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부부와 놀다

[은유칼럼]

여자 다섯이 짧은 여행을 갔다. 나이는 삼사십대. 농부, 활동가, 직장인, 백수 등 하는 일도 제각각. 레즈비언 부부와 이성애자 셋. 이성애자들 중 둘은 기혼, 하나는 비혼이다. 아무래도 커플이 있다 보니 중심이 그들에게 쏠렸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티격태격할 때는 여느 부부 같았고 손잡고 걷는 모습에선 흔한 연인이 떠올랐다. 아득한 바다보다 다정한 사람 풍경에 눈이 시렸다. 곤한 일정을 마친 밤, 술이 한 순배 돌자 사랑 얘기가 나왔다.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어요? 아직 연애의 꿈이 짱짱한 비혼 친구가 물었다. 십년 전 모임에서 봤어.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있는데 눈에 띄더라고. 어떤 점이? 얼굴이 동그랗고 예뻐서. 세상일에 관심이 많고 사고가 유연했어. 2차는 우리끼리 따로 가자고 했지. 얘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자취방에 가자고 했는데. 어머, 라면 먹고 갈래요? 그날은 그건 아니었고…. 그로부터 7년째 그들은 연인이다.


사연이 한 보따리다. 친한 동창들한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 어떤 친구가 그러지 말고 남자랑 한번 자보라고,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네가 먼저 여자랑 한번 자봐라. 네가 가능하면 나도 남자랑 자겠다고 했다고. 딸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양가 부모는 ‘시집 안 간 딸’ 때문에 속 끓이다가 마흔이 넘자 포기한 거 같다고 했다. 한데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걱정이 들어섰으니 파트너의 존재를 ‘죽고 못 사는’ 오랜 지기로 아는 엄마가 하루는 그러더란다. ○○가 너 두고 먼저 결혼하면 어떡하니?


웃기엔 슬프고 울기엔 다행인 상황. 엄마의 바람이 자식의 결혼이 아니라 자식의 행복이라면 그건 엄마가 모르는 상태로 충족되고 있으니 말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들은 커밍아웃은 포기한 상태다. 누구를 탓할까. 부모 세대는 물론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학교, 종교, 매스컴을 통해 이성애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남녀의 결혼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섹슈얼리티를 일탈이나 변태로 몰아가는 ‘강제적 이성애’를 비판 없이 수용한다. 그들 역시 자기 앎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혹독한 시기를 거쳤고 자기 몸-삶과 화해한 후에야 비로소 짝을 만난 것이다.


‘공짜 숙소’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이틀 만에 성사된 여행이다. 차 한 대에 끼여 타고 가다가 경치 좋으면 걷고 배고프면 먹고 수시로 셔터를 눌러대는 별다를 것 없는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은밀하고 넉넉했다. 어딜 가나 귀 따갑게 반복되는 자식 얘기, 입시 얘기, 돈 얘기, 연예인 얘기 같은 레퍼토리를 벗어나 안으로 파고든 대화들 덕이다.


일명 내면 탐사 여행.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성애 가족 중심 제도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부부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로를 엄마, 아내, 딸, 노동자 같은 역할의 수행자로 보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존재에 관한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자리. 정체성이나 성욕 같은 단어를 두서없이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고,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중얼거려도 민망하지 않은 배치 덕에 익숙한 나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2017년 퀴어문화축제 기사가 뜬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로 슬로건이 정해졌단다. 나중으로 유보될 수 없는 삶이 어디 그들뿐이랴. 인생이라는 책에서 접어두었던 존재 물음의 장. 사랑, 존재, 관계, 편견, 욕망의 페이지를 넘기도록 자극을 준 내 친구들을 만나러 오월에는 퀴어 축제로 떠나야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7903.html#csidx956910baa66b9b194d896a92ff4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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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

[은유칼럼]

“맞벌이 하시죠? 수레는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면서 보내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학부모가 되고부터 핸드폰 액정에 학교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철렁한다. 학교는 어쩐지 불길의 정조를 몰고 온다. 담임의 부름을 받고 불안을 안고 몇 시간 후 빈 교실에 마주 앉았을 때, 담임은 물었고 나는 순간 깜깜했다. 뭐든지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말할 게 없었다. 월수금 영어학원 간다고 둘러댔지만 고작 한 시간 반. 끝나면 아이는 또 무얼 할까.

 

상담 중 담임이 말했다. 지난주 과학 시험을 보았고 아이는 점수가 낮았고 남자애들 몇 명이 놀렸고 아이가 울었다. 수레가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삭이는 편이다. 혼자 있을 때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 같다. 일기에 ‘정주행’한 드라마 이야기를 쓰는데 줄거리 요약을 제법 잘한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라는 당부와 함께 상담이 끝났다.

 

그날도 이런 날씨였다. 교정을 빠져나오며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노랗고 바람은 시렸다. 세상과 내가, 나와 아이가 분리된 느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동장 끝에서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담임과의 상담은 아이를 아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아는 자리였다.


수레는 둘째다. 첫 아이 때는 교과서 육아로 임하느라 ‘9개월 이후는 물젖’ 이론에 입각해 만 9개월 되는 날 모유에서 분유로 갈아탔다. 지나고서 후회했다. 더 먹일걸. 그래서 둘째는 마냥 먹였다. 젖이 텅텅 비어 쭈글쭈글해지도록 대여섯 살까지 물렸다. 몸으로 연결된 관계는 각별했다. 내가 울면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찼다. 아이는 유능한 기상관처럼 내 표정 변화를 감지해 기분을 맞췄다. 그런데 난 밥만 제때 먹이는 것만으로도 허덕였고, 아이의 감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모성을 맹신하는 사이 아이는 열세 살이 됐다.

 

그날 밤 아이에게 학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대개 아이들이 그렇듯 겉으론 태연했다. 남자애들이 놀린 건 사실이지만 사과했고 다 끝난 일이라며 말꼬리를 잘랐다.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엄마는 무조건 걱정만 하잖아” 한다. 엄마한테 말해봤자 문제 해결에 도움은 안 되고 ‘엄마의 걱정’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문제까지 추가되는 구조를, 아이는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맥없이 울었다. 자책과 회한과 연민이겠지. 아이의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하고, 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 섭섭하고, 밤이고 낮이고 일하느라 뒷등만 보여준 게 면목 없고, 무엇보다 아이의 몸에 고통을 견디는 회로가 깔린 게 안쓰러웠다. 흘깃 쳐다본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고통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눈물은 공유하는 우리. 그런데 아이는 왜 울었을까.

 

돌이켜보니, 난 딸이랑 닮았다. 나도 엄마를 좋아했지만 엄마에게 비밀이 많았다. 인생 고민은 막판까지 숨겼다. 고등학교 때 담임한테 말대꾸하다가 뺨 맞고 조퇴한 일을 엄마는 모르고 내가 모범생에 순둥이인 줄만 안다. 스물한 살 노조 상근을 결정했을 때도 출근 전날에야 실토했다. 말하는데 눈물이 마냥 흘렀다. 노조 활동 하는 거보다 이유 없이 운다고 혼났다. 도대체 왜 우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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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에도 모녀 사이 눈물의 강이 흐른다.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딸은 출산 후 몸조리를 하다가 침대에서 느닷없이 운다. 엄마는 왜 우느냐며 이런저런 이유를 캐묻지만 딸은 말없이 울기만 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테마가 녹아든, 내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딸과 엄마는 서로에게 멀고도 가까운 타인이다. 주변의 동성애자 친구들도 엄마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을 마지막 과제로 남겨둔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엄마에게 말하는 딸은 드물다. 돌싱녀 친구들은 이혼 서류에 도장 찍고 나서 엄마에게 통보한다. 그건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효심과 자신의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포함된 고도의 협상이다. 덜 진실한 태도는 아니다. 자식의 정체성 투쟁에서 엄마가 최후의 관문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 봄날 상담 이후, 나는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에서 일찌감치 퇴각했다. 모녀관계에서의 무능을 인정했다. 아이도 내게 자주 상기시킨다. 수레는 요즘은 방과 후 집에서 고양이 무지와 노는 것으로 소일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난 무지가 너무 좋아. 잘 놀아주고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이것은 언중유골. 그러니까 고양이와 달리 (엄마) 사람은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뜻이다. 난 잔소리 안 하는 엄마라고 자부했는데 아이 입장에선 아닌가 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157쪽) 구원은 과거에 있다. 엄마가 되면서 상실한 아이 적 감각을 복원하기. 이를 위해 엄마가 쓴 자식 양육서를 읽느니 딸이 쓴 엄마 이야기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앞부분에 나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귀했다. 사실 딸의 금발과 눈썹을 질투하는 엄마는 보편적이지 않다. 전래동화 캐릭터처럼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기심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고 명분을 사실로 바꾸는”(36쪽) 어머니, “내 삶에 분노를 쏟아내는”(41쪽) “나를 단 한번도 알아보지 못한”(43쪽) 필자의 어머니는 내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도 종종 딸을 향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기정 사실로 왜곡할 때가 있고, 나의 풀리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퍼붓기도 한다, 보고 싶은 면만 초점을 맞추니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연구 대상’ 엄마를 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딸의 지적 여정을 함께 하고 난 후, 나의 꿈은 정교해졌다. 자기가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지 않는 엄마 되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수시로 그려보기. 그저 고양이처럼 말없이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http://m.ch.yes24.com/Article/View/32972

* 이 글은 채널예스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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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 그날의 눈은 나를 멈춰세웠다

[은유칼럼]
10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직장을 구한 건 고정 급여가 필요해서였다. 은행 대출금을 석 달 이상 갚지 못하면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애들 데리고 이사 다니기 싫어서 마련한 궁여지책인데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니 얼마나 두렵던지. 매달 대출 상환금만큼의 수입 확보를 위해 취직을 택했다. 근면 성실하게 일하니까 꼬박꼬박 통장에 돈이 들어왔고, 그 돈은 대출금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직장 생활 1년이 될 즈음 어느 날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에 눈이 부셨다. 어머 이건 봐야 해!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눈 속을 살랑살랑 거닐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 저만치에 카페가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저 창가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여왕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상상에 이르는 찰나, 카페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버렸다. 그러니까 궤도 이탈.

진한 커피 향이 얼굴을 덥히도록 잔을 쥐고 천상의 자리에 안착했다. 허나 어찌된 일인지 내 눈길은 창밖 함박눈보다 핸드폰 액정을 향했다. 선을 넘어놓고 건너편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반차를 쓸까, 결근을 할까. 근래 사무실은 너무 바빴다. 정시 퇴근도 눈치 보이는데 정시 출근을 어기는 건 심한 반칙 같았다. 누구는 낭만을 몰라서 출근하니? 초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안에 사장 있다. 예식장에서 도망가는 신부처럼 호기롭던 기세는 금세 누그러졌다. 문자를 보냈다. “사정이 생겨서 한 시간가량 늦겠습니다.”

ⓒ연합뉴스

내 사정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눈 내림이다. 눈사태로 열차가 멈추는 건 되어도 함박눈에 홀려 발걸음이 멈추는 건 안 된다. 그것은 문서로 옮기지 못하는 감정, 직장인에겐 가당치 않은 사정이다. 선한 동료들 덕에 그날은 얼버무리고 넘어갔으나 모종의 합의된 규칙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한번 엇박자가 나자 내면에선 계속 ‘한량 충동’이 일었다. 그해 봄, 사표를 냈다.

내쫓김의 불안보다 소모됨의 불행이 컸다. 퇴근 후 독서와 집필이 힘에 부쳤다. 감정의 수문이 열릴까 봐 음악을 줄였다. 영화 관람에도 소홀했다. 반응 기회를 잃어가며 감응 능력도 퇴화했다. 도식화된 문서를 생산하며 관료적 언어에 길들여졌다. 돈이 들어오는 대신 체력, 생각, 감각, 음악, 언어, 몽상, 눈물같이 형체 없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리는 일

40대 중반에 돌아온 프리랜서의 삶. 다시 광야, 다시 빈손에서 2년을 버텼다. 단행본 위주의 집필 생활이 처음인 나는 또 허둥댄다. 생산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사명감만 앞서나간 탓이다. 요 며칠은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나의 무지와 무모, 다듬어지지 않는 충동과 불안으로 주변에 폐를 끼쳤다. 덜 죄송하고 더 작정하고 ‘글’을 쓰겠다는 각오로 임하던 차에, 그날의 눈처럼 나를 멈춰 세우는 ‘불’같은 문장을 만났다. 

“창조가 단순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면, 즉 실천을 향해 장님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예술은 (…) 일종의 재현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73쪽).” 

<불과 글>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펴냄
책 제목이 <불과 글>. 접속조사 ‘과’가 말해주듯 둘은 선택적 관계다. 인류에게 불이 있던 시절엔 글이 없었으나 글을 얻고 불을 잃어버렸다. 불의 속성인 신비, 신화, 영감, 비애가 사라지면서 글이 재현으로 추락했다는 거다. “현대 작가들은 언어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언어를 하나의 순수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19쪽).”

나는 어떤 글을 그토록 쓰고 싶었을까.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글이 있고 논리가 있고 지식이 있다. 그것에 묻힌 너무 작은 목소리가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리는 일을 내심 과업으로 삼았다. 저자의 일침대로라면 육성만 담지 말고 울림과 떨림까지 담아야 하고 그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저항”으로 가능하다. 이 무위의 글쓰기라는 경지는 아득하지만 일단 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조급해진 마음은 누그러뜨려준다.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수행하려는 욕심을 무너뜨리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힘을 다스리라는 글쓰기의 이정표 앞에서 나는 또 가던 길 멈추고 숨을 고른다. 

글이 불이 되는 글쓰기를 해낼 재주는 없지만 쓰면서 알아가고 싶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거든, 혹은 됐으면 하루에 이삼십 장씩 쓰라는 말보다 윤리적이며 매혹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미 글이 범람하는 시대에 제면기에서 면발 나오듯 줄줄 써대는 게 능사는 아니며, 그렇게 능력을 행위로 소모하다간 4대 보험 적용도 안 되는 무명작가로 과로사하기 딱 좋다는 자각이 아주 세게 드는 조언이다. 고마워요, 아감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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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내 안에 검열관이 없어야 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작가와의 만남 기사가 채널예스에 나왔습니다.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담겼네요. 



http://ch.yes24.com/Article/View/32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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