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다시 살고 다시
어두워지는 까닭은
나 때문이다. 아직도 내 속에 머물고 있는
광주여, 성급한 목소리로 너무 말해서
바짝 말라 찌들어지고
몇 달 만에 와보면 볼에 살이 찐,
부었는지 아름다워졌는지 혹은 깊이 병들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고향, 만나면 쩔쩔매는
고향, 겁에 질린 마음을 가지고도
뒤돌아 큰 소리로 외치는 노예, 넘치는 오기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나를 불러
왼종일 기차를 타고 내려오게 하는 곳
기대와 무너짐, 용기와 패배,
잠, 무서운 잠만 살아 있는 곳, 오 광주여
- 이성부 시집, <우리들의 양식> . 민음사
'나는 광주가 참 좋아요.' 올 봄이었는지, 작년 봄이었는지 모르겠다. 광주역 앞. 기차를 기다리던 나는 가슴팍으로 짱짱하게 파고 드는 남도의 햇살을 쬐이면서 중얼거렸다. "만약에 서울을 떠나면 광주에서 살고 싶어요." 옆사람이 왜냐고 물었다. "따뜻하니까...뜨거우니까." 광주는 온통 따뜻하고 뜨거운 기억 뿐이다. 열아홉 어느 날, 명동성당 앞에서 삭발한 모습으로 거리선전전을 펼치던 조대생 언니의 모습이 날 광주로 이끌었다.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던 광주. 망월동 묘역. 천지사방 무덤만 가득한 그곳, 눈이 맵던 피냄새. 스산하게 흐르던 '이산하에' '타는 목마름으로'. 꽃잎처럼 스러져간 얼굴얼굴들. '네가 떠난지 몇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그대로구나..' 푸릇한 학생의 무덤 앞에 누군가가 써놓고 간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뭔가 울컥 치미는 것이 있었다. '세상은 바꿔야하는구나." 내 몸이 연결된 땅에서부터 두발을 타고 어떤 기운이 흘러들어 온몸으로 차츰차츰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 광주의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날 자꾸 부른다. 내내 내 속에 머물고 있는 빛고을.
피의 부름이려나. 엄마의 고향이 담양이고, 아빠는 서울이지만 광주편이었다.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했고, 김대중 대통령에 의지했다. 투표하면 기호2번.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엄마는 참 좋아하셨다. 기어코 해내셨다고. 사람이 저렇게 끈기가 있어야한다고 하셨다. 민주주의는 좋지만 지역감정이 '문중타령' 만큼이나 불편했기에 마음 무거웠던 어설픈 기억. 이십대와 삼십대를 보내면서 참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지금 내가 사랑의 작대기를 대고 있는 '정신적 반려자'들을 보면 광주를 비롯해 남도 언저리 태생의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다. 기질과 파장이 맞는가보다. 그들을 통해 광주에 가지 않아도 광주에 산다. 김대중대통령을 추모하는 광주시민들 모습이 유독 슬프다. 언젠가 마주쳤던, 백미러로 보았던 택시기사 아저씨 눈. 긴 호수 빼서 물 대주던 식당 아줌마의 눈이 온통 눈물범벅이다. 알 것같다. 국민에겐 '노벨평화상' 수상한 시대의 큰별이었을지언정, 그들에겐 이장님만큼이나 가깝고 무등산만큼이나 크고 든든한 백이었을 테니까. 한 사람이, 한 나라가 다시 살고 다시 어두워진다. 그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