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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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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 그녀의 노래 새벽에 메일이 도착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 어렸을 때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글로 썼는데 수업할 때 읽을 용기가 나질 않아 잠을 설치다가 쓴다고 했다. ‘망설임’이란 단어의 반복에서 20년간 키운 마음의 소란이 느껴졌다. 가해자가 가족이고, 가족인데 가해자다. 피해 자체보다 그 피해를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이 괴로웠다는 그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른 지인에게도 편지가 왔다. 5년 전 애인에게 감시, 폭행을 당한 그는 지난해부터 상담을 시작했고 데이트폭력 피해를 기록하는 책을 준비한다며 조언을 구했다. 보복이 두려워 헤어지지 못하다가 목숨을 건 이별 단행 후 직장을 그만두고 숨어 지냈다고 했다. ..
육아 말년의 소회 강의 시작 직전,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바꾸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둘째 담임샘’이라고 뜬 액정을 보니 가슴이 덜컹. 사고가 났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담임은 아이의 급식비가 넉 달 치 밀렸으니 입금해달라고 한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학교 연계 계좌에 돈을 넣어둬야 하는데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납금을 재차 확인하고는 담임샘과의 첫 통화를 마쳤다. 다행히 열명 남짓한 소규모 강의였다. 양해를 구하고 바로 계좌이체 후 담임에게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시계를 보니 7분 경과, 학부형에서 강사 모드로 돌아와 수업을 끝냈다. 나야 ‘돈’보다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지만 통장에 30만원이 없었으면 얼마나 난처했을까. 불쑥 지난 2..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감색 재킷을 입은 그는 첫날부터 눈에 띄었다. 글쓰기 수업에는 원래 남성이 드문데 그간 개량한복 입은 사람은 있었어도 각 잡힌 양복 차림은 처음이었다. 직업은 회사원. 기성복에 길들여진 몸처럼 생각도 표준화됐을 수 있기에 나는 마음이 쓰였다. 그가 과제를 발표했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근무가 태만한 동료와 일하는 고충에 관한 글인데 몸이 불편한 동료라서 더 선의를 갖고 대했지만 역시 장애인은 힘들더라는 결론으로 흘렀다. 몇몇이 반론을 폈다. “이런 업무 구멍은 비장애인에게도 흔한데요? 일 못하고 회식 다음 날 늦는 상사는 어디나 있지만 그렇다고 ‘이래서 비장애인은 안 된다’고 하진 않아요.” 또 다른 이는 오빠가 시각 장애가 있는데 특진했다며 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일반화하기엔 글에 논거가 약하다고 ..
연민과 배려 사이 한동안 에스엔에스 계정에 아이들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두 아이가 초상권 침해를 주장할까 봐 눈치가 보였고 그보단 다른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 김동준, 이민호군 이야기를 책으로 썼는데 그 아이들이 내 큰아이 또래고 유가족인 부모들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하다. 인터뷰 작업을 하면서 같이 눈물 콧물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자식의 밥을 챙기는 일도 어쩐지 죄스러웠다. 세상이 이렇게나 불의하고 부실하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런 세상에서 나는 ‘아직’ 안전하고 안온하다. 아이에게 고기반찬을 먹이고 하루에 3명이 일하다가 죽는 ‘헬조선’에서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하길 바라며 학업을 뒷바라지하고 가끔 휴가도 간다. 빤한 일상이지만 그조차 단숨에 빼앗긴 이웃의 생생한 고통을..
불행을 말해도 될까요? “밥 먹으러 올래?” 텃밭에서 딴 호박이랑 가지로 무친 나물, 열무김치, 시레기국까지 너무 끝내주는 반찬이 생겼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많으니 오라고 선배가 호출했다. 말만 들어도 침이 고였으나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다. 다음날 지역 강연을 마치고 상경하는데 해가 떨어지자 제대로 된 밥 생각이 간절했다. 나한테 ‘만족스러운’ 집밥을 차려줄 집-사람은 나뿐이다. 역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내겐 배고픈 채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삶의 대원칙’이 있다. 배고프면 남을 미워하고 생을 비관하게 된다. 평상심 회복에 밥만한 게 없다. 메뉴를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검색창을 닫고 선배한테 문자를 넣었다. “반찬 아직 있어?” 택시로 30분. 집밥이 있는 밥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니 갈색 도기의 정갈한 7첩 반상이..
"내가 0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해요." 내가 떠올리는 낭만은 두 사람이 버스에 나란히 앉아 줄 달린 이어폰을 한쪽씩 끼고 음악을 듣는 장면이다. 혼자지만 연결된 느낌, 좋음의 나눔, 적절한 소란과 고요의 공존, 정처 없는 떠남을 동경했다. 늘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싶었는데 그것이 혼자는 아니었다. 같이 있을 때 내 존재는 더 활성화됐다. 운 좋게도 직업으로 바람을 이뤘다. 인터뷰하느라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나눈 깊고 오롯한 대화는 매번 나를 예기치 못한 세계로 데려갔고 그 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서 나는 몸이 닳곤 했다. 2005년도에 자유기고가로 명함을 팠다. 첫 취재가 봉사 경력 30년 된 중년여성의 인터뷰였다. 그 뒤로 블로그에 모아놓은 글의 카테고리 이름이 ‘행복한 인터뷰’다. 누적 147명. 만난 사람은 더 많지만 정말 행복했던 ..
섞여 살아야 배운다 필라테스 강습 시간에 선생님이 나에게 지구만한 고무공을 건네주며 말했다. “팔을 쫙 펴서 남편분 안듯이 꽈악 끌어안으세요.” ‘네? 아니, 왜요, 그다지 그러고 싶지 않….’ 운동기구에 누워 복부 근육에 힘을 주느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순간 공을 놓칠 뻔했다. 나이 든 여성이라도 남편과 자식이 없기도 하다. 저 사랑 넘치는 이성애 가족 판타지를 대체할 표현이 없을까. 고양이? 나무? 베개 안듯이? 그냥 두 팔을 최대치로 늘이라고만 해도 충분했을 것 같다.무심코 쓰는 일상어에 차별과 배제가 배어 있다. 청소년은 무조건 학생이고 고3이면 묻지도 않고 ‘수험생’이다. “공부하느라 힘들겠다”는 말을 위로로 건넨다. 탈학교 청소년, 비진학 학생, 특성화고생은 안중에 없는 존재다. 성인은 결혼-출산이란 이성애 ..
약자들의 급소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살면서 결심해본 적 있으세요? 연극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양구 연출가가 물었다. “담배 끊을 때요.” “회사를 자주 옮겼는데요, 입사할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야 결심해요.” 몇명이 답하자 객석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나도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프리랜서 시절 원고료 떼이고 사장님한테 독촉 전화 걸 때마다 제발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했던, 잊고 살던 좀 우울한 일화다. 연극 는 무산되는 약속의 연쇄와 그로 인한 일상의 여진을 담았다. 주인공 정화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다. 남편이 고공농성에서 승리해 내려왔지만 방 안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회사가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생활에 쪼들리고 급기야 두 아이의 학습지 대금 지불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 딱한 사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