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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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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무리짐승이니까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묻는 질문을 구별하려는 노력, 이것이 언어의 순결함이다. 사실이 먼저 있은 후에 의견이 있을 뿐이다.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가는 세상이 민주주의다. 여론이 사실을 뭉개버리는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김훈, 김훈의 지적대로, 우리는 여론이 사실을 뭉개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여론몰이의 일등공신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부패언론과 일신의 안락과 소비의 삶을 부추기는 영혼 없는 공중파 방송이다. 여론의 힘으로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업은 이명박이 ‘다수결’로 대통령이 되고, 이미지 정치에 힘입어 콘텐츠가 부실하기 그지없는 박근혜가 ‘여론조사’에 따라 차기 대통령 후보 1위로 꼽힌다. 파업은 국가경제의 기반을 흔든다는 여론, 노무현은 말을 함부로 한다는 여론, 이혼가정 아이들..
<아큐를 위한 변명> 중심주의를 넘어 열린사회로 봄바람을 타고 온 책 선물 . 기다리던 책이라 얼른 잘 읽고 정성스럽게 리뷰 해드리고 싶었는데 어느새 여름이 되었어요. 빠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글자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상수작가님이 왜 이 책을 썼는지,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알아듣고 싶었어요. 들을 수 있는 귀가 될 때까지 기다린 거예요. 그리고 찬찬히 곱씹어 읽다가 이런 구절을 봤네요. “질문이 없이는 이해를 구성할 수 없다. 낯선 시선이 없는 이는 아무런 질문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은 늘 낯선 사태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갈망하는 우리는 모든 질문에 대하여 관대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한평생 하다가는 일이란 결국 묻고 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86) 지난..
<로쟈의 인문학서재> 나의 무능력을 위로하는 '철학의 무능력'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 정의 노짱 돌아가시고 한겨레에서 추모기획으로 노짱 주변사람들의 회고담이 연재됐다. 변호사 동기에 따르면 노짱이 그랬단다. '이라크파병 반대해줘서 고맙다'고. 그 기사가 한없이 슬펐다. 힘없는 약소국 대통령의 자리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와 아픔이 느껴졌다. 노짱이 이라크 파병했다고 여전히 뭐라하는 친구들의 면..
<고민하는 힘> 고민은 없고 뻔한 답만 있다 용하다는 점집에서 점 보고 온 기분이 든다. 용하다는 얘기는 에서 처음 들었다. 월화수목금 5일 동안 삼등분으로 접혀오는 신문 한 번 펴지 않고 분리수거에 직행하는 경우는 있어도 토요일 신문은 반드시 펴본다. 왜? 책 섹션이 있으니까. 기억하건대 이 책의 소개는 훌륭했다. 그야말로 싸구려 커피 한잔에 별일 없이 사는 울덜이 봐야할 책이로구나 싶었다. 서점에 갔다가 책 표지에 적힌 ‘불안과 고민의 시대, 일본 100만 독자를 일으켜 세운 책!’ 에 또 혹했다. 고민하는 힘이 살아가는 힘이란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대로 낚였다. 목차를 폈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전부인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등등 나름 추려낸 삶에 관한 아홉 가지 문제설정은, 드라마에 꼭 나오는 ‘불륜’..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매력적인 칸트씨 니체를 읽다보면 칸트의 벽에 부딪친다. 칸트를 공부하기 위해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를 읽었다. 글맛이 살아 있는 훌륭한 철학요리사 진은영에게 고맙다. 니체, 들뢰즈, 칸트의 서당 주변을 삼년 정도 어슬렁거리며 들었던 것들이 조금 도움이 됐다. 용감하고 매력적인 칸트씨. 일단 정리를 하다보니, 나와 세계의 존재근원을 파헤치는 철학공부를 위해서 칸트는 반드시 통과해야할 관문이었다. 니체가 망치로 부수어버리려고 했던 주체성, 동일성의 철학은, 니체보다 한 세기전 먼저 신의 죽음을 알렸던 칸트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 칸트 고유의 문제의식 칸트는 이렇게 물었다. ‘인간 스스로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느냐, 참된 인식의 방법과 절차는 무엇이냐’ 이는 중세인은 결코 물을 필요가 없었던 질문이..
<한국도시디자인탐사> 삶을 약속하는 디자인인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세 군데를 기웃거린다. 인문, 시, 예술 코너다. 누군가 오래 관찰하고 사색한 결과물을 아름다운 언어으로 엮은 것, 거기서 우러나는 향기는 항상 날 취하게 한다. 예술 중에서도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디자인에 관한 책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그림도 멋있고 하나의 작품이 태어나기까지 생장스토리도 '인간시대' 못잖게 뭉클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어지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꽃 꺾듯이 몇 권의 책을 주섬주섬 사모으기도 했다. 김민수 교수는 서점에서 내가 향내에 취해 코를 킁킁거리다가 찾아낸 분은 아니다. 4년 전 즈음 밥벌이용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초기에 선배가 도움을 줬는데, 선배가 자기의 글쟁이 친구들에게 내글을 보내서는 '지도편달'을 부탁했다. 그 중 한 선배가 ..
<눈먼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아고라' 아고라에서 글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죽은 글이 없다. 농수산물시장처럼 팔닥팔닥 살아있다. 최근 용산참사를 비롯해 주로 정치적인 사안이 핵심 이슈가 되고 노골적인 집회공지나 선동글도 많지만, 아고리언들이 던지는 대개의 화두는 (정당)정치가 아닌 삶의 문제로 인식된다. TV나 신문을 통해 접하면 같은 사안이라도 '국회'나 '청와대'의 것. 즉 나와 먼 얘기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아고라의 복닥거림 속에 빠져 있노라면 금세 정치적인 회로로 사고의 흐름이 세팅되어 '세상일에 열받고 화내고 욕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이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현대인은 늘 수많은 자극적 영상과 사건에 노출되다보니 험한 일을 겪거나 보아도 화내지 못하고 무덤덤해진다. 마치 짖지 못하는 개처럼 무기력하기 십상이다. 보아도 보..
<입속의 검은잎> 도시는 영혼을 잠식한다...2 # 보들레르와 기형도(1960-1989) 모든 대도시가 ‘불행’과 ‘결함’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보들레르가 노래한 ‘파리의 우울’은 ‘서울의 우울’과도 들어맞는다. “1848년 이후의 유럽은 모든 인간적 관계의 외화(外化) 및 물화(物化), 분업, 분해, 엄격한 전문화, 사회적인 연결의 불투명화, 개인의 증대되는 소외와 반항 등의 모순들과 더불어 완전히 발전된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세계로 진입하였다.” 6.25 이후 한국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근대화 바람과 개발지상주의 속에서 노동착취와 인간소외의 시동이 걸리던 시기에 기형도는 태어났다. 경제성장의 거센 회오리에 휘말려 함께 성장했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존엄을 앗아가는 삶을 목도하며 어른이 되었다. 기형도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풍으로 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