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 인터뷰 "책 만드는 사람도 발언했으면 좋겠어요."

[사람,기억,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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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9일은  『출판하는 마음』 이 출간된 날이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리뷰가 쏟아졌다. “아마 출판계 사람들이라면, 특히 마케터라면 이 책 다 읽고 있을 걸요? 서점 MD 마음 공약법으로요.”, “친구가 읽던 걸 뺏어 읽었는데, 두 장 읽고는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기야 나도 책이 서점에 풀리기도 전,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미리 인터뷰를 청했다. 일주일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평을 하자면, “대한민국 출판인이 1만 명이라면, 1만 명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의 초판 발행 부수를 물었다. 2천 부라고 했다. 부수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출판계의 현실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은유 작가에게 말했다. “이 책은 적어도 올해 안에 1만 부는 팔렸으면 좋겠는데요.” 작가는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계속)


http://ch.yes24.com/Article/View/35848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반드시 보기로"

[은유칼럼]

글쓰기 수업 시간, 연예인 지망생 아들을 둔 엄마가 글을 써왔다.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연극영화과를 지망한다고 했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 그런 피 없다”라고 말했고, 엄마인 자신만 홀로 지지했다고 한다. 진로, 연애, 취업 등 인생의 모든 선택에서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라는 응원에 힘입어,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엄마는 아들의 공연에 초대받는 유일한 혈육이자 비밀 없는 친구가 되었다는 훈훈한 일화였다. 

이 글을 본 20대 취업준비생 학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현실에 없는 엄마 같다, 이렇게 자식을 믿어주고 밀어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엄마 학인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너무 사소한 이유라서 굳이 글에 쓰지 않았다고 했다. 사연인즉, 대학 시절 친구들 넷이 월미도에 해 지는 걸 보러 갔는데 귀가 통금 시간에 걸려 자신만 일몰을 놓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으니 그때 눈물을 삼키며 결심했단다.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자유롭게 살게 하리라. 삶의 한 장면도 놓치게 하지 않으리라. 

ⓒ시사IN포토

엄마 학인의 수줍은 고백과 달리, 일몰을 볼 권리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하지 않은가. 직장인은 해 지는 거 보자고 벼르다가 휴가를 낸다. 안면도로 달려가고 지중해로 날아간다. 푸른 하늘 한갓지게 감상하는 것도 서툴러, 여행을 가서도 전지훈련 온 선수처럼 빼곡한 일정을 짜서 새벽부터 경치 좋은 곳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닌다. 하늘, 구름, 바다, 나무, 꽃, 석양은 일 년 내내 소처럼 노동한 보상으로 접할 수 있으니 어찌 사소하다 할까. 

자연을 벗할 권리가 기본권으로 보장되면 좋겠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글 ‘어린 동무들에게’에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182쪽)”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지금처럼 도시화된 환경에선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서 자란 나는 일출과 일몰을 주로 텔레비전의 애국가 영상으로 보며 컸다. 두 아이도 온갖 ‘체험학습’으로 돈 내고 자연에 노출시켰다. 갯벌 체험, 밤 줍기 체험, 고구마 캐기 체험 같은 것들. 그런데 푹 빠져들 틈도 없이 우르르 가서 시늉만 하다가 김밥 먹고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행위인가 이제야 알겠다. 

“무엇엔가 멈추어본 아이만이 자기 삶을 만날 수 있다. 자기 삶을 만난 아이만이 자세히 볼 수 있고, 자세히 볼 때 놀라운 삶의 경이를 만날 수 있다. (중략) 자기를 만난다는 것은 자기 흥을 만나는 것이고 그때 그 무엇에 정신을 팔았다는 말일 것이다(190쪽).” 

“좀 노는 것같이 놀아보자”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김영미 지음, 양철북 펴냄

나는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니며 놀지는 못했지만 시멘트 바닥에서 고무줄놀이하며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애들 얼굴 안 보일 때까지 ‘정신 팔며’ 놀았다. 아마 내가 그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놀 기회를 너무 일찍 박탈당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자기 흥을 발견할 기회도 없이 무엇에 쫓기듯 정해진 일과표 속으로 아이를 밀어넣는 부모가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엄마 학인의 글을 보면서 뜨끔하기도 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5월에 수학여행을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련회였다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놀 시간도 안 주고 극기 훈련이랑 교육만 시키는 수련회는 딱 질색이라며 다른 애들도 그러기로 했단다. 나는 무조건 지지한다고 했다. “아이들의 세계는 먹고 노는 세계(235쪽)”다. 2008년 일제고사 거부 투쟁에 나선 청소년들의 구호는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였다. 그로부터 10년 뒤 사적 저항에 나선 딸아이의 구호는 “좀 노는 것같이 놀아보자”다. 그래, 노는 것이면 충분하다. “세상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관찰하라(34쪽).”

남을 아프게 하는 착한 사람들

[은유칼럼]

오빠가 서른 초반에 병을 얻은 뒤, 엄마는 모임만 다녀오면 눈물지었다. 특히 명절이나 생일 등 가족 행사에서 다른 친척이 자식 얘기 하는 걸 견디지 못했다. 오빠 또래의 사촌들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평범한 얘기는 그런 평범한 삶에서 멀어진 (듯 보이는) 자식을 둔 엄마를 소외시켰고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게 했다. 운명의 얄궂음일까. 유독 공개적인 자식 사랑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던 한 친척의 생일날, 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른 후 외숙모가 말했다. 엄마가 외숙모에게도 하소연을 종종 했다고 한다. 유일한 기댈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숙모는 짝 채워 장가까지 보낸 외아들을 사고로 잃는 큰 아픔을 겪었다. 그렇지만 그 후 친지 누구도 당신 앞에서 자식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한 네 엄마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사실 나는 엄마의 괴로움에 공감하기보다 엄마의 나약함을 원망했다.

 

가족 얘기가 그 자체로 차별과 배제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건 다른 개별적 죽음, 그리고 사회적 비극을 접하면서다. 세월호 유족은 다른 사람하고 술 마시면 감정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유족들끼리 만난다고 했다. 눈치 보지 않고 웃고 싶을 때 웃어도 되고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되니까. 가족지상주의 사회에서 가족이 온전치 못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소외는 비슷한 풍경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차별 감정의 철학』 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애정의 표명 중에서 가족애의 표명만이 안전한 특권을 가진다. 어떠한 빈축도 사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받지 않는다. 이는 가족 복이 없는 사람, 가족이 없는 사람, 아니 한발 더 나아가 가족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가족을 미워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인연을 끊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잔혹한 현실이다.”(140쪽)

 

얼마 전 2014년 1월 20일 일터에서 동료의 괴롭힘으로 자살한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어머니를 만났다. 근황을 얘기하던 어머니는 가족 모임에 나가기가 싫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조카들을 보면 아이 생각이 나고, 동준 군 외할머니는 죽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운다고 핀잔을 주고, 마음 정리 잘 하라고 형제들은 당부하는데 그 자리가 불편하다고, 그렇다고 안 가면 더 걱정하니까 안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친구들 모임은 좀 낫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한창 친구의 아이들이 군대 갈 즈음이라 만나면 군대 보내고 면회 가고 제대한 얘기가 화제다. 같이 기뻐하고 안도하다 문득 울컥한다. “나 눈물 나, 니 아들 잘났어.” 속내를 터놓기도 하지만 답답하다. 분명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나를 아프게 했는데 나한테 뭐라고 말한 게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라서 그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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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나는 어머니와 페이스북 친구다. 동준 군 또래인 내 아이의 군 입대와 제대 소식을 SNS에 올렸다. 막연히 생각은 했다. 혹시 이 포스팅을 군의문사 유가족이 본다면 마음이 아프겠다고. 그러나 자식을 군에 보내는 두려움조차 누군가에겐 복에 겨운 투정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진 이르지 못했다. 동준 군의 어머니처럼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도 여느 집 청년의 군 입대 소식에 눈물지었을지 모르겠다. 아이는 떠나도 부모의 자식으로는 나이를 계속 먹는다.

 

동준 군 어머니의 바람은 소박했다. 내 앞에서 ‘아무도 자식 얘기를 하지 마라’는 부탁이 아니라 ‘나도 자식 얘기 하고 싶다’는 간청에 가깝다.

 

“죽고 없지만 우리 아들 얘기 할 수 있다고 봐요. 근데 내가 얘길 하면 사람들이 초 긴장해요. 옆구리 쿡쿡 찌르거나, 아예 맘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어느 정도 풀어야만 감정이 사라지는데 계속 누르고 있어야 되잖아요. 친구들한테도 그랬어요. 니들이 애들 군대 얘기 손자 얘기 할 때 나도 맨날 생각나고 슬퍼. 그래도 나는 웃으면서 니들 얘기 듣고 잘했다고 하는데, 친구라면서 내가 동준이 얘기하면 왜 불편해하냐고요. 살고 죽고 아프고 병들고 생로병사도 삶이에요. 결혼하고 연애하는 것만 삶이 아닌데, 그것도 삶이고 그 과정을 이기는 것도 삶인데 왜 그런 얘기를 편안하게 못 들어 넘기냐. 그게 서운하죠.”

 

우리 엄마도 아픈 자식 얘기를 어디서든 후련하게 할 수 있었으면 울화가 풀렸을까. 조금 더 오래 살았을까. 동준 군 어머니 말씀에서 엄마가 감내한 외로움의 크기를 짐작한다. 피붙이인 나도 감정노동을 거부했다. 나 역시 인생 최대의 난국을 보내는 중이어서 같이 무너질까 봐 엄마를 더 피했다. 만약 어느 자리에서든 엄마가 위축되지 않고 괜찮은 척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슬픔을 떠들었다면, 듣는 사람들이 동정이나 입막음이 아닌 토닥이는 눈길로 들어주었다면 적어도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세상에서 삭제되는 ‘시선의 차별’”(85쪽)을 겪진 않았을 것 같다.

 

동준 군 어머니는 자식이 그리울 땐 가끔 기사를 검색해 읽는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기억하는 게 슬프지만 그게 세상과 자식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인 것이다. 아이가 허술한 시스템에 의해서 죽었고, 그렇게 자식을 보낸 사람들은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우리 엄마의 친척이, 동준 군 어머니의 친지가 그랬듯이 “악의 없는 농담과 별생각 없는 자랑”에 차별의 싹이 숨어 있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도 사회적 부적격자도 아닌 ‘선량한 시민’인 그들이 차별 감정을 생산하고 있다.”(92쪽) 이처럼 ‘악독한 권력자’가 아닌 ‘선량한 시민’에 의해 생산되는 차별 감정이기에 이것을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방법은 이것이 유일하다. 자기 안에 숨은 나태함과 눈속임과 냉혹함과 끊임없이 싸우기.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빠져 있는 한, 나는 ‘옳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사람은 차별 감정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없다.”(205쪽)

 

어김없이 돌아온 슬픔의 달 4월,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의 나태와 둔감을 경계하며 세월호에서, 세월호만큼 위태로운 일터에서 침몰당한 아이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숱한 자식 이야기가 오가는 그 쓸쓸한 자리를 견뎠을까. 

 

* 채널예스에 실림


원더플 비혼,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은유칼럼]

전주에는 친구 봄봄이 산다. 봄봄은 5년 전 전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내가 하는 글쓰기 강좌 16주 과정에 참여했다.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를 운영하는데 강의료와 교통비를 동료들이 지원해주어 자기가 ‘대표’로 유학 오는 거라 했다. 그녀의 자기소개는 멋지고 대단하게 들렸다. 수업에 오는 기혼 여성 중 일부는 (자격증도 나오지 않는) 자기 공부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거나 배우자를 설득하기 곤란하다는 고민을 터놓곤 했다. 그렇기에 봄봄이 들려주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넘어선 삶, 결혼 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존중의 반려 관계는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틔워주었다.

봄봄은 멀리서 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가장 먼저 강의실에 와 있었다. 늘 수줍게 웃었고 성실히 글을 써냈다. 십년지기 네댓 명이 주축이 되어 비혼 공동체를 꾸리는데 살림집은 따로 있는 1인 가족 네트워크 형태라는 것, 각자 특성에 따른 역할 분담과 활동들, 갈등을 어떻게 풀거나 뭉개며 사는지 찬찬히 기록했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낯선 도시의 지도처럼 복잡해 보이기도 했다. 부딪치고 고심하며 나은 삶을 빚어내는 과정이기에 유토피아 보고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문장마다 힘이 넘쳤다.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므로(134쪽).


ⓒ시사IN 윤무영

올해 초 봄봄에게서 초대장이 왔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은 비혼 여성들의 space&link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기혼 여성들도 함께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폭이 넓어졌습니다.” 거기서 봄봄은 글쓰기 모임을 꾸리고 있는데 매번 읽기와 쓰기가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며, 작가와의 만남에 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강연 주제는 ‘여성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였다.


산수유 꽃망울 터지는 3월 셋째 주 금요일, 한달음에 전주로 달려갔다. 봄봄은 여전히 잔꽃무늬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강연장에는 여성 30여 명이 자리를 꽉 채웠다. 맞은편 벽면에는 ‘원더풀 비혼-너에겐 친구가 있잖아’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가슴이 콩콩 뛰었다. 여자들만의 신나고 친밀한 세계. “나는 말도 부드러워지고 생각도 부드러워져서 상기한다. 모든 것이 머지않아 다른 모든 것이 된다는 걸(146쪽).”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고 열을 논하다 보면 속 깊은 질문 하나는 반드시 던져주는 여성들과 함께하는 강연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강연 전날 내려가 봄봄의 집에서 묵었다. 봄봄의 벗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지역에서 비혼 공동체를 꾸린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남성들에겐 이해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소하게는 “여자들끼리 있으면 짐을 나르거나 험한 일은 누가 하느냐”라고 묻거나, 진지하게는 “그렇게 폐쇄적으로 살지 말고 바깥으로 나오라”고 충고한다는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살뜰한 챙김에서 상상하는 다른 삶

대로변에 공간을 갖춰 10년 가까이 유지하는 단체를 불완전하거나 폐쇄적이라고 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남자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연을 앞두고도 문의가 왔단다. “남자인데 가도 됩니까?” 여성 생활 문화 공간이라서 여성이 우선이며 정원이 이미 차서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웠을 거 같다.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충만한 1박2일을 보내고 집에 와서 봄봄이 들려준 선물상자를 열었다. 쌀·멸치·깨소금·들깻가루·양말·수첩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이런 살뜰한 챙김에서 깨닫는다. 다른 삶을 상상하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124쪽)”을.







* 시사인 '은유 읽다'



출판하는 마음... 알면서 '외않사'

[사람,기억,기록]


신청은 여기로 https://goo.gl/forms/yC5dWQ4vXyJwn8xy1

우리가 한바탕 이별했을 때

[은유칼럼]

마흔이 되자 친구들이 이혼하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무책임해서, 시댁이 무례해서, 같이 있기 싫어서 갈라선다고 했다. 남 일은 아니었다. 나도 한달간 떨어져 지냈다. 사람이 이토록 미워지는 마음이 참 낯설었는데, 내가 지은 밥을 그가 먹는 게 싫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심했다. 소설가 위화는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는단다. 계속 읽으면서 작가를 미워하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장 덮듯 나도 얼굴을 덮고 싶었다.

‘한부모 여성 가장’이 된 친구들은 아이에게 이혼 알리기를 가장 어려워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회사 일로 떨어져 지낸다, 아빠는 외국에 갔다는 철 지난 유행가 같은 이유를 둘러댔다. 결혼 10년간 한 번도 생활비를 준 적 없는 남편과 헤어진 선배는, 짐을 벗어버렸는데 생각만큼 후련하지 않고 살아갈 힘도 같이 사라졌다는 야릇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나는 타협했다. 여자로서 독립적이나 엄마로서 자립적이지 못했다. 대체 양육자가 없으니 어차피 오래 끌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참고 산다는 말. 비주체적이고 비겁해 보였지만 그 참음이 다른 고통보다 나으니까 참아졌다. 사랑으로 한시절 살았기에 사랑 없이 한시절 살아갈 수 있었다. 친구 따라 이리 뒤척, 내 맘에 지쳐 저리 뒤척 하는 동안 나라는 존재의 나약함에, 여성이란 종의 고통에 조금씩 눈떴다.

그때, 우리가 한바탕 이별했을 때 ‘고민거리’로 여겨졌던 아이들의 존재가 들어온 건 근래다. 이십대가 된 내 아이 또래가 글쓰기 수업에 오면서 ‘헤어진 부모’에 관한 글이 부쩍 늘었다. 부부 싸움이 시작되는 전조를 감지하는 초조, 쟤만 없으면 당신이랑 안 산다는 말에 덴 자국, 아빤 외국에 갔다는 엄마의 세뇌, 아빠의 재혼 소식을 엄마에게 전하며 울던 기억,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너도 아빠 없니? 나도 따로 살아, 라고 말해 비밀 친구가 된 일화, 조손 가정이란 구멍을 메우기 위해 죽기로 공부에 매달렸다는 고백.

약자에 가려진 약자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혼은 어느 날 부모 한 명이 증발하는 일이고, 남은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고도의 정신노동이 부과되는 삶이며, ‘너라도 잘 커야’ 하는 장기 채무가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생생한 아픔을 겪는 한 존재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 문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6살 여자아이 ‘무니’의 무지갯빛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운다. 싸구려 모텔에서 단기투숙자로 미혼모 엄마와 사는 아이는 가난과 결핍의 공간을 생성과 자극의 놀이터로 만든다. 이 낙담하지 않는 악동은 자신의 신묘한 능력을 고백한다. “난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알아.” 엄마의 기후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하는 것도 아이고, 어떤 절망에 빠졌어도 라면 수프 같은 복원력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도 아이다.

“고통이 아픔을 준다는 것이 고통에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순 없다”는 니체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 진정한 통찰과 만난다는 뜻이다. 한부모 가정 아이는 불행하다기보다 예민하다. 그 예민함의 촉수로 무니가 타인의 슬픔을 포착하듯 또 다른 무니들이 삶의 무수한 장면을 읽어내고 속 깊은 글을 써내는 걸 나는 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혼은, 한부모 가정은, 누구의 무엇을 언제를 기준으로 결핍이고 약점일까. 나와 내 친구가 오매불망 걱정했던 그 작았던 아이들은 자기 고통을 응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옆에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9511.html?_fr=mt5#csidx70d0137672b79808b04799e10a3f06e 

세상에 '그냥 엄마'는 없다

[은유칼럼]

"한 사람과 한 단어의 진정한 만남에 기회가 필요할 때도 있다. (…)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생에서 수많은 단어를 만나지만, 어떤 단어들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데 비해 어떤 단어는 평생을 함께 지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37쪽).” 

중국 문화대혁명 속에서 성장한 소설가 위화는 그 단어를 ‘인민’으로 꼽는다. 스물아홉 살에 작은 시위 현장을 목격하고 인민을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고백한다. 내게 그런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하니 ‘엄마’가 떠오른다. 부르기도 많이 불렀고 불리기도 제법 불렸다. 엄마에게 전적으로도 의탁했던 시기엔 공기처럼 망각했던 말. 출산을 한 뒤로 피부처럼 몸에 달라붙어버린 단어. 

ⓒ시사IN 자료

엄마라는 말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냥 엄마’는 없기 때문이다. 임신에서 출발해 신생아 엄마, 돌쟁이 엄마, 유치원생 엄마, 중학교 2학년 엄마, 수험생 엄마, 실습생 엄마, 군인 엄마 등 생애주기에 따라 다른 엄마의 옷을 입고, 상황에 따라 비염에 걸린 아이 엄마, 가해자 엄마, 학급 모임에 안 나오는 엄마도 되어본다. 매번 낯설고 계속 헤맨다. 둘째 아이는 첫째와 기질이 다르니 양육 경험이 무용하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같은 엄마를 두 번 사는 경우는 없다. 

얼마 전 아들이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했다. ‘군인 엄마’는 가장 난해한 엄마 체험이었다. 입대 날짜 받아놓았을 때, 먼저 아이를 군에 보낸 선배가 말했다. “너, 글 쓸 거리 매일 생길 거다.” ‘글감이 많다는 건 풍파가 많다는 뜻인데….’ 무지는 불안을 조장했다. 아이가 신병훈련소에 있을 땐 날마다 육군 홈페이지에 접속해 편지를 썼다. 군부대 카페 게시판 클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소대 ‘밴드’에도 가입했다. 아, 구속이여. 군인 엄마로서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다가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에 가입해 후원금을 냈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챙기고 불안을 글로 달랬다. 

어느덧 나는 아들이 휴가를 나와도 사발면 사놓고 외출하는 의연한 엄마가 되어갔다. 바로 그 무렵 휴가 나온 아들이 귀대하며 말했다. 어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만 3년을 교제했다. 여자친구는 나와는 아들 면회도 같이 갔던 사이니, 우리의 인연도 종료되는 셈이었다. 아들을 보내고 나는 자꾸 눈물이 흘러 애를 먹었다. 아들과 감정선이 연결된 느낌은 아이가 열이 날 때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달랐다. 이것이 슬픔의 공동체인가. 그 경험은 나에게 엄마라는 말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군 복무 중 애인과 헤어진 아들의 엄마까지 해보자 엄마 레벨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연이어 망각하고 배신하는 단어, 엄마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위화 지음김태성 옮김문학동네 펴냄

위화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던 시대(124쪽)”를 통과했다. 유년 시절부터 소년 시절까지 사형수들이 총살되는 장면을 무수히 목격하고 밤마다 꿈속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쫓긴 이야기를 터놓으며 “정신이 허물어지는 아슬아슬한 가장자리를 걸어온 것 같다(156쪽)”라고 쓴다. 그가 추락하지 않고 살아낸 건 글쓰기의 힘이었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147쪽).” 

한 개인의 운명을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삶인 엄마. 날마다 나를 생초보로 리셋시키는 환장할 엄마 노릇이 아니었으면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거 같다. 뭐라도 쓴 덕에 몰락을 피했다. “가장 먼저 인식하고 쓴 단어였지만 살아가면서 연이어 망각하고 배신했던 단어(37쪽)”, 엄마를 오늘도 산다. 


- 시사인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