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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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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남자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 남자들도 알고 보면 돈 버느라 불쌍하거든요.” 강연을 마치고 질문 시간에 손을 든 중년 남성이 말했다. 난 강연 내용을 재빨리 복기해보았다. 남자를 밉다고 했나? 그렇지 않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곤란과 불편, 내가 만난 여성들이 당한 폭력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남자보다 여자의 불쌍함을 이야기를 한 셈이다. 그것을 두고 남자에 대한 미움, 투정, 원망으로 받아들이고 그는 동정과 배려를 당부했다. 당황한 나머지 난 말을 얼버무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뒤늦게 답변 시나리오를 짜보았다. “제가 남자를 미워한다는 느낌은 어떤 대목에서 받으셨어요? 전 여성의 삶을 이야기했거든요. 선생님이 여성이 겪는 아픔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닉네임이 더치페이를 만났을 때 나이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라,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십 년 전이다. 모름지기 저것이 올바른 노년의 처세라며 탄복했었다. 심상하게 나 자신을 얻어먹는 위치에 두었거나 태평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중년 이후를 자신했던 거 같다. 실상은, 위계 구조에 속한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다보니 나 혼자 입도 열고 지갑도 열며 나이 들고 있다. 간헐적으로 글쓰기 수업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 직업, 성별, 주머니 사정이 제각각인 소규모 만민공동회 같은 구성체인데, 유급 노동자로서 상호 이해가 얽혀 있지 않아서 동등한 관계 맺음이 가능한 편이다. 그래도 사람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권력을 작동하게 하는 두 가지를 피해갈 수 없으니 바로 호칭과 돈이다. 호칭은 닉네임을..
은유 읽다 - 그의 시대와 나의 시대는 달랐다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였다. 내게 용산역은 ‘용산참사역’이고 불에 탄 남일당 건물에 유가족이 사는 그 일대는 망자들이 떠도는 슬픈 무덤이다. 그렇다고 공연을 안 가기도 이상했다. 뭐 내가 나라 걱정에 단식투쟁 하는 투사도 아니고, 살던 집에서 먹던 밥 먹고 하던 일 하는 범속한 나날을 살다가 가끔 집회에 나가는 소시민 주제에 공연도 자중하고 금욕하기란 민망한 것이다. 그래서 갔다. 그와 밴드 멤버들이 날렵한 검은 정장을 맞춰 입고 무대에 올랐다. 속으로 기뻤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한 달 됐으니 저건 애도의 복장일지도 모른다고 내 뜻대로 해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틀스’ 코스프레였다. 몸은 공연장에 있고 마음은 남일당으로 기우는데, 공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