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09:30:39] 나비의 등록금 마련을 위하여
  2. [2018.10.15]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

나비의 등록금 마련을 위하여

[좋은삶공동체]

'나비'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재작년 성폭력피해자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났습니다. 수업 시간에 항상 진지한 눈빛으로 임했죠. 공부하고 알바하기 바쁜데 과제도 꼬박꼬박 잘 해오고, 무엇보다 글을 참 잘 썼어요. 회피하거나 에둘러가지 않고 자기 상황과 감정을 응시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어요. 오웰이 말한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는 거죠. 
나비의 글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기에 "나비, 계속 글 써도 좋을 거 같아."라고 말했어요. 나비도 배우고 싶다고 했었어요. 입시 끝내고 관심 있음 언제든 오라고 했죠. 그때 같이 공부하던 한 친구와 올봄에 연락이 닿아 만났을 때 나비가 퇴소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대학은 갔는지 궁금했는데 며칠전 한국성폭력상담소 뉴스레터에서 나비 소식을 봤네요! 열림터 소장님께 확인하니 이 나비가 그 나비가 맞다고 하시네요.  혹시 관심 있는 분들 계실까 해서 공유합니다.


열림터 퇴소 이후 생활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생활하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쉼터)입니다. 성폭력 피해 이후 가해자와의 시급한 분리가 필요한 경우 입소하고 있어 대부분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이 열림터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열림터 생활인들은 친족성폭력 피해의 특성상 입소기간이 만료되어 퇴소하게 되면 원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립해야 합니다. 
  • 나비에게는 고비를 넘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나비는 작년 8월 열림터를 퇴소한 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수능 공부를 하는 강행군을 지속하였습니다. 열림터 생활하는 동안에도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묵묵히 공부를 했던 나비였지만 퇴소 이후 혼자 생계를 책임지면서 공부를 할 수 있을지 활동가들은 내심 걱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나비는 간호학과 합격하였습니다. 수능과 간호학과 합격이라는 고비를 넘긴 이후에는 매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나비의 책임감에 박수를 쳐주고 있지만 아르바이트해서 버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꼭 필요한 생필품들도 제한해 가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실습을 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 할 여력이 없어진다며 고민하는 나비에게 힘이 되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나비가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주세요!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로 원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나비에게 대학생이라는 위치는 너무 무겁기만 합니다. 새로운 지지기반이 필요한 나비를 위해 나비가 등록금 걱정을 덜고 간호사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나비가 직접 그려준 자필 메세지처럼 나비의 꿈을 향한 날갯짓에 힘을 보태주신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금은 나비가 성폭력 피해 경험을 딛고 자기 삶을 만들어 가는데 큰 지지와 위로, 용기로 느껴질 것입니다. 

    * '나비'는 생활인 보호를 위해 부르는 애칭입니다. 모금함 대표 사진의 '꿈을 향한 날갯짓에 힘을 불어주세요'는 나비가 직접 작정해준 메세지입니다.

    >> 해피빈 기부 참여

    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48540?redirectYN=N&fbclid=IwAR3yiqlgnronlbnO3VTRtpVbFZmGU5OS0suZe4XtlUwPP6lU2Qq4bowIavI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

[은유칼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엠티에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는 문자가 ‘콩(공유정옥 활동가)’에게 왔다.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을 마친 기념으로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이랑 강릉 바닷가에서 2박3일 편안하게 쉬다 올 예정이란다. ‘시간이 되나’ 머리를 굴려본다. 시간과 돈을 거래하는 시대. 시간이 화폐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돈으로 보상되는 일 위주로 시간을 살뜰히 썼구나 싶다. 그건 잘 살았다기보다 초조하게 살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건 다르다. 사적 여행도 아니고 공적 활동도 아니다. 작가 초청 강연 말고 그냥 같이 놀자니까 좋아서 짐을 쌌다.

“아유, 바쁠 텐데 어떻게 시간이 됐어?”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시간이 뭐길래. 왠지 부끄러웠다. 어머니는 몸이 불편한 딸 혜경씨를 휠체어에 태우고 1000일이 넘도록 매주 시간을 내어 춘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한뎃잠을 잤다.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씨도 속초에서 강남역을 묵묵히 오갔다. 농성장 해단식 날 물었다. “3년을 하루같이 어떻게 다니셨어요? 오기 싫진 않았어요?”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힘든 적은 많았지만 가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위인전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 커 보였다. 그분들 삶의 자리에 나를 놓아보면 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구체적으로 승산 없(어 보이)고 기약 없(어 보이)는 싸움에 매일매일 ‘시간을 낼’ 배짱이 없다. 싸운다고 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라는 판단을 뒤로하고 삶을 통으로 내어 싸운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언젠가 광화문 집회에서 혜경씨가 무대에 올라가 발언을 했는데 그걸 지켜보는 이종란 노무사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십몇 년 수천 번은 들어서 다 아는 얘기일 텐데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엠티에서도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가거나 씻을 수 없는 혜경씨를 활동가들이 너도나도 나서 휠체어를 밀었다.

드물고 귀한 관계. 같이 보내는 시간을 물 쓰듯이 써야만 가능한, 무심히 밥을 먹고 곁을 지킨 인연이 갖는 한가함과 안정감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 “누군가와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211쪽)”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한 사람이 마냥 담대하고 무모해질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을 믿기 때문인 거 같다.

엠티 첫날 밤, 흰 파도 까불고 별 총총 박힌 바닷가로 ‘민중가요 노래집’과 기타를 들고 우르르 나갔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가사가 막힘없고 노래가 자동 재생되는 이종란과 콩과 나는 ‘올드 제너레이션 시스터즈’라는 놀림을 받았다. 30대 농성장 지킴이가 신기한 눈으로 물었다. “대학 때 노래만 했어요?” 콩은 공강 시간마다 과방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노조 사무실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기타 코드 어설프게 잡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왜 그토록 열심을 다했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랑과 신념이 가슴에 출렁대던 시절임은 분명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급류에서 부서진 삶을 복구하는 사람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사랑의 원리를 깨우쳤다. “삶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점은 무시되고, 개개인은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111쪽)”도록 세상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기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것들만 곁에 남아 있다. 무던한 사람, 철지난 노래, 변치 않는 신념, 짠 눈물 같은 것들.

<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책읽는수요일


※ 이번 호로 ‘은유 읽다’와 ‘김현 살다’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