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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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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 2차 피해자 해인 -"성서비스노동자의 성폭력 고통, 외려 커요" 한겨레 박승화 더한 고통, 덜한 고통이 있을까. 같은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해도 내가 의미하는 고통으로 너는 이해하지 않는다. 고통은 서로의 상태를 비교하도록 허용되는 체험이 아니다. 영혼의 경험이다. 윤동주의 시구대로 “늙은 의사가 젊은이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내재적이고 전달 불가능하며, 그래서 비교 불가능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쉬이 비교당한다. 장소, 시간, 수법 등을 따져 육체적 경험으로 여기고 고통의 양을 객관화한다. 안방에 침입한 괴한에 의한 아동의 피해와, 모텔에서 일어난 유흥업소 종사자의 피해는 같은 성폭력이라도 달리 간주된다. 이해받는 고통, 의심받는 고통은 있다. 정숙한 여자와 타락한 여자라는 사회적 척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인(가명)은 후자의 경우다. 사건 직후 ..
<그을린 예술>- 휴식과 재생산의 밤을 사유와 쓰기의 밤으로 ‘휴식과 재생산의 밤을 사유와 쓰기의 밤으로 지켜내야’ 하는데 그러기가 얼마나 힘이든지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간 직장에서 계속 컴퓨터로 뭔가를 쓰는 작업하다보니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게 되질 않더라고요. 눈도 허리도 아프고. 몸을 가로로 눕히고만 싶은 거죠. ‘부디 직장인도 수업들을 수 있게 해주세요’ 라는 말에 동조하여 토요일 6시에 수업을 마련해놓고 저는 성찰의 계기를 안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척박한 노동현실에서 일상의 불길로 그을린 예술 수행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의 삶에서 ‘하나-더’를 무한히 욕망하고 추구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자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분들도 글쓰기수업이란 새로운 영토에 자신의 몸을 들여놓았을 테고요. 그것이 점차 좌절되는 것을 집단적으로..
이상 권태_단 하나의 흥미진진한 생각 하나 기원을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어디서 불어와서 제 마음에 감겼는지 모르는 글쓰기 잠언들이 꽤 있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말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적용하다보니 제 생각처럼 되어버린 건데요. 그것들이 제 말에서 또 흘러흘러 여러분들 손끝에 이르면, 그래서 글 쓸 때 어떤 염력을 발휘하면 좋겠어요. 가령, 지난시간 내내 강조한 부분, “주제를 좁혀라” 하고 말이죠. 관련 글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누구도 무언가에 ‘대한’ 책이나 글을 쓸 수는 없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고, 멜빌은 고래잡이에 대한 책을 쓸 수 없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시간과 장소에 있는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만 쓴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시작하기 전에 먼저 범위를 좁혀야 한다.…너무 부담스러운 과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