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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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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사회적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파리에서 공부하는 후배를 만났다. 방학이라 잠시 들른 건데 2년 전에 나왔을 때보다 몸이 더 실해졌다. 유학 전에는 보통 체격이었는데 4년 사이에 10kg 이상이 늘어난 것. 의대생이라 공부가 힘들고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데다가 집에 오면 10시 반인데 동거남이 요리를 너무 잘해서 항상 한상 가득 저녁을 차려 놓는다고 그거 먹고 이렇게 됐다고 했다. 그럼서 서울 여성들이 너무 날씬하다고, “다 모델이야 모델~” 이라면서 심지어 나에게도 “언니는 파리 오면 영양실조 걸린 사람이에요!”라고 한다. (몸무게 55킬로그램에 허리 27사이즈 입는 영양실조도 있나-_-;) 암튼 파리에서 자기는 아주 평범한데 여기 오니까 너무 자기만 튄다고 멋쩍어한다. 사실 그녀는 누가봐도 애 둘 낳은 구세대 엄마 실..
안치환, 인생에 술 한잔 사주다 안치환은 내게 큰사람이었다 크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다. 시대의 노래를 부르는 큰 사람. 광장에 어울리는 매끄러운 고음을 가진 큰 사람. 길가의 플라타너스처럼 키가 큰 사람. 그런 안치환이기에, 세상에 눈 뜬 이후부터 줄곧 동네의 앞산 마냥 내 삶의 배경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그였기에, 나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번 노무현 추모공연에서 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온몸을 불태워 노래하는 그. 감동에 겨워 눈을 떼지 못하면서 바라본 그는 충분히 낯설었다. 마치 집에서만 보던 아버지를 지하철 인파 속에서 보았을 때처럼, 본래 모습을 본 것 같은 당혹감과 반가움, 애잔함과 미안함이 뒤섞여 감정이 묘했다. ‘큰 사람’ 안치환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 안치환. 그가 지금까지 '흐트러짐 없이'..
눈물의 방 / 김정란 '눈물 속으로 들어가봐'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 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네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보면 그 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 김정란 시집 , 나남출판 '내가 어떻게 너를 낳았을까.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루에도 몇 번씩, 고장난 벽시계에서 뻐꾸기 튀어나오듯이 수시로 나오는 말이다..
오정일 오정태 형제 - 형 때문에 떴어! 뭔 말인지 알지? 둘이 있으면 웃음 떠날 새가 없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단짝친구 같은 형제였다. 동생이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날 때도 등을 두드리며 용돈을 쥐어준 오정일 사우는 요즘 ‘인기 개그맨 오정태’를 동생으로 둔 덕에 유명세를 치르느라 행복에 겹다. 웃으면 다 감기는 튀밥 같은 눈이 쏙 빼 닮은 붕어빵 형제의 ‘웃음은 형제애를 싣고' 개그의 피가 흐르는 정일이 동생 정태 여기는 MBC 일산드림센터. 대한민국의 주말 밤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MBC간판개그프로 팀이 모였다. 봄꽃마냥 알록달록 생기진 표정에 왁자지껄 인사말 오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그맨 오정태 씨가 동료들에게 ‘우리형’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와~ 형이세요? 그러고 보니 닮았네요.” “어머, 형은 잘생겼다~” "정태형! 형이 더 ..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의 기일 엄마의 기일이었다. 돌아가신지 3년이 흘렀다. 긴 시간이었다. 여자에게 엄마의 죽음은 아이의 출산에 버금가는 중요한 존재사건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나는 한 차례 변이를 경험했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가 달라졌다. 삶이라는 것, 그냥 살아감 정도였는데,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삶은 이미 죽음과 배반을 안고 시작된다. 그것이 ‘인생 별 거 없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죽으면 한 줌 재로 될 몸뚱이 나를 다 쓰고 살자’는 억척스런 삶의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엄마의 딸. 굳센 금순이가 됐다고나 할까. 이것은 존재의 깊이와 상관없는 강도다. 단단함. 억척스러움 같은 거...
광주 / 이성부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나를 불러' 한 나라가 다시 살고 다시 어두워지는 까닭은 나 때문이다. 아직도 내 속에 머물고 있는 광주여, 성급한 목소리로 너무 말해서 바짝 말라 찌들어지고 몇 달 만에 와보면 볼에 살이 찐, 부었는지 아름다워졌는지 혹은 깊이 병들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고향, 만나면 쩔쩔매는 고향, 겁에 질린 마음을 가지고도 뒤돌아 큰 소리로 외치는 노예, 넘치는 오기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나를 불러 왼종일 기차를 타고 내려오게 하는 곳 기대와 무너짐, 용기와 패배, 잠, 무서운 잠만 살아 있는 곳, 오 광주여 - 이성부 시집, . 민음사 '나는 광주가 참 좋아요.' 올 봄이었는지, 작년 봄이었는지 모르겠다. 광주역 앞. 기차를 기다리던 나는 가슴팍으로 짱짱하게 파고 드는 남도의 햇살을 쬐이면서 중얼거렸다. "만약에 서울..
반복을 견디자 “귀에서 불난다. 일단 끊자.” 겨우 달래 전화를 끊고 핸드폰 액정을 보니 60:44 라고 찍혔다. 한 시간 넘게 통화했다. 귀가 아직까지도 욱신거린다. 다짜고짜 멋지게 죽는 방법을 물어오는 그에게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진 못했지만, 매정하게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떤 사건이 있었다. 자기는 교사로서 당연히 말려야했고 제지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그게 서운하단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상처받은 거다. 교직을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모든 걸 다 걸고 아이들을 사랑했는데” 돌아오는 건 배신감뿐이라고 한숨짓는다. “애들로서는 뭐 할 말 했네. 애들 입장에선 당연한 말이야.” “뭐? 나도 애들은 이해해. 그런데...” “고2면 몇 살이..
조개의 깊이 / 김광규 "끝내 하지 않은 말도 있었다" 결혼을 한 뒤 그녀는 한 번도 자기의 첫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도 물론 자기의 비밀을 말해 본적이 없다. 그렇잖아도 삶은 살아갈수록 커다란 환멸에 지나지 않았다. 환멸을 짐짓 감추기 위하여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했지만, 끝내 하지 않은 말도 있었다. 환멸은 납가루처럼 몸 속에 쌓이고, 하지 못한 말은 가슴 속에 암세포로 굳어졌다. 환멸은 어쩔 수 없어도, 말은 언제나 하고 싶었다. 누구에겐가 마음속을 모두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마음놓고 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다가 그런 구절이 발견되면 반가워서 밑줄을 긋기도 했고, 말보다 더 분명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