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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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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와 소금꽃나무 # 갈까 말까 한진중공업 최초의 여성 용접공 출신, 김진숙 부산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185일차. 이를 두고 ‘여자의 몸’으로 극한의 외로운 투쟁을 전개한다고들 얘기한다. 모두가 한 여성 노동운동가의 입신에 주목하고 칭송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잠시 딴 생각을 했다. ‘그렇게나 오래 집을 비워도 괜찮은 거면 결혼을 안 했거나 했어도 아이가 없거나 아니면 친정엄마가 옆에 있나보다.’ 얼추 적중. 52세 김진숙은 비혼이다. 그 사실을 알려준 친구가 덧붙인다. 아마 김진숙 정도의 인물이 남자였으면 그의 옆에는 헌신하는 여성이 필시 있지 않았겠느냐고. 지난주, 김대리의 대출광고 스팸 문자를 압도한 문자메시지가 있으니 ‘희망버스 타자’는 불온한 속삭임이다. 또 다른 ‘여자의 몸’은 고민했다.남편 ..
<포토에세이> 카페 '마리' 명동 철거현장에서 만난 노란 꽃 오랜만에 명동에 들렀습니다. 명동성당 언덕 지나 옛날 중앙극장 바로 옆에 카페 '마리'란 곳이 있습니다. 여기부터 향린교회 일대 주변지역 상점 11곳은 명동성당 재개발과 금융특화지구 설립을 위한 철거에 맞서 24시간 농성중입니다. 사금융센터를 만들려는 거대 금융건설 자본의 횡포에 소상인들 삶의 터전을 고스란히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싸우고 있습니다. 용산- 홍대두리반- 명동으로. 철거투쟁의 지도가 눈물처럼 번져갑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3시경에는 급작스레 용역이 들이닥쳐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담요로 덮고는 입구의 유리문을 다 깨부수었다고 합니다. 아비규환의 사태. 트윗에 이 소식이 알려지고 시민들과 홍대 두리반을 지키던 인디밴드, 날날이 외부세력, 활동가들이 모여서는 밤 늦도록 '기타치고 춤추고' 신나게 ..
두리반 승리와 파티하쥐 기사 * 두리반 투쟁 531일째인 6월 8일 철거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오늘 현대자동차 노조원 자살로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지만, 어쨌든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저희 파티를 물심양면 도와주신 두리반 사장님 내외분과 그 컴컴한 동굴같은 두리반을 지키던 인디밴드, 문화투쟁생활자들 면면이 떠올라 뭉클합니다. 우리 연구실 동료 안티고네도 두리반을 함께 지켰는데 어제 모여서 그랬대요. 칼국수집 새로 열 때까지 우리는 울지 않겠다.. 너무 기쁘면 그 기쁨이 달아날까봐 울지도 못하죠. 먹먹합니다. 파티할 때 순박한 사장님 무대에 올라가셔서 두 주먹 쥐고 "투쟁~" 딱 한마디 하던 게 생각나서 좀 웃기기도 했고요. 투쟁의 티읕도 모르던 사람들을 투쟁하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두리반 승리와 파티하쥐에 관한 좋은 기사가 미디어..
쥐그림 공판있던 날 5월 13일(금) 오전 10시 정수샘 결심 공판있었다. 헐레벌떡 달려갔더니 10시 10분. 최근 방문이 잦아 친구네 사무실처럼 정이 들어버린 서관 525호실 앞에는 연구실 동료들이 앉아있었다. "왜 안 들어갔어?" "사람 많다고 방청객 통제하네요." 이런 경우는 없다는데 암튼 밖에서 기다렸다. 5분쯤 후 공판이 끝났다. 언론에 발표된 대로 결과는 벌금형. 박정수 200만원, 최지영은 100만원. 무죄가 나왔어야 마땅하지만 저들이 하도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과도한 판결을 염려하기도했다. 안도와 울분의 감정이 교차했다. 독일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지영은 집행유예가 나오면 곤란할 판국이었다. 서둘러 로비로 빠져나갔더니, 그야말로 '구름'같은 취재진이 기다린다. 예상치 못했다. TV에서만 보던 그 장면. 카메라 ..
한일 비정규직노조의 만남 - 청년유니온과 프리터노조 메이데이가 지났다.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곤 했던 노동자들 푸른 함성이 해마다 잦아든다. 일용직, 파견직 등 깃발 없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아무려나, 바람은 불고 꽃씨는 날린다. 현해탄 건너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121주년 메이데이를 맞이하여 서부비정규센터의 초청으로 일본 프리터 노조 활동가 와타나베 노부타카(43), 후세 에리코(29) 씨가 한국을 찾았다. 이대, 연대 청소노동자를 만나고 재능노조 장기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4일간 일정을 마친 두 사람은 귀국 직전 김영경(31) 청년유니온 위원장과 막바지 데이트를 즐겼다. 위클리 수유너머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날 만남은 5월 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일본 프리터 노조는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트렌스젠더·외국인..
봄날, 내 삶의 기막힌 법정 드라마 쥐그림 그래피티 제 3차 공판이 있던 지난 금요일, 교대방면 녹색열차에 몸을 실었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제부터 나의 핸드폰은 24시간 재난대책본부다. 친구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법원 가.” “어멋, 거긴 왜?” “서태지랑 이혼하러.” 잠꼬대가 아니다. 지난 1박 2일 간 나는 이지아에 빙의될 정도로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손가락으로 덧셈과 뺄셈을 해가며 연도별로 서태지의 타임라인을 짜맞춰보았다. 일련의 정황이 맞아떨어지나 현재의 상황은 논리적으로 독해불가다. 사랑하다 헤어지는 건 이해되지만 왜 하필 지금 ‘소송’까지 이르렀을까. 고심의 와중에 ‘전(前) 남편 서태지’ 이런 기표가 참으로 성가시고 불쾌했다. 처자식 딸린 유부남 서태지는 몰라도 이혼과 태지의 순서쌍은 단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
병역거부자 현민 면회기 일년 전 현민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위클리수유너머 창간 파티에 꽃처럼 예쁜 화과자 세트를 들고 왔다. 청년이 좀처럼 고르기 힘든 선물을 그는 섬섬옥수 긴 손가락으로 건넸다. 이리도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가 거친 옥살이를 어찌 견뎌낼까 안타까웠다. 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에 현민은 병역거부자의 옷을 입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권력의 심장부로 날아가는 전사가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비상하다 갇혔다. 여름 즈음 현민의 면회를 다녀온 수유너머R 친구들이 이구동성 착찹한 심정을 토로했다. “면회 끝날 때 민이가 울어서 마음이 안 좋다”고. 현민이 군대를 거부한 것은 ‘군대가 싫어서’라고 했다. 평화운동가로서의 대의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 아니며 그냥 싫다는..
고병권 '렛츠 비마이너! 민주주의의 영원한 슬로건' 혹독한 추위가 물러가고 독재자 무바라크도 퇴진한다. 봄이 오는 걸까. 언론마다 이집트 민중들이 환호하는 사진을 내걸고 민주주의 승리라고 표현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거시기’ 하다. 민주주의. 그거, 내겐 꼭 단물 빠진 ‘사랑’처럼 사기 같아서다. 어설픈 민주화의 봄 겪고 나니 민주주의가 좋은 건지조차 헷갈린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안다. 양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단지 오래된 감정이 참사랑은 아니듯이 다수결의 지배가 민주주의는 아닌 거다. 때마침 고병권이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2월 11일 장애인언론 창간 1주년 기념 특강.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열렸다. 휠체어로 가득 메워진 강연장, 그 자체로 북적북적 열기가 후끈하다. 대개 공공장소에 사람이 몰리면 휠체어가 한두 대 정도인데, 여기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