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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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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호텔로 간 까닭은 라는 소설이 있다.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 작품으로 유명하다. 크고 좋은 집, 돈 잘 버는 남편, 귀엽고 기운찬 아들 둘 딸 둘까지. 모든 것이 매끄럽고 흠잡을 데 없이 설계된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으나 주인공 수전은 행복하지 않다. 가족을 돌보면서 정작 자신이 사라지는 현실을 자각한다.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오롯한 몰입이 가능한 ‘익명의 장소’를 찾던 수전은 호텔로 간다.매일 일정한 시간에 아내가 사라지는 것을 안 남편은? 사설 탐정을 시켜 찾아낸다. 수전은 세상에 의해 발각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나 6시까지 19호실에서 혼자 있다가 간다고 호텔 지배인이 ‘있는 그대로’ 증언했지만 남편은 믿지 않는다. 다른 남자와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렇게 믿고 싶..
싱크대 앞에서 아담스미스 생각하기 아들이 제대하고 나서 나는 ‘싱크대 앞 체류 시간’이 늘었다. 하루 한 끼 정도 집에서 먹는데 제대로 먹여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마트, 유기농 식료품점, 백화점, 동네 슈퍼를 오며 가며 찬거리를 연신 사다 날라도 냉장고는 금세 텅 빈다. 끼니는 뭐든 먹어치우는 괴물인가. 성인 남자 입 하나 느는 게 수저 한 벌 더 놓는 일이 결코 아님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그러면서도 다 큰 아들의 밥을 계속 차려주는 게 옳은가 자책한다. 처음엔 군대에서 고생한 아이가 가여워서 해 먹였다. 당분간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이가 바로 복학하고 학업에 아르바이트에 친교 활동으로 바빠지면서 난 하숙집 아줌마처럼 시간 맞춰 밥을 대령하고 있다. ‘너도 성인이니까 네 밥은 알아서 챙겨라’ 생각은 하면서..
분위기 깨는 자의 선언 스마트폰에 카메라 앱을 깔았다. 셀카를 찍어보니 소문대로 신통했다. 주름 제거, 미백은 기본에 눈동자가 크고 또렷해졌다. 메이크업 기능이 내장된 듯 칙칙한 얼굴이 지중해 햇살 받은 해사한 분위기로 변모했다. 흡족함도 잠시, 곧 도덕 감정이 올라왔다. 이건 속임수이며 나 아닌 거 같다고 했더니 누군가 말했다. 오렌지 과즙 3%만 들어가도 오렌지주스라고 하는데 본래 얼굴 3%만 있으면 자기 얼굴 맞는다고. 나의 죄책감은 더 근원적인 부분에 닿아 있다.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듯 외모에 대한 언급을 자중하고 싶었다.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주일 살아보기’가 오랜 목표다. 이 슬로건은 2016년도에 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캠페인으로 꾸밈 노동을 강요하고 외모중심주의를 부추기는 세태에 맞서는 실천으로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