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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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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체육계의 폭력문화’라는 제목으로, 글쓰기 수업에서 A가 글을 써왔다. 핸드볼에 입문한 초등학교 5학년 추운 겨울날 체육관 바닥에 엎드려 경찰진압봉으로 맞은 일부터 대학 체육학과에서도 “대가리를 하도 박아서 두피에서 비듬처럼 피딱지가 떨어져 나온 일” 등 체육학도의 잔혹한 생애사를 생생히 그려냈다. 가해자들 폭행의 근거는 확고했다. 더 많이 때릴수록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 A의 발표가 끝나자 B가 말했다. 이 글이 자기경험과 단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일치한다며 ‘반색’했다. 핸드볼부였던 그 역시 매일 흠씬 구타를 당했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코치에게 심하게 맞아 온몸이 부었고 그 모습을 본 엄마가 기절하여 병원에 입원했던 일화를 마치 증거물처럼 기억의 서랍에서 떡하니 꺼내놓았다. 좌중은 경악했..
고통을 들어주기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 기형도 '안개' 부분 .지난주말, 기형도의 시적 정황을 빌자면 '안개가 명물인 읍'에서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데이트폭력. 그래. 이름도 슬픈 데이트폭력. 뒤늦게 알고서 '쓸쓸한 가축처럼 긴 방죽'을 서성이며 밤을 보내고 있는데 메일이 왔다. 낯선 이름. (수업에서는 닉네임을 쓴다) 삐뚤삐뚤한 글자들. "선생님 진작연락을 하고싶었는데 몸이 말을듣지를 않아 이제야연락을 드림니다 자판을 친지가 오래다보니 손가락이 말을듣지않아 망설이다..
가난을 정의하기 가난을 규정하기, 사랑을 정의하기. 각각도 큰 주제인데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소설이 참 논쟁적었습니다. 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과 사람 마음에 대한 순수하고 직관적인 정신이, 투박하지만 그래서 힘있게 펼쳐집니다. 뜨겁다가 거북하다가 애달프다가 슬프다가 불쌍하다가 웃기다가 온갖 감정의 과잉상태를 넘실대며 페이지가 넘어갔어요.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문학적 빈곤)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지만, 가난이 사랑의 최대 훼방꾼 노릇을 하네요. 소설에서도요. 그런데 저는 남자주인공 제뷔스낀이 그리 비참해보이지 않았어요. 저 많은 언어들, 표현들, 감정들이 어떻게 화수분처럼 계속 나올까? 비록 동어반복이고 유치해도 자기 감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면서 말을 기르고 어르고 달래며 정신의..
EBS FM 토요인문학 콘서트 출연 책 읽어주는 라디오 EBS FM 토요 인문학 콘서트. 을 중심으로 글쓰기 이야기 나누고 왔습니다. 진행자가 탤런트 이인혜님과 저자 채사장님 입니다. 자본가스럽지 않은 선한 인상의 그가 옆에 서고, 보자마자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블링블링 인형 그녀가 팔짱을 끼어 자세 고정. 옴짝달싹 못해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이 무슨 형벌인가 싶...ㅋ "책의 목차를 보면 첫번째 파트가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에요. 어떤 의미인가요?""옹호의 사전적 정의가 두둔하고 편들어 보호하다, 란 뜻이거든요. 글쓰기가 토잌처럼 스펙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데요. 그래서 글을 열심히 쓸 수록 자기를 부정하고 남을 배척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글쓰기가 삶을 겉꾸미고 비방하는 수단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반대적 의미로 옹..
간판의 눈물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도 다른 것을 본다. 속되게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말하고 폼 나게는 ‘관찰의 인문학’이라 칭한다. 이라는 책이 있다. 각기 다른 12명의 사람이 같은 상황을 자신의 직업적 관점에서 다르게 바라보는 경향을 담은 보고서다. 정신과 의사는 아내부터 슈퍼마켓 점원까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병적 증상을 읽어내고 시각장애인은 거리에서 주파수의 진동을 느낀다. 이런 현상을 프랑스인들은 ‘직업적 왜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활자에 애착이 있는 나는 간판에 눈길이 절로 간다. ‘나폴레옹 제과점’ 같은 위용에 찬 이름은 대로변에서, ‘스티브 잡술’ 같은 재치 있는 간판은 홍대 부근 삼거리에서, ‘김밥군 라면양’ 같은 알콩달콩 간판은 여고 앞 2차선 도로에서, ‘정다방’ 같은 우직한 이름은 시..
성북동, 최순우 옛집 두문 즉시심산 (杜門卽是深山). 문을 닫아 걸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다, 라는 뜻이다. 혜곡 최순우 옛집에 걸린 편액이다. 최순우는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분으로 미술사학자다. 성북동 자락에 그가 살던 고졸한 아름다움이 배인 한옥이 보존되어 있다. 조붓한 앞마당도 좋지만 모퉁이 돌면 나타나는 수려한 뒷뜰에 취한다. 햇살과 바람과 잎새 종일 뒤척이는 그곳, 깊은 산중이라 할만 하다. 최순우는 창호지 문 열고 들어가면 가 닿는 깊은 산중 '자기만의 방' 에서 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읽어보고 싶다. 그 방을 생각하며. 김수영이 나는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다고 했는데, 나는 글은 안 쓰고 글방만 보면 탐낸다. 훔치고 싶은 방. 어제 성북동 전시장 오뉴월 갔다가 정호씨가 가보자고 해서 우연히 들른..
전영관의 30분 책읽기 - 글쓰기의 최전선 출연 국민라디오 - 전영관의 팻캐스트 출연 http://www.podbbang.com/ch/6642?e=21709910 * 이 사진은 다음회 출연자 정명섭 소설가가 찍어주심
5월 27일 어슬렁정거장 강 - 삶을 옹호하는 글쓰기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등 인터넷 서점과 메멘토 출판사가 함께 한 출간 기념 강연회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자기 삶의 동력(글감)이 있다는 뜻이다. 자기 고유한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쓰면 세계 어딘가 한 명의 독자가 응답한다." 출간 한 달. 인터넷 서점 독자들 대상으로 한 강연회가 지난 27일(수)에 열렸습니다. '삶을 옹호하는 글쓰기' 라는 타이틀을 내걸고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 다섯가지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1. 자기 경험과 느낌에서 출발했는가 -> 자기에 대한 무지 자각 2. 예시와 자료가 충분한가 -> 다른 세계로 가는 출구 3. 한 줄 핵심 문장이 있는가 -> 사고 형성 4. 글 쓴 사람이 보이는가 -> 응답 가능성 5. 질문이 들어있는가 -> 삶과 타인에 대한 이해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