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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편견

[은유칼럼]


성판매 여성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친구가 홍보용 소책자를 건넸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글이 문답식으로 적혀있다. 무심코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 멈췄다. 사람들은 성판매 여성에게 쉽게 충고한다. 그 일을 그만두고 ‘떳떳한 직업’으로 새 출발 하라고. 하지만 하던 일 관두고 새 직업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 움찔했다. 한번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 알아차려서, 한번은 비슷한 일을 겪고 있어서였다. 


당시는 금융업에 종사하던 내 배우자가 다른 일을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좌절하던 때였다. 업종을 바꾸려는 순간 이전의 경력과 스펙, 몸뚱이가 쓸모없어지는 ‘생산성 제로’ 인간이 되어버린다.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업무 감각을 몸에 익히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직 기회가 적고 적응이 어렵다. 결국 나의 배우자도 본래 업종으로 복귀했다. 직업을 바꾸는 일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님에도 유독 성판매 여성들에게는 너도나도 훈계했던 거다.


안다는 건 자기 무지를 아는 것이란 말대로, 소책자의 몇 줄 문장은 내 가치 체계를 흔들어놓았다. 떳떳한 일이란 무엇인지, 좋은 직업은 누가 승인하는지, 왜 그들의 행복은 탈-성매매일 것이라고 당연히 규정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우연히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접속했고, 거기서 또 하나의 화두를 만났다. 


성판매 여성은 쉽게 돈 번다는 비난이다. 당사자는 증언한다. 성노동이 “밀폐되고 통제력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 안전장치 없이 상대방의 요구에 맞춰줘야 하는 중노동”이라고(실제로 2002년 군산 성매매업소의 화재로 열네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반문한다. “쉽게 돈 벌면 왜 안 돼? 우리는 다들 쉽게 돈 벌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로또를 사고 건물주가 되길 바라고요.”


집필노동자인 내게 사람들은 덕담을 건넨다. ‘이번 책 대박 나세요.’ 가급적 수월하게 돈 벌라는 뜻이다. 쉽게는커녕 정직하게 돈 벌기도 어려운 세상이니 말이라도 넉넉하게 주고받는 것일진대, 같은 말이 특정한 대상에겐 비난의 말로 쓰인다. 이토록 성판매 여성들이 온갖 설교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숨겨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소리 없는 이들은 납작한 존재로 일반화, 단순화, 타자화된다. 


내가 (두 번 볼 만큼) 좋아하는 영화에서도 성판매 여성은 상징적 폭력을 겪는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다니엘이 케이티의 성매매업소에 찾아가서 제발 이런 일만은 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이창동의 <버닝>에서 종수는 해미에게 창녀나 아무 남자 앞에서 옷 벗는 거라고 말한다. 젠더 편견과 선악의 잣대가 주저 없이 개입해 영화적 흐름이 깨지는 아쉬운 대목이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성판매 여성의 글을 묶어낸 책 제목이다. 이 사회에서 말의 지분을 갖지 못했던 당사자의 생생한 외침과 증언은 아프고 날카롭다. “몸 팔아서 쉽게 버는 게 옳으냐”가 아니라 왜 취약한 계층이 성판매로 유입되는지, 왜 누구는 성구매에 척척 지갑을 열고 누구는 성을 판매해야 겨우 ‘생계비’를 마련하는지, 정말 돈 쉽게 버는 사람이 누군지 저자 이소희는 묻는다. 

나도 질문을 바꿔본다. 왜 꼭 어렵게 고생해서 돈을 벌어야 가치 있다고 난 여겼을까. 나 같은 순치된 인간을 길러낸 세력은 누구이며, 그걸로 덕을 본 자들은 누구일까.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자기 삶의 문제인지도 몰랐던 문제가 드러나는 경험은 언제나 신비롭다.


*한겨레 삶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