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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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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기 - 원도 작가 얼마 전 정신질환을 앓던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들이 악취가 풍긴다고 집주인에게 전했고,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해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전엔 이런 뉴스를 보면 ‘모녀’에 온통 신경이 쏠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도 보인다. 저 ‘악취 풍기는 시신’을 처리하는 존재 ‘경찰’을 생각한다. 이는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을 글에 부려놓은 사람, 를 쓴 원도 작가 덕분이다. 그가 큰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매일 목도하는 사건의 비참에 눈감지 않을 수 있는 힘. 한바탕 통곡하고 싶은 밤마다 꾸역꾸역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의 소유자다. 용기와 끈기의 원천이 궁금해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원도는 지역민, 여성,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면서 불편을 숱하게 겪었고 ‘힘’을 갖고싶어서 경찰관이 됐다고 했다. ..
은유의 연결 - <경찰관속으로> 원도 작가 원도(27)는 한 지방경찰청 소속 과학수사대에서 일하는 여성 경찰이다.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화재, 살인, 자살 등 ‘죽음의 자리’로 출동해 주검을 수습하고 범죄 혐의점을 확인하는 현장감식 요원으로 활동한다. 스물셋에 경찰이 된 후로 줄곧 그랬다. 생과 사가 뒤엉킨 악취가 밴 현장을 누볐다. 천태만상의 사건,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의 죽음에 ‘끝내’ 무뎌지지 못한 그는 오늘 본 비극을 ‘나’라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썼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자 책으로 묶었다. 제목은 . 마치 ‘관’속으로 출근하는 심정으로 눌러 쓴 이 책은 일선 경찰들과 동네책방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1만5천부가 넘게 팔렸다. 생각 많은 막내 경찰은, 그렇게 본 것을 봤다고 말함으로써 작가가 됐다..
은유의 연결-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용접공, 이라고 쓰지 않고 영어로 ‘웰더’(welder)라고 야학 입학원서에 썼다. 그건 매일 잔업에 시달리고 얼굴에 불꽃 상처가 만발한 삶의 실상을 가려주는 도금 같은 말이었다. 생이 누추해도 폼은 나야 했던 스물하나. 어서 돈을 벌어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검정고시를 위해 간 야학인데 을 만났다. 조선소 현장직 5천명 중 유일한 비혼 여성이었던 ‘진숙이’에게 대놓고 음담패설을 일삼던 아저씨들이 어느 날부터 수군거렸다. “야야, 저기 근로기준법 간다.” 김진숙은 1986년 2월18일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노조 대의원에 당선됐다. 옳은 일을 한다는 기분과 진급하는 느낌으로 시작한 노조활동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다. ‘대의원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유인물을 돌렸다가 얼굴에 보자기 덮어쓰인 채 대공..
백현진, 작업하는 사람 인터넷 검색창에 ‘백현진’ 세 글자를 넣으면 가수, 화가라는 인물 정보가 뜬다. ‘위키백과’엔 그가 참여한 영화와 음반 목록이 주르르 펼쳐지고, ‘동영상’엔 최근 종영한 TV 드라마 개장수로 분한 모습이 나온다. ‘이미지’엔 강렬한 색채의 그림들이 시선을 끈다. 바다 물결처럼 매 순간 다른 존재를 펼쳐내는 멀티플레이어 아티스트 백현진. 한때 ‘연남동 사는 백현진’으로 자신을 소개하던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가 힙스터의 성지로 주목을 받자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백현진’으로 바꾸더니, 지금은 그저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백현진은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붓을 잡는 사람이고,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독보적 화가다. 그가 2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삼청동 PKM갤러리는 ..
시인 문정희 - 본질적으로 시인은 여자다 인생에 한 번쯤 ‘사랑의 눈사태’를 꿈꾸는 자의 유명한 주술,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한계령을 위한 연가」)의 시인 문정희. 그가 눈앞에 있다. 검은색 롱 카디건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시인의 자태와 형형한 눈빛은 존재 그 자체로 주변 온도를 덥혀놓는다. 1969년 스물둘에 등단한 그는 최근 열네 번째 시집 『작가의 사랑』을 펴냈다. 여러모로 드물고 귀한 시집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시인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인으로 살기는 척박한 현실에서 등단 50년간 독보적인 위상을 지킨 사람. 그는 남성 중심의 언어로 짜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삭제당한 여성의 존엄과 목소리를 살려내는 시-업에 일생을 투신했고, 이번 시집은 그 절정을 꽃피웠다. 유일한 무기는 모국어, 창작의 동력은 자유와 사랑이다. 그래서일까. 시..
정신장애운동 활동가 송수헌 '변절했다', '돌았다' 손가락질 받던 시절을 보내고정신장애 당사자 운동에 매진하는 송수헌 한아름방송국 국장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고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 -이상 ‘오감도 제3호’ 그는 ‘국장님’으로 통한다. TV 드라마에 나올 법한 국장 캐릭터 그대로 호방한 풍채에 매끄러운 중저음 목소리를 가진 중년 남성이다. 그의 일터는 한아름방송국.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제작과 운영에 참여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그는 2011년 창립부터 참여한 원년 멤버로 진행자나 제작자로 나서며 ‘보라돌이’라는 닉네임을 썼다. 정신장애인을 ‘미친놈’으로 간단히 낮잡아 부르는 세상이니 만큼 본래 이름 공개를 주저했다. 3년여 방송 생활,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올해부터는 본명인 ‘송수헌’으로 활..
은수연-친족성폭력 첫수기 작가 지옥 9년 기록 10년 작가 2년차, 난 평범해지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딴사람, 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 -김수영, ‘생활의 극복’ 중 휴일이면 종종 도심의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영어 공부 삼매경에 빠진다. 잠시 고개를 들어보면 자신처럼 다들 혼자서 꾸역꾸역 뭔가를 하고 있다. 한 층이 거의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풍경이 새삼 놀라워 중얼거린다. “나는 너희와 다 얘기해보고 싶다. 혼자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니?” 그러는 당사자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서울 거주 30대 싱글 여성이다. 장마철 습한 공기를 머금은 바지통이 다리에 감기는 게 싫어서 반바지를 입었지만 책상물림 생활에 실해진 장딴지가 영 신경에 거슬린다. 젖은 머리 물..
현경 교수 - 혁명가의 성폭력? 예쁜 개한테 물렸다! 몸은 세계를 떠안는다. 현경의 몸은 우주를 업은 듯 가볍게 춤춘다. 이유가 있다. 약한 것들의 ‘신’을 연구하는 신학자로, 참된 존재의 ‘길’을 묻는 수행자로 100곳이 넘는 나라에 머무르고 거주했다. 마르크스주의자부터 인디언 추장까지 그야말로 인류를 만나고 다녔다. 마치 돌아가는 지구본처럼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표정이 이는 이유도 국경, 종교, 계급, 나이, 학문, 예술의 경계에 부딪히고 그것을 횡단하며 자유로이 살아온 까닭이리라. 현경은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 종신교수이자 불교법사이다. 일명, 기독인불자다. 신학을 퍼포먼스와 제의로 표현하는 ‘신학적 예술가’이자 여성·환경·평화를 접목시킨 ‘에코페미니스트’로 불리며 생명을 살리는 ‘살림이스트’를 자처한다. 화려한 사회적 명성의 반대편에 고독한 실존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