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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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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 - 망각력 기억증에 대하여 는 그의 사상이 집약된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그중에서도 제2논문, 기억과 망각에 관한 해석은 내게도 무척 감동적이고 유용했다. 그전만 해도 기억은 우월한 능력(기억력), 망각은 골치 아픈 병(건망증)이었다. 공부할 때나 일할 때나 일상에서 망각신이 강림해서 일을 그르친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또 정작 악몽 같은 일은 생생히 떠올라 괴로웠다. 그런데 니체는 망각이 단순한 타성력이 아닌 “적극적인 저지 능력”(망각력)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적, 자신의 고난, 자신의 비행을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 즉 약자의 원한을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강자는 그런 기억에 대단한 망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미라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한 모욕과 비열한 행위를 기억하지 못했고, 이미 잊어버렸..
공부하는 삶, 학자적 삶에 대하여 니체 공부하면 행복해져요? 누가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흑마늘의 효능을 묻는 것이나, 요가하면 살 빠지느냐는 질문처럼 들렸다. 단답형의 명쾌한 답변을 해줘야할 것 같은데 확신이 없었다. 니체가 행복의 특효약이라면 이론상으로는 우리나라에 내로라하는 니체전문가들. 번역자들이 가장 행복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머뭇거렸다. 난 니체를 읽으면서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은 엄청 괴롭고 자학했다. 문장이 난해하고 맥락이 안 잡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좋으니까 봤겠지. 어려워서 낑낑대고 열 불나는 ‘스팀현상’이 은근히 중독성 있다. 끝 맛이 달달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시대와 전면적으로 대결하면서 세계와 인간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자신만의 사상적 결과물을 정리했다는 게 보통 생의 의..
교육자에 대하여 # 교육자는 해방자다 니체에게는 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두 명의 스승이 있었다. 쇼펜하우어와 바그너. 니체는 초기저서 세 번째 논문 ‘교육자로서 쇼펜하우어’에서 쇼펜하우어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이는 곧 니체의 스승관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니체는 말한다. 좋은 스승이란 ‘해방자’이어야 한다고. 무엇을 해방시키나? 바로 한 사람을 관념의 감옥에서 풀어주는 것으로, 자신을 직시하도록 돕고 그릇을 키워주는 역할을 해야 참스승이라는 뜻이다. 니체가 여러 대륙을 여행한 사람에게 인간의 공통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게으름과 겁이 많다는 점'이라고 했단다. 이 게으름과 소심함이 문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이 단 한번, 유일무이한 존재로 세상에 존재한..
동정-연민에 대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 잠실에 살았는데 무악재로 학교를 다녔다. 학교가 거의 산꼭대기라 교실까지 가려면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새벽6시 전에 집을 나섰다. 겨울이면 캄캄하고 바람이 매서웠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나와 청소부 아저씨뿐이었다. 슥슥슥 비질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매일 아저씨를 보면서 이렇게 추운데 고생하시고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턴가 청소부 아저씨가 불쌍했다. 아저씨네 집이 찌그러져가는 판자촌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했던 거 같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계속 가난할까?’ 열여섯 소녀의 질문은, 마흔을 앞둔 내겐 화두가 됐다. 청소부 아저씨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은 자본적 가치로 구조화된 삶에 대한 연민으로 확대됐다. 내가 그러했듯이 가난은 불행하다는 믿음, 가난..
비극의 탄생, 모진고통조차 긍정하는 디오니소스 니체는 그리스를 좀 편애한다. 니체가 추구하는 강자, 고귀하고 역동적인 삶의 원형을 그리스인들에게서 찾고 적극적으로 예찬 옹호한다. 은 그리스 예술정신에 대한 예찬을 엮은 책인데, 결론은 삶의 문제로 돌아간다. 삶을 충실하게 실현한 고대 그리스 비극을 탐구하면서 니체가 살았던 당대 학문과 시대에 대한 비판을 곁들인다. 니체가 보기에 근대 예술과 문화는 순수성을 상실하고 상업적이고 천박해졌다. 산업으로서의 문화만이 살아남는 곳, 자유로운 개인의 감성과 개성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서성이는 곳으로 삶을 왜곡하고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 니체가 비판한 근대문화는 단순히 19세기의 문화가 아니라 그리스 문화가 사라진 시점부터 현재까지로 확장된다. 가령 신화가 살아 있던 그리스 문화를 밀어내고 들어선 로마..
중력의 악령에 대하여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는 표현을 쓴다. 세상의 짐을 혼자 걸머진 듯한 절망감에 휘청댄다. 이렇게 나를 자꾸 주저앉게 만드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중력의 악령’의 소행이라고 한다. ‘날지 못하는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삶이 무겁고 고된 이유는 “우리가 요람에 있을 때부터 사람들이 지참물로 넣어준 이것” 때문이다. 바로, 선과 악이라는 지참물. 정확히 말하면, 선악을 척도로 하는 가치관 - 도덕이다. 어려서부터 공기처럼 받아들여 온 ‘착하게 살자’의 기치 아래 펼쳐지는 나날들. 아이 때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착한 자식으로, 선생님에게 고분고분한 착한 학생으로, 사회로 나가면 조직의 룰과 상사에 복종하는 ..
고통의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살면서 시간이 역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해한다. 실연, 실패, 사고, 암 등 나에게 닥친 끔찍한 우연,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질질 끌고 다니며 부여안고 운다. 그렇게 고통은 과거에서 오고, 또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온다. 자식이 나중에 밥 굶을까봐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얻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자식과 불화하며 현재를 고통으로 몰아간다. 이는 인간의 한계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살이는 다 그랬던 가보다. 현존의 의미, 즉 ‘산다는 것’이란 근본물음에 천착했던 철학자들은 사는 동안 벗어날 수 없는 이 고통이란 놈에 나름대로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농부철학자 피에르라비는 ‘이전에 나는 언제나 과거에 대한 억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몸은 관념에 비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령 “당신만을 사랑할 테야”라는 사적 고백의 그 빛나는 초월도 끝내 비루한 안일의 체계 속으로 내재화하고 만다. 일상은 무엇보다 몸이고, 그 모든 고백과 의도는 잠시의 부유를 끝내면서 그 몸속으로 가라앉는다. 결심은 잦고 의도는 선하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 김영민 몸은 껍데기고 정신이 알맹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었다. 나는 생각했고, 고로 존재했다. 그런데 살수록 아니었다. 몸은 정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은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었다. 학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떡하니 극장에 가 있다거나 공부하려고 책을 폈는데 잠을 자고 있거나 위장이 아파도 커피는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드라마에서도 알콜상태의 주인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