없었던 셈이다. 신혼 때부터 외조도 극진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학원강사, 우유배달을 해가며 먹고사는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 학업에 정진하는 운동권 출신 남편의 가치관에 대한 ‘지지’이자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했지 남편을 원망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카툰매니저와 가수의 꿈을 향해 날다
“저는 제 자신을 믿으니까 어떤 상황에 있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생활습관 한 가지 바꾸는 게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모든 열쇠는 자신이 쥐고 있습니다. 편하게 안주하고 싶은 갈등이 사이에서 내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일이 무엇이더라도 늘 밝은 얼굴로, 때가 온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칭찬하면서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요즘 만화 스토리작가와 매니저 등 새로운 일의 재미에 빠져있다. 또한 가슴 한켠에는 가수의 꿈도 키우고 있다. 언젠가 홍대 앞에 작은 문화공간을 마련하여 자신이 노래를 하고, 동생의 만화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낭만적인 계획을 밝힌다. 가만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이름, 꽃분엄마. 그녀는 당당히 밝힌다. 나이와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고. 언제까지나 “꿈을 찾아 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