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파스텔 - 논픽션 쓰기 처음학교 개강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논픽션 쓰기 처음학교> 신청 링크 : http://www.frente.kr/product?pa=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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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말하기 공부

[은유칼럼]
새봄 새 학기, 급식 메뉴도 맛있고 문화체험 행사도 많아 기대에 들뜬 소년은 선생님의 다급한 부름을 받는다. 엄마의 부고 소식이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떠나보낸 때가 열다섯.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나이가 있진 않겠으나 검은 상복이 안 어울리는 연령대는 있다. 그 소년은 스물한살이 되어 그날의 상황과 심정을 글쓰기로 풀어냈고, 어린 상주에게 감정이 이입된 동료들은 숨죽였다.

얼마 전 글쓰기 수업 장면이다. 그가 낭독을 마치자 예의 침묵이 한동안 감돌았다. 합평은 늘 긴장된다. 이런 경우처럼 상실 경험이라면 더하다. 글이 묵직하니 말이 더디 터진다. 적절한 위로와 지적의 말을 찾느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불쑥 삐져나온 자기 기억과 대면하느라 저마다 머릿속이 바쁘기도 한 거였다.

이 침묵, 이 머뭇거림을 나는 한때 견디지 못했다. 글쓴이가 울컥해 낭독을 멈추면 내가 대타로 나서 읽어주었다. 낭독 이후 의견이 없으면 말의 물꼬를 트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표현이 궁했다. 가령, 친족 성폭력은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별일 아니라고 말하기엔 별일이고, 별일이라고 말하기엔 별일이 아니어야 산다.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 말은 무력하다. (듣고 나서 무어라 말해야 좋은지 당사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믿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한번은 나도 상념에 빠져 주춤하는 사이 다른 동료의 발언으로 토론이 진행된 적이 있다. 왜 꼭 먼저 나서려 했던가 싶어 민망했다. 한발 뒤로 물러서니 침묵의 다른 기능이 보였다. 침묵은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생성의 시간이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하지 않고자 언어를 고르는 시간, 글을 쓴 이의 삶으로 걸어들어가 문장들을 경험하고 행간을 서성이고 감정을 길어내는 활발한 사고 작업의 과정이다.

나는 내 시행착오를 학인들과 공유했다. 침묵을 견디는 법, 그리고 글에 대한 평가와 삶에 대한 평가를 구별하는 방법을 얘기했다. 만약 어린 상주의 글을 읽고서 ‘부모 없이도 잘 자란 훌륭한 사람 많다’고 말하는 건 삶에 대한 평가다. 덕담 같지만 압박이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끌고 오는 게으른 태도다. 엄마가 없어서 언제 제일 힘들었는지 결정적인 한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글에 대한 평가다. 한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려는 노력의 발로다.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다. 글에 대한 평가가 더 구체적이고 다정하다. 해결사가 아닌 듣는 사람의 위치를 지키면 된다.

그날 발표자 학인은 후기를 남겼다. “무슨 용기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는지(…) 아마 정리를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글 쓰는 작업이 처음이라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그는 퇴고를 다짐했다.

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 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모든 사물과 현상을 씨-동기-로부터 본다”(김수영)는 것,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보는 일,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이것을 교육받을 기회가 드물었던 우리는 글쓰기를 핑계 삼아 공부하고 있다. 꼰대발언, 혐오발언이 승한 시대에 말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4097.html?_fr=mt5#csidxe2d3af335abd7509266efb7c208a3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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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은유 읽다 -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은유칼럼]

“엄마는 생일날 우리랑 안 있고 왜 친구 만나러 가?” 아이가 눈망울을 굴리며 물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 질문에 당황했지만 나는 면접에 임하는 사람처럼 성심껏 답했다. 우리는 매일 밥을 같이 먹고 외식도 자주 한다. 근데 생일에도 가족이 꼭 함께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아빠나 너네들이랑 같이 있으면 자꾸 일하게 된다. 동생이 어리니까 밥 먹을 때도 반찬을 챙기게 되고 신경이 쓰인다. 일상의 연장이고 특별하지 않다. 엄마도 생일에는 마음 편히 보내고 싶다고.


나는 첫아이를 저렇게 질문이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둘째를 낳았다. 6년 만에 재개된 육아는 겨우 정돈된 일상을 쉽게 뒤집어버렸다. 내 일이 바쁠 때면 두 아이 손발톱 40개가 꼬질꼬질한 채로 자라 있곤 했다. 늘 동동거리느라 혼이 빠진 나는 틈만 나면 고요히, 단독자의 시간을 탐했다. 아이는 이해했을까. 가족이 아니라 노동을 거부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일은 가족과 함께’라는 사회규범은 유니폼처럼 거추장스럽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게 인간 행복의 관점에서 온당한지 잘 모르겠다. 외부가 없는 삶은 숨 막힌다. 평소에도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인데 굳이 생일까지 모여야 하는지. 아마도 평소엔 밥상을, 생일엔 잔칫상을 받았던 아버지를 위한 가부장 문화의 잔재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 수혜자가 아닌 뒷수발 드는 ‘안’사람 처지에서는 가족 ‘바깥’이 선물이다.


엄마가 되고 나면 사라지는 권리들. 자아실현이나 경력 단절보다 먹고 자고 누는 기본 생식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게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호텔 요리를 먹어도 아이가 옆에 있으면 맛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를 두고 나오면 걱정되고 데리고 나오면 성가시고. 첫 수저를 뜨려는 찰나 아이의 ‘응가’ 한마디면 식사의 흐름이 끊긴다. 밥이 허용되지 않는 엄마의 시간. 그뿐인가. 백화점 여성용 화장실 칸 내부에는 접이식 아기 의자가 달려 있다. 몸을 못 가누거나 멋대로 돌아다니는 영·유아를 동반한 고객을 위한 장치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도 아이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녀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타인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이란 것을 알고 나면 그 생명을 키우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130쪽).” 그것을 출산 전에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타인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한 생명이 다른 한 생명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몰라서 낳는다. 그리고 키우면서 알아간다. 어디로도 도망칠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참 곤란한 관계를 출산과 양육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다.


그 무수한 날들, 너무도 모질어서 존재가 공글려지는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자랐다. 지난해 내 생일엔 군 입대를 앞둔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올해는 아직 어린 둘째가 오빠를 대신해 미역국을 차려주었다. 그냥 한번 말해보았는데 밥이 나왔다. 나는 ‘남편 재교육보다 자녀 출산 후 교화가 빠를 수 있다’는 교훈을 공유한답시고 페이스북에 인증 샷을 올렸다. 비혼 친구에게 먼저 반응이 왔다. 좋겠다, 부럽다를 연발한다. 난 스마트폰 계산기를 켰다. 20년, 365일, 세끼를 곱하니 2만1600끼 만에 한 끼가 돌아온 셈이다. 배불리 먹었고 자랑도 했으나 썩 부러워할 일은 아닌 거 너도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친구도 선뜻 인정. 이러한 극단적 비대칭 관계를 모성으로 숭앙하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자식 키운 보람 따윈 됐고요 육아 수당이나 주세요, 여성들이 요구하는 시대로 변하는 중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난 그래도 엄마가 됐을 거 같다. 아이를 무작정 좋아하는 데다가 한 생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재화와 노동의 총량에 대한 정보는 알아도 구체적인 실감은 어려우니까 용감하게 출산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놓고 여전히 생일날 온전한 식사를 위한 외출 이용권과 효행 미역국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는 심정으로 살았으리라.


이러한 내 부산스러운 행동과 생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낳을 자유’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공적 자원(281쪽)”과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여성이 비난받지 않을 자유(283쪽)”가 확보된 상태. 특정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헌신하지 않는 관계 맺음이 가능하도록 가족제도가 개선될 때까지, 나는 무한한 모성을 강요하는 세상의 모든 면접관들에게 말씀드릴 작정이다. 엄마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우에노 지즈코·미나시타 기류 지음, 조승미 옮김, 동녘 펴냄


원문보기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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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플러스 - 작가와의 만남 사진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2월 11일 겨울밤, 카페를 가득 채운 사람들. 

책 얘기와 울컥한 사연들을 오순도순 나누었다. 





젊은 여성들, 남성들이 많아서 의외였다. 

내 책이 기혼여성 독자에게만이 아니라 20대 여성도 공감한다니 

아프고 서러운 일 많은 세상이구나 싶다.



구름처럼 모인 인파처럼; 보이는 사진 



 늘 무거운 책 넣어갖고 다니는 내 처지를 가엾게 여긴 울 학인의 가방 선물, 

그리고...어떤 정성, 어떤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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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주체로 살아가기

[사람,기억,기록]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었다. 이 책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인 소설가 평론가의 글 모음집이다. 우리는 돌아가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도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내용을 진은영 시인이 자신의 글에 인용했다. 이 대목을 한 학인이 읽었다. 세월호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그러했던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학인은 황정은의 ‘가까스로, 인간’의 일부를 읽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지이잉 떨려왔다. 이 대목이 자기 얘기라서 뜨끔했다는 이십대 후반인 그는 낭독을 마치고 마저 훌쩍였다.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자기는 이제 ‘어른들은 왜 그래요’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가해자 덩어리에 어느새 속해 있더라고. 그게 슬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대안학교 교사인 한 학인은 아이들과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1년이 지났는데 뭐가 달라졌느냐고 학생들이 물을 때 또 다시 응답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 봄을 견뎌야할 것이라고 글을 써왔다. 

갑작스레 찾아든 봄볕에 마음 설레는 3월 토요일 오후 2시 우리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양심의 침몰, 느낌의 침몰을 고백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가닿았다. 유가족이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대신 싸워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했다. 남의 아픔을 어떻게 대신 싸우느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다른 이가 조심스레 고개 저었다. 수업 후 한 학인이 후기를 남겼다. 세월호 1주기에 어디서 이렇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꺼내놓고 슬퍼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 공부가 우리를 우리답게 하네요, 라고. 나 역시 글을 읽고 말을 나눠 후련하게 슬픔을 흘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경험했다. 

다시 야속한 시간이 흘렀다. 세월호 2주기를 보내고 지난여름, 글쓰기 수업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학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구동성 말했다. 책은 진즉에 사두었지만 못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었다고. 그동안 왜 못(안)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워서”라고 했다. 책을 읽고난 후 우리는 또 말을 나눴다. “지하철에서 읽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혼났다. 창피한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휴지를 옆에 놓고 읽었다. 읽을 땐 마음이 아팠는데 읽고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고 고백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상황에 두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 실천력에 자신도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첫 조카가 태어났다는 한 학인은 이런 글을 써왔다. 

“이렇게 축복으로 태어났을 295명의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사망했다...그리고 현재까지 9명은 실종상태다. (...)책을 통해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눈물은 주룩 주룩 흘렀고,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슬픔은 유가족의 슬픔이었고, 부끄러움은 세월호 뉴스 자체를 외면했던, 침묵하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이어 책을 펼쳐 자신의 마음을 찌르고 생각을 다잡아준 서문의 일부를 낭독했다. 

“부모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부모들이 평범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때 결국 화살이 돌아오는 곳은 자기 자신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날도 눈물로 어룽진 수업을 마쳤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매주 한권씩 다양한 책을 읽지만 세월호 관련 책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앞서 학인들이 고백했듯이 ‘마음이 아플까봐’ 묶어두었던 감정을 허락한다. 이러한 풍경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면 왜 안 되는가. 우리는 왜 평소에 마음 놓고 슬퍼하지 못할까. 슬퍼하는 시간은 왜 금지당하는가.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 모아두었던 슬픔을 방류해야 하는가. 

그것은 애도의 시간이 생산의 시간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한다. 그러나 슬퍼하는 건 중노동이다. 슬픔이 과하면 탈진한다. 그 엄청난 감정-정서-육체 노동에 임하면서도 그것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 되지 못하고 교환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은 그저 쓸모없는 낭비일 뿐이므로 그렇다. 

그렇게 온전한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회이기에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고, 슬픈 일이 자꾸만 생기는데도 그 슬픔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해서, 슬픈 일이 끝나지 않고 있구나 생각하는 사이 세월호 천일이 지났다. 봄이 오면 세월호 3주기다. 
그날들에 나는 또 잠시 일상에 틈을 내어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주어졌다고 안도하고 자족하지 않기 위해서,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슬픔과 일상을 분리하지 않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이 세월호 천일 이후를 살아갈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다.



# 2017년 1월 이음책방 304낭독회에서 읽은 글

(위 글에는 <글쓰기의 최전선>에 있는 일부 내용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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