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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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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패터슨의 가능성 평일 오후에 이런 적은 처음인데 싶어 연신 창밖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류장이 코앞. 신호가 몇번 바뀌도록 버스가 꼼짝 못 하자 기사는 뒷문을 열어주었고 승객 서넛이 내렸다.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정류장도 아닌 데 차를 세웠다며 뒷문 쪽에 웬 남자가 서서 목청을 높였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 줄 아느냐, 운전기사가 아무것도 모른다,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며 그는 술 취한 아버지처럼 한 말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더니만 느닷없이 화제를 자신에게 돌렸다.“내가 말이야 모자 쓰고 잠바때기나 입고 있는 늙은이라고 날 무시해!” 짙은 밤색 모자와 남색 외투를 입은 행색은 단정하고 허리는 꼿꼿했다. 행동도 민첩했다. 핸드폰을 꺼내 차 문 위에 붙은 교통불편 신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차량 번호, 위치, 신고 내..
듣고도 믿기지 않는 실화 “딸이 있어 참 다행이야(57쪽).” 엄마의 장례식장에 온 이모는 나를 구석에 있는 벤치로 데려가서 앉혀놓고 손을 부여잡고 연신 말했다. 딸이 있어서,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너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아버지랑 오빠 남겨두고 가면서 엄마가 어떻게 눈을 감았겠니, 네가 엄마 대신 잘해라. 너만 믿는다. 그날 문상객들은 급작스러운 망자의 죽음에 경황이 없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보다 몇 시간 일찍 부고를 들었을 뿐인 나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내가 딸이란 사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모의 말은 힘이 셌다. 초자아의 명령처럼 나를 딸로 리셋했고 행동을 지배했다.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삼시세끼 엄마가 차려주는 밥으로 연명한 아빠, 아들로 태어나 남자로 살다가 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