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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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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혁 황금어장PD - 무릎팍도사, 영상시대 질문법 잘 던진 공 하나가 게임의 승패를 가르듯, 잘 던진 질문 하나가 토크쇼의 생명을 발한다. 민감한 문제도 자연스레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과 궁금증을 일거에 날리는 진솔한 답변이 돋보이는 신개념 토크쇼 MBC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여운혁PD가 똑똑한 Q&A의 비법을 밝힌다. “다들 궁금해 하죠. 기자들도 못 물어보는 걸 강호동씨가 천연덕스럽게 물어보니까요. 헌데 출연자들은 의외로 자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싶어 하거든요. 그간 못한 이유는 자기 말이 활자화 되는 순간 문자에 의미가 갇히니까 입을 다물었던 거죠. 무릎팍도사에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표정과 어투가 다 나오고 왜곡의 우려가 적으니까 맘 놓고 얘기하는 거 같아요. 기존의 토크쇼가 문자시대의 질문이었다면 저희는 영상시대의 질문이라고 할까요."..
<30주년 기념공연> 다시, 정태춘 박은옥을 기다리며 “이런 일이 있었어요. (경기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인) 대추리 싸움 하다가 논구덩이에서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경찰에 연행돼 가지고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거기 병원에 쫓아온 후배가 그랬대요. 형님은 아직도 이러고 사시냐고, 세상 좋아졌는데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다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지금도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박은옥)” 현관문 앞에서 이틀째 뒹구는 한겨레신문을 펴자 정태춘 박은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요즘 들어 신문을 외면했다. 괴롭고 무기력해지니까 안 봤다. 헌데 구석에 방치된 것은 신문이 아니라 시대의 진실이고 정태춘의 노래였다. “군부독재가 물러났지만 이젠 더 공고하고 사악한 자..
그후 / 정일근 '생을 담은 한잔 물이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사람 떠나고 침대 방향 바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불과 베개 새것으로 바꾸고 벽으로 놓던 흰머리 창가로 두고 잔다 밤새 은현리 바람에 유리창 덜컹거리지만 나는 그 소리가 있어 잠들고 그 소리에 잠깬다, 빈방에서 적막 깊어 아무 소리 들을 수 없다면 나는 무덤에 갇힌 미라였을 것이다, 내가 내 손목 긋는 악몽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먹은 것 없어도 저녁마다 체하고 밤에 혼자 일어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바늘로 따며 내 검은 피 다시 붉어지길 기다린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정일근 시집, 문학과지성사 "저는 혼자 살아요" "결혼.... 안 하셨나봐요?" "해봤어요" ..
아들과 딸 며칠 전 아들 학교에 갔다. 아들 학교가 내년에 실시될 교원평가제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공개수업을 실시했다. 아들 반은 체육시간이었다. 전교생이 이천 명인데 운동장이 매우 협소하다. 100m달리기를 못해서 50m달리기로 시험을 봤을 정도다. 그 좁아터진 곳에서 다섯 학급이 체육을 하러 나왔다. 한 반에 40명 씩 200명에 학부모까지 모이니까 이건 완전히 추석 연휴 전날 서울역 대합실보다 더 바글바글 복잡했다. 체육수업이 과연 가능할까 염려스러웠는데 세상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 학급별로 달리기, 줄넘기, 농구 등등을 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기까지 했다. ‘다 살게 마련이구나...’ 감탄을 하면서 지켜보는데 어떤 엄마가 말을 건다. “누구 엄마세요? 애가 학교생활 재미있다고 하죠? 담..
서울풍경화첩 - 서울, 사랑해도 될까요 # 홍대 앞 직장을 옮기느라 예기치 않은 휴가가 생긴 친구가 제주도에 같이 가자고 한다. 가고팠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싶었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한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홍대앞 주차장길을 걷고 있었다. “좀 서운한 영화다” “감동이 없어도 눈물은 나네...” 조조영화로 본 ‘내사랑 내곁에’의 감상평을 두런두런 주고받으며. 환한 대낮의 홍대 앞은 생경했다. 주로 밤과 새벽사이에만 머물던 곳. 1년 365일 성탄절 이브처럼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거리가 헐겁게 비어 있다. 촬영이 끝난 세트장처럼 가짜 동네 같다. 길을 잘못 들어선 거 아닌가 싶어 연신 두리번거렸다. 수다스럽던 친구가 입을 꼭 다문 듯 새침한 거리. 걷는 동안 하나둘 셔터가 올라가고 홍대 앞이 기지개를 편다. 맞다. 여..
작심 / 문태준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모든 약속은 보름 동안만 지키기로 했네 보름이 지나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다른 데를 보듯 나는 나의 약속을 외면할 거야 나의 삶을 대질심문하는 일도 보름이면 족해 보름이 지나면 이스트로 부풀린 빵 같은 나의 질문들을 거두어 갈 거야 그러면 당신은 사라지는 약속의 뒷등을 보겠지 하지만, 보름은 아주 아주 충분한 시간 보름은 나를 당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시간 그리곤 서서히 말들이 우리들을 이별할 거야 달이 한 번 사라지는 속도로 그렇게 오래 - 문태준 시집 , 문학과지성사 배우 김영호씨를 만났다. 김영호. 한번쯤은 같은 반이었을 것 같은 아니면 소설에서 주인공 친구로 나왔을 법한 순하디 순한 이름의 주인공다웠다. 훤칠한 키보다 먼저 들어오는 순박한 웃음과 허공을 응시하는 멍한 눈빛에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안토니아스 라인> 미래를 낳는 엄마-되기 여자는 출산을 거치고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젠더를 크게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호적과 아이에게 ‘몸’이 묶이기 전까지는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게 자유로운 개체로 맘대로 살 수 있고 그래도 사실 큰 탈이 없다. 적어도 한 생명이 굶어죽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면 제도의 벽, 일상의 벽에 자꾸 가로막힌다. 맞벌이를 해도 애가 아플 때 눈치 보며 조퇴하는 것도, 회식 때 먼저 일어나는 것도 대부분 엄마다. 불편하고 부당하고 답답한 게 많다. 나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당연한 질서에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고민은 고민대로 하면서 끼니와 빨래의 영원회귀를 견디며 아이와 함께 매일을 살아낸다. 개인적으로 육아의 과정에서 나를 무화시키는 경험은 특이했다. 단단한..
박봉수 직업연구원 - 평생다직업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산과 들의 수천 가지 꽃을 훤히 꿰는 야생화전문가처럼, 그는 삶 속에 피어난 만여 개 직업을 연구하는 직업전문가다. 해마다 ‘한국직업사전’을 편찬해 사회구성원의 인생농사를 돕는다. 세월 따라 뜨고 지는 직업이 생겨나게 마련이지만, 그가 보기에 유망 직업은 없다. 어느 직업이든 자기 고유의 개성과 전문성을 꽃피우는 사람만이 전도유망하다고 말한다. 인생은 길고, 직업은 많다 “한국직업사전은 우리나라 직업의 기초를 나타내는 인프라입니다. 직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업전망을 조사하는 데 바탕이 되는 자료지요. 주로 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가 이용합니다. 우리나라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지침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편찬을 담당한 박봉수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 이 처음 발간됐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