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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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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 등록금 알바생의 죽음 군대 제대하면 적어도 일주일, 아니 한 달은 마음껏 놀고 싶을 것 같다. 가난한 청춘에게는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제대 다음날부터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 자리로 직행, 이마트 냉동기 점검 작업하던 황승원 씨가 참변을 당했다. 사인은 가스중독이다. 일이 힘들면 그만두라는 엄마의 말에 ‘다른 업체에선 월급 150만원 받기 쉽지 않다’고 했단다. 아버지 사업실패로 고교진학을 못했고 검정고시 치르고 서울시립대에 들어갔다니 공부를 잘하고 착실했던 모양이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들. 그런 자식을 바라봐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늘 아들에게 미안했다”는 엄마의 통곡이 나의 가슴을 친다. 오늘(7월4일) 1면 기사다. 요 며칠 시험기간이라 대낮부터 얼굴 맞대고 있는 아들에게 ‘너가 너무 고생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개와 샐러드 그리고 민주주의 수유너머R 심야합법강좌 '저자와 함께 읽는 '가 지난 6월 7일부터 4일 연속 열렸습니다. 첫날 강의 제목이 '개와 샐러드, 그리고 민주주의' 입니다. 저자 고병권은 "제목은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몸이 안 풀려 죽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일각에서는 '단기유학파로서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며 '영어로 강의해도 좋다'고 권했건만, 극구 한국말을 고집했습니다. 민주주의 강의안에 갑지가 웬 개?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말했죠. "나는 개다." 어떤 개인가 하면, "탐욕과 불의에 대해서는 사자처럼 사납지만 선물에 대해서는 사슴처럼 다정한 개"입니다. 또 왜 샐러드일까요. 샐러드에 얽힌 사연을 일부 공개하자면, # 플라톤이 길을 가다가 샐러드를 씻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한 마디 던졌다. “네가 디오니시오스 왕에게 조..
박정수 - 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새책 왔숑~ 새책 왔숑~" 박정수 수유너머R연구원의 책이 나왔어요. 제목은 바로 어제. 3월 15일 (화) 이날은 수유너머R 화서회 있는 날. 라고 ㅋㅋ 연구원들이 모여서 책 읽고 회의하고 수다 떨고 그럽니다. 지난 겨울, 박정수가 말했죠. "우리 화서회 하는 날, 하루라도 밥 같이 해먹자~" 그래서 시작됐습니다. 화서회 밥회동. 첫 메뉴는 산채비빔밥. 연구실 주방시설이 열악한 관계로 각자 집에서 나물을 준비해왔죠.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오뎅볶음, 멸치, 묵은 김치 등등. 풍성한 밑반찬이 오르고. 현식이는 난로 위에서 계란후라이를 했다죠. 소꿉놀이에 들어있는 모형보다 더 정교한 계란후라이로 산채밥의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비빔밥에) '색감이 살아있다!' 탄성을 지르며 참기름 한방울 떨어..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쌍용차조합원 죽음을 애도하며 얼마 전 쌍용차 노조원이 임씨가 죽었다. 13번째 사망자다. 쌍용차 사태 당시 1년 후 복직이라는 약속을 받고 무급자로 있던 조합원이 ‘차일피일 복직을 기다리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더 안타까운 사연은, 이 노동자의 아내가 지난해 4월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둘 있다. 고2아들과 중3 딸. 부모가 일 년 사이 잇달아 세상을 등졌다.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이다. 졸지에 고아가 된 충격도 크겠지만 지난 2년간 부모의 피폐한 처지를 겪어내는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쌍용차 노조원 부부 죽음의 사연연이 전해지면서 모금이 전해진다고 한다. 공지영씨가 500만원 보내고 정혜신 전문의가 아이들 상담치료를 지원한다고 기사가 났다. 나도..
문학의 공간 - 카프카와 작품의 요구 모리스 블랑쇼가 누구냐. '쓴다는 것은 매혹이 위협하는 고독의 긍정으로 들어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이다. 더없이 클래식한 표현. 왠지 프랑스에서 태어나 걸음마 떼면서부터 철학을 시작하여 문청을 거쳐 사상가로 깊은 주름을 만들어낸 프렌치코트 깃 세운 노신사가 떠오른다. 맞다. 1907년에 태어나서 2003년에 돌아가셨으니 참 오래 사셨다. 철학과 문학비평 등등 작품이 많다. 이 주저서로 알려졌다. 그 책을 넘기면 '철학책'스러운 관념어들이 나열돼 있다. 본질적 고독, 문학의 공간, 작품과 떠도는 말, 릴케와 죽음의 요구, 영감, 문학과 근원적 경험 등등. 예상대로 읽기가 수월치 않다. 강밀도가 높다. 그러니 고급수제초콜릿처럼 한번에 읽어치우지 말고 혀에 품고 녹여야한다. 글을 눈에 바르고 있으면..
카프카 <소송> 읽혀지지 않는, 읽고싶어지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렇게 읽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와. 진짜 재밌더라.” 세미나 시간. 쥐-그래피티 이후 예술가를 참칭하고 다니는 박모강사가 들떠 말한다. 예술적 감성이 폭주하는지 요즘 들어 음악에도 부쩍 관심을 보이는 그. 예술가연 한다고 나한테 놀림을 당하는데, 카프카 소설마저도 솜사탕처럼 스르르 소화시킨 모양이다. 나는 푸념했다. 소설은 역시 나랑 안 맞는다고. 읽고 있으면 따분하다고. 특히 카프카는 난해하다. 내러티브가 익숙하지 않다. 골짜기를 탐험하면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구조. 정상은 끝까지 나오지 않고 어둠도 걷히지 않다가 종말에 와서는 무죄를 밝혀내지도 못하고 맥없이 죽는 주인공이라니. 한 없이 건조하다. 물론 해설서를 보면 ‘작품의 의의’를 이해는 하지만 읽으면서 책에 머리 박..
나는 왜 쓰는가 - 정치적 글쓰기에 투항하다 어느 날 서점을 휘 둘러보는데 문학이랑 비소설 코너에 공지영 책이 십여 권 깔려있었다. 워낙 대중적이고 구매력 높은 작가니까 서점으로서는 당연한 처사겠지만 독점현상이 안타까웠다. 공지영보다 더 문장력 좋고 문제의식 뚜렷한 작가들 책도 많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권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식 입에 밥 한술 더 넣어주는 엄마의 마음으로 영양의 균형을 고려해서 독자의 편식을 막아야한다. 서점의 윤리다. 공지영 에세이를 훑어봤다. 삼십대에 쓴 듯했다. 아무데나 펴서 읽다가 눈길이 멈췄다. 소위 성공한 작가가 되고 나니까 각종 청탁 인터뷰가 밀려오고 거절하면 욕먹고 힘들다...그런데 쓰고 싶은 글 쓰고 10만원 20만 원짜리 사보원고 안 써도 돼서 좋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 심정 백..
<김예슬 선언> 사라진 물음, 이상한 물음, 필요한 물음 지난 봄 ‘시대의 양심을 찌른’ 김예슬 선언이 한 달 뒤 책으로 나왔다.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대자보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럽고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었다. 그날의 가슴 뛰고 울컥하던 감동이 서서히 잦아들 즈음이 되니 ‘읽어볼까’ 마음이 동했다. 그런 거 보면 확실히 책도 시절인연이 있다. 만약 출간 즉시 읽었으면 지금처럼 차분히 새록새록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다. 시대의 양심을 찌른 빛나는 시어(詩語) 내용은 대자보에 붙은 김예슬 선언을 줄기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나의 이야기, 적들의 이야기, 거짓희망에 맞서기 등. 그런데 아니, 이럴 수가.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쉰다. 이건 조단조단 풀어낸 산문이 아니라 날카롭게 벼려낸 빛나는 시어다. 물 흐르듯 읽히는데 뜨거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