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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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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전태일을 기록하며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모인 글쓰기 수업에서 을 읽을 때면, 그의 생애 만큼이나 뜨겁고 척척한 말들이 오간다. 감응의 지점이 세대별로 조금씩 다르다. 60대는 ‘신발에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 찢어지는 가난에 좀 더 공감하고 40~50대는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는’ 집요한 싸움에 반응한다. 20~30대는? 가장 열렬하다. 전태일이 그리는 생생한 노동 현장 실태에 맞장구 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월급 받아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전태일 말이 그때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구나 싶어요.” “먹고 살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이 서울로 몰린다는 것도요.” “노동력으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는 문장이 팍 와 닿아요.”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
말들에 체하다 일년에 한두번씩 종일 누워지낸다. 대개는 전날 과음하고 다음날 머리 아파서 꼼짝 못하다가 토하고 토하고 토하고 해질녘 깨어난다. 요즘은 연례 행사 과음 대신 날마다 맥주 일캔씩 혼술이 늘었다. 그래서 숙취로 앓아 누울 일도 없었는데 어제는 체기로 숙취같은 고통의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가 썼다. 커피를 남기고, 속이 답답해서 박하차를 마셨다. 새벽부터 편의점 알바 다녀온 아들 떡국 끓여주고 냄비에 남은 걸로 끼니를 때웠다. 책상에 앉아서 지난주 제주 어르신 인터뷰 녹취를 푸는데 자꾸 한숨이 났다. 머리가 아파 누웠다. 전날도 전전날도 10시간씩 누워있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인가 싶어 일어나 장을 보러 갔다. 과일을 사고 나오는 길 계산대 옆에 아이스크림 통에서 '월드콘'이 보였..
노들장애인야학 김호식을 추모하며 "호식이 형이 프리지아 받고 정말 좋아했어요. 태어나서 꽃 처음 받아본다고." 오늘 저녁 노들장애인야학 김호식 학생 추모제에 갔다. 김호식은 2011년 봄에 만난 나의 인터뷰이다. ( 202쪽에도 내 편견을 깬 멋진 인터뷰 사례로 등장한다.) 그때 내가 꽃을 사갔는데, 그 꽃을 많이 좋아했다고 당시 활동보조였던 친구에게 오늘 우연히 전해들었다. 그게 벌써 5년전 봄의 일이라는 것도,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 없다. 지천에 봄꽃 만발했는데 한묶음 꺾어 건넬 수도 없는 곳으로 그가 갔다. 시인 이상 말대로 '지상의 사람 바뀐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하고 슬픈 일인가. 철학 수업을 유독 좋아하고 루쉰과 니체를 좋아했던 그가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단다. 철학이 '세상을 살아..
제주, 기억, 사람 # 4월 7일 ~ 8일 제주에 다녀왔다. 제주에 수학여행 왔을 아이들을 위한 기억 저장소 리본에 들렀다. 언제 봐도 언제 생각해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고 아이들이 너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진실을 밝히고 어떻게 아이들을 기억해야할까. 살아남은 내게 주어진 숙제다. 기억저장소 리본에서 국가폭력피해자 어르신들 모시고 '지금여기에'에서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르신들 인터뷰 작업을 진행중인 나는 여기 따라와서 틈틈이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했다. 제주는 일본과 가까워 일본에서 살다온 분들이 많은데 그들이 간단하게 '간첩'이 되곤 했다. '전직 간첩들' 이라고 농담을 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하기가 필요했다. 서울에서 인터뷰하고 두번째 뵙는 김순자 선생님제주에 사는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