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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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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파수병 / 김수영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와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김소월과 낭만주의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밀란 쿤테라의 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되는 삶’은 요즘 나의 고민과 맞닿는 주제다. 사고가 얼키설키 꼬였을 때, 마음이 싱숭생숭 어지러울 때 왜 글을 쓰게 되는가. 그것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서 미적인 배치를 이루고자 하는 본능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헝클어진 것은 아름답지 않으니까 그것을 머리 빗듯이 차분하게 식별 가능하게 정돈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무심결에 아름다우고자 하는 생의 본능이 글을 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소월은 시를 썼다. 집없음, 길..
허수경 / 늙은 가수 허수경 시집 네 권을 열흘 째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있어. 앞의 7일은 세미나 준비하느라 읽었고 나머지 3일은 후기 쓰기 위해 훑어보려고 담아 다녔지. 어깨 아프네. 오늘은 후기를 꼭 써서 이제 그만 허수경과, 헤어지고 싶다.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 그게 창녀 아닌가, 제 갈길 너무 빤해 우는 거 - 중 제 갈 길이 너무 빤해서 우는 자. 그래서 눈물이 났나봐. 시시쿠나. 라는 표현에서 옳타구나. 했어. 시시해. 하면 푸석한데 시시쿠나. 하니까 촉촉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아직 그리 멀리 가버린 건 아닌데 여기까지 와 버린 길을 돌아 나가기엔 다리에 힘이 없다. 지금 이 포맷으로 이 구성으로 이 강도로 지하철2호선 순..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 황지우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면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어떤 방향을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열대어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네거리에서 / 김사인 그럴까 그래 그럴지도 몰라 손 뻗쳐도 뻗쳐도 와닿는 것은 허전한 바람, 한 줌 바람 그래도 팔 벌리고 애끓어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살 닳는 안타까움인지도 몰라 몰라 아무것도 아닌지도 돌아가 어둠 속 혼자 더듬어 마시는 찬물 한 모금인지도 몰라 깨지 못하는, 그러나 깰 수밖에 없는 한 자리 허망한 꿈인지도 몰라 무심히 떨어지는 갈잎 하나인지도 몰라 그러나 또 무엇일까 고래 돌려도 솟구쳐올는 울음 같은 이것 끝내 몸부림으로 나를 달려가게 하는 이것 약속도 무엇도 아닌 허망한 기약에 기대어 칼바람 속에 나를 서게 하는 이것 무엇일까 - 김사인 시집 , 창비 홍은동 사거리 종로찐빵을 찾는다. 홍제역1번 출구에서 나가서 직진. 어딘가 익숙하다. 내가 학교 다니던 동네에서 한 정거장 넘어오면 이곳이었다. 집과 반대..
같은 위도 위에서 / 황지우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발 좀 그래라) 그 속죄를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말도 나는, 간신히, 한다 간신히하는 이 말도 지금 대학에 있거나 지금도 신문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못 한다 안 한다 그래도 폴란드 사태는 신문에 난다. 바르샤바, 그다니스크, 크라코프, 포즈난 난 그 위도를 모른다 우리가 그래도 한 줄에 같이 있다는 생각, 그 한줄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마루벽의 수은주가 자꾸 추운 지방으로 더 내려간다. 자꾸 그곳으로 가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것 같다 산다..
시세미나 1주년 기념 윤동주문학관에서 지지난주 10월 둘째주 토요일이 시세미나 1주년이었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가 소영씨가 말해줘서 알았다. 소영은 1년동안 나랑 유일하게 같이 시를 읽은 친구다. 생물학적 나이차이가 무려 20살. 하지만 영적 나이차이는 0살이다. 속 깊고 영민하고 문학에 대한 공부가 깊어서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척척 말해주는 고마운 이다. 아쉽게도 사진에는 없다. 시세미나 하기 전에 시간되는 사람 넷이서 서촌에서 만나서 윤동주문학관에 들렀다. 열린우물에서 사진찍고 닫힌 우물에서 시인의 일생을 담은 짧은 영상물을 보았다. 윤동주는 스물여덟에 죽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며 세상의 가장 미약한 생명까지 품은 사람. 지극한 완성형 인간. 이 세상은 태어난 순서대로가 아니라 자기정리가 되는 차례대로 떠나는 건가..
雨日 풍경 / 최승자 비 떨어지는 소리, 위에 떨어지는 눈물. 말라가던 빨래들이 다시 젖기 시작하고 누군가 베란다 위에서 그 모든 기억의 추억의 토사물을 한꺼번에 게워내기 시작한다. - 최승자 시집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최승자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세상을 등지고 포항의 정신병원을 출입하던 그녀에게 한 기자가 "시를 쓰던 당신이 왜 폐인이 됐는가" 묻자 답한 말이다. 토요일 시세미나을 위해 최승자의 세번째 시집 을 꼼꼼히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절망의 와중에서 뭉기적뭉기적 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사람. 그녀가 성냥개비처럼 삐쩍 마르고 일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게 마음 아팠는데, 점점 존경스러운 마음, 부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