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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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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수유너머, 웹꼬뮨의 길 ‘위클리 수유너머’가 어느덧 20호가 코앞이다. 용산참사 1주년에 창간호를 냈는데 반년이 지났다. 이번주 19호 테마 '불편한 연애'가 2회에 걸쳐 나간다. 욕망전문가;; 박정수의 아이디어이고 B급 낭만파인 난 적극 환호 및 동조했다. 사실 모든 연애는 불편하다. 그래도 돈 없어 불편하고 동성을 사랑해 불편하고 장애가 있어 불편한 얘기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다. 흔한 사랑 흔치않은 사연이 재밌다. 주간웹진을 하니까 일주일이 성큼 지나간다. 주위에서 웹진이 계속 나오는 것을 신기해한다. 그럴 만하다. 위클리 수유너머는 무상웹진이다. 인력은 편집팀 3인, 기술팀 3인. 별도의 사무실도 없고 전화기도 없고 상근자도 없다. 필자섭외는 편집팀의 지인들 중심으로 이뤄진다. 고료가 없어도 청탁하면 다들 기꺼이 응한다..
블로그 눈길 2주년 시상식 개설일 2008년 4월 22일. 2년 전 이 맘 때 블로그를 만들었다. 산파는 여럿이다. 맨 처음은 친구가 ‘네가 쓴 좋은 글을 세상과 공유하라’고 추동했다. 헌데 그즈음 나는 너무도 바빠서 블로그질 할 시간이 도저히 없었다. 나의 사정을 잘 아는 민언련 후배가 기꺼이 나서주었다. 티스토리에 방을 구하고 내가 보내준 원고를 일주일 간 틈틈이 올리고 편집해주었다. 기초공사가 끝나고 세간이 들어간 집에 내가 본격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때가 5월초다. 청각장애인 영화감독 박재현 씨와 노트북으로 인터뷰를 하는 사진과 이러한 슬로건을 내 걸었다. 내 생각과 의견을 세상에 제출한다는 것은 운동이다. 내 글이 자본의 신과 싸우는 일에, 사람들의 위엄과 존경을 되찾는 일에 개입하는 한 운동이길 바란다. (아룬다티로이)..
아들의 채식주의 선언 # 먹는 것도 윤리학 열 살때부터 아침에 삼겹살 구워먹고 등교하던 아들이 며칠 전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 저 앞으로 고기 안 먹을래요.” “왜?” “학교에서 다큐멘터리 봤는데 너무 끔찍해서 못 먹겠어요.” “오~ 아들, 네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엄마는 대환영이다만...진짜야?” “네!” “결심 단단히 해라. 우리나라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란다..” 사실 난 믿지 않았다. 작심삼일이겠거니 했다. 근데 제법 완강하다. 아침에 고기먹고 저녁에 고기가 없으면 "반찬이 이게 다에요?"라며 못내 아쉬워하고, 여섯 살 아래 동생이랑 유치찬란하게 지우개 만한 고기 살점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놈이다. 그런데 김치찌개에 야들야들한 돼지고기가 들어가도, 갈색의 윤기 도는 불고기가 있어도 젓가락도 ..
'삶의 네 가지 원칙' 성매매여성들의 공동체 '막달레나의 집'에 갔다. 거실에 걸려있는 ‘삶의 원칙’이 맘에 들어 카메라에 담았다. 막달레나공동체 대표님은 25년간 용산에서 성매매여성들 밥 해먹이고 시집보내고 장례 치러주신 분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위클리수유너머 인터뷰가 올라간다) 1985년 용산역 앞을 지나다가 성매매여성과 어린 딸이 취객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걸 보고 끼어들었다가 그녀들과 살게 됐다. 이건 우연 아니다. 필연이다. 인터뷰 끝날 즈음 여쭤봤다. 인생에 if가 없지만 만약에 그날 거기를 지나가지 않으셨어도 지금의 삶을 사셨을까요? 그랬을 거라고 한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라도 그녀들 안에 들어갔을 거라신다. 25년을 초지일관 가시밭길 건너는 게 누구나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건만.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한 사람..
연아사랑에 눈 멀라 홍대 앞에서 친구랑 떡볶이 먹다가 김연아 선수 금메달이 확정되는 장면을 봤다. 가슴이 방망이질 해대는 통에 간신히 견뎠다. 연아가 울음을 터뜨릴 땐 뭉클했다. 덩달아 손끝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난 그녀를 잘 몰랐다. 수십 개의 CF를 찍고 시대의 아이콘이자 희망의 등불로 이름을 날리는 동안, 그런가보다, 예쁘고 장하다고 생각했다. 입때껏 경기모습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무한도전도 일박이일도 무릎팍도사도 지붕킥도 그런 것처럼, 그저 포털의 메인화면에서 국민적 열풍을 알아차렸을 뿐. 그런데 그날 보니까 정말 잘하더라.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완벽했다. 어느 외신의 보도대로 100M 달리기에서 8초의 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본방사수’로 처음 본 단 한 번의 무대에서 연아의 ..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고작 열흘 만이건만 그새 거리에는 봄기운이 파다했다. 햇살이 눈부시고 바람이 간지럽고 피로에 눌린 탓에 원래 크지도 않은 눈이, 마치 열리다 만 셔터처럼 반쯤밖에 안 떠졌다. 그 작은 눈으로 노선 번호를 잘 알아보고 버스를 탔는데 그만 내리는 곳을 두 정거장이나 놓치고 말았다. 허둥지둥 내려 건너편에서 다시 버스를 집어타고 거슬러 올 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좁혀오는 버스 문틈사이로 겨우 발을 빼냈다. 내 손바닥 같은 활동구역에서 이렇게 해맬 줄이야. 아마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전지훈련 같았던 스위스여행에 익숙해진 몸의 소행이리라. 길을 취재하러 가는 길. 이번 테마는 경복궁 3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직진하면 나오는 통인시장 부근 한옥길이었다. 시내에서 약속을 잡을 때 ..
부자엄마의 생일파티 # 300원은 사랑을 싣고 새해 달력을 받자마자 22일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엄마생일을 학수고대하던 딸. 일주일 전 즈음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글쎄 코트 주머니에 돈이 있지 뭐야. 그래서 문방구에서 볼펜 사왔어. 엄마선물로. 포장할 거니까 나 쳐다보지 마.” 나는 용돈도 없는 꼬맹이 주머니에 웬 돈이 있었나 싶어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르는데 400원 있었단다. 그래서 300원짜리 볼펜을 샀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나미 볼펜이 틀림없군....’ 아들이 자기는 해마다 엄마 생선(생일선물)으로 시집을 선물했다고 자랑했다. 이에 자극받은 딸아이가 자기도 시집을 선물하겠다고 한다. 딸아이 분홍지갑에는 이만원이나 들어있었다. 친인척들에게 받은 용돈이 모였단다. 첫아이 그..
어떤 재회 서울에 60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이틀만에 집밖을 나가 단지내 하얀 눈밭을 보노라니 가장 먼저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사랑 태지도, 못잊은 그놈도 아니다. 예전에 계시던 경비아저씨다. 지나치게 정직한 연상작용에 나 자신도 당황했지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낭만으로 바라보기엔 눈이 산사태 수준이고 도로가 빙판길이라 걱정이 앞섰다. '아저씨가 계셨다면 우리 동네 앞에 눈도 더 많이 치워주셔서 주민들 다니기가 한결 수월했을 텐데...'싶어 아저씨를 그리워했다. 며칠간 눈이 치워진 오솔길로 다니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오늘 처음 주차장엘 갔다. 방학을 맞아 온종일 방과 부엌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냉장고보이 냉장고걸 덕분에 식량이 바닥나버렸다. 대대적으로 장을 보고자 근 5일간 방치된 차를 찾았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