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아프게 하는 착한 사람들

[은유칼럼]

오빠가 서른 초반에 병을 얻은 뒤, 엄마는 모임만 다녀오면 눈물지었다. 특히 명절이나 생일 등 가족 행사에서 다른 친척이 자식 얘기 하는 걸 견디지 못했다. 오빠 또래의 사촌들이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평범한 얘기는 그런 평범한 삶에서 멀어진 (듯 보이는) 자식을 둔 엄마를 소외시켰고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게 했다. 운명의 얄궂음일까. 유독 공개적인 자식 사랑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던 한 친척의 생일날, 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른 후 외숙모가 말했다. 엄마가 외숙모에게도 하소연을 종종 했다고 한다. 유일한 기댈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숙모는 짝 채워 장가까지 보낸 외아들을 사고로 잃는 큰 아픔을 겪었다. 그렇지만 그 후 친지 누구도 당신 앞에서 자식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한 네 엄마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사실 나는 엄마의 괴로움에 공감하기보다 엄마의 나약함을 원망했다.

 

가족 얘기가 그 자체로 차별과 배제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건 다른 개별적 죽음, 그리고 사회적 비극을 접하면서다. 세월호 유족은 다른 사람하고 술 마시면 감정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유족들끼리 만난다고 했다. 눈치 보지 않고 웃고 싶을 때 웃어도 되고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되니까. 가족지상주의 사회에서 가족이 온전치 못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소외는 비슷한 풍경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차별 감정의 철학』 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애정의 표명 중에서 가족애의 표명만이 안전한 특권을 가진다. 어떠한 빈축도 사지 않고 어떠한 비판도 받지 않는다. 이는 가족 복이 없는 사람, 가족이 없는 사람, 아니 한발 더 나아가 가족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가족을 미워하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인연을 끊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잔혹한 현실이다.”(140쪽)

 

얼마 전 2014년 1월 20일 일터에서 동료의 괴롭힘으로 자살한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어머니를 만났다. 근황을 얘기하던 어머니는 가족 모임에 나가기가 싫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조카들을 보면 아이 생각이 나고, 동준 군 외할머니는 죽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운다고 핀잔을 주고, 마음 정리 잘 하라고 형제들은 당부하는데 그 자리가 불편하다고, 그렇다고 안 가면 더 걱정하니까 안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친구들 모임은 좀 낫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한창 친구의 아이들이 군대 갈 즈음이라 만나면 군대 보내고 면회 가고 제대한 얘기가 화제다. 같이 기뻐하고 안도하다 문득 울컥한다. “나 눈물 나, 니 아들 잘났어.” 속내를 터놓기도 하지만 답답하다. 분명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나를 아프게 했는데 나한테 뭐라고 말한 게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라서 그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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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나는 어머니와 페이스북 친구다. 동준 군 또래인 내 아이의 군 입대와 제대 소식을 SNS에 올렸다. 막연히 생각은 했다. 혹시 이 포스팅을 군의문사 유가족이 본다면 마음이 아프겠다고. 그러나 자식을 군에 보내는 두려움조차 누군가에겐 복에 겨운 투정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진 이르지 못했다. 동준 군의 어머니처럼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도 여느 집 청년의 군 입대 소식에 눈물지었을지 모르겠다. 아이는 떠나도 부모의 자식으로는 나이를 계속 먹는다.

 

동준 군 어머니의 바람은 소박했다. 내 앞에서 ‘아무도 자식 얘기를 하지 마라’는 부탁이 아니라 ‘나도 자식 얘기 하고 싶다’는 간청에 가깝다.

 

“죽고 없지만 우리 아들 얘기 할 수 있다고 봐요. 근데 내가 얘길 하면 사람들이 초 긴장해요. 옆구리 쿡쿡 찌르거나, 아예 맘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어느 정도 풀어야만 감정이 사라지는데 계속 누르고 있어야 되잖아요. 친구들한테도 그랬어요. 니들이 애들 군대 얘기 손자 얘기 할 때 나도 맨날 생각나고 슬퍼. 그래도 나는 웃으면서 니들 얘기 듣고 잘했다고 하는데, 친구라면서 내가 동준이 얘기하면 왜 불편해하냐고요. 살고 죽고 아프고 병들고 생로병사도 삶이에요. 결혼하고 연애하는 것만 삶이 아닌데, 그것도 삶이고 그 과정을 이기는 것도 삶인데 왜 그런 얘기를 편안하게 못 들어 넘기냐. 그게 서운하죠.”

 

우리 엄마도 아픈 자식 얘기를 어디서든 후련하게 할 수 있었으면 울화가 풀렸을까. 조금 더 오래 살았을까. 동준 군 어머니 말씀에서 엄마가 감내한 외로움의 크기를 짐작한다. 피붙이인 나도 감정노동을 거부했다. 나 역시 인생 최대의 난국을 보내는 중이어서 같이 무너질까 봐 엄마를 더 피했다. 만약 어느 자리에서든 엄마가 위축되지 않고 괜찮은 척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슬픔을 떠들었다면, 듣는 사람들이 동정이나 입막음이 아닌 토닥이는 눈길로 들어주었다면 적어도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세상에서 삭제되는 ‘시선의 차별’”(85쪽)을 겪진 않았을 것 같다.

 

동준 군 어머니는 자식이 그리울 땐 가끔 기사를 검색해 읽는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기억하는 게 슬프지만 그게 세상과 자식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인 것이다. 아이가 허술한 시스템에 의해서 죽었고, 그렇게 자식을 보낸 사람들은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우리 엄마의 친척이, 동준 군 어머니의 친지가 그랬듯이 “악의 없는 농담과 별생각 없는 자랑”에 차별의 싹이 숨어 있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도 사회적 부적격자도 아닌 ‘선량한 시민’인 그들이 차별 감정을 생산하고 있다.”(92쪽) 이처럼 ‘악독한 권력자’가 아닌 ‘선량한 시민’에 의해 생산되는 차별 감정이기에 이것을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방법은 이것이 유일하다. 자기 안에 숨은 나태함과 눈속임과 냉혹함과 끊임없이 싸우기.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빠져 있는 한, 나는 ‘옳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사람은 차별 감정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없다.”(205쪽)

 

어김없이 돌아온 슬픔의 달 4월,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의 나태와 둔감을 경계하며 세월호에서, 세월호만큼 위태로운 일터에서 침몰당한 아이들과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숱한 자식 이야기가 오가는 그 쓸쓸한 자리를 견뎠을까. 

 

* 채널예스에 실림


원더플 비혼,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은유칼럼]

전주에는 친구 봄봄이 산다. 봄봄은 5년 전 전주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내가 하는 글쓰기 강좌 16주 과정에 참여했다.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를 운영하는데 강의료와 교통비를 동료들이 지원해주어 자기가 ‘대표’로 유학 오는 거라 했다. 그녀의 자기소개는 멋지고 대단하게 들렸다. 수업에 오는 기혼 여성 중 일부는 (자격증도 나오지 않는) 자기 공부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쓴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거나 배우자를 설득하기 곤란하다는 고민을 터놓곤 했다. 그렇기에 봄봄이 들려주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넘어선 삶, 결혼 제도 바깥에서 이뤄지는 존중의 반려 관계는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틔워주었다.

봄봄은 멀리서 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가장 먼저 강의실에 와 있었다. 늘 수줍게 웃었고 성실히 글을 써냈다. 십년지기 네댓 명이 주축이 되어 비혼 공동체를 꾸리는데 살림집은 따로 있는 1인 가족 네트워크 형태라는 것, 각자 특성에 따른 역할 분담과 활동들, 갈등을 어떻게 풀거나 뭉개며 사는지 찬찬히 기록했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낯선 도시의 지도처럼 복잡해 보이기도 했다. 부딪치고 고심하며 나은 삶을 빚어내는 과정이기에 유토피아 보고서는 아니었다. 그래도 문장마다 힘이 넘쳤다. “시도의 에너지는 정지의 안정성보다 위대하”므로(134쪽).


ⓒ시사IN 윤무영

올해 초 봄봄에게서 초대장이 왔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은 비혼 여성들의 space&link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기혼 여성들도 함께 참여하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폭이 넓어졌습니다.” 거기서 봄봄은 글쓰기 모임을 꾸리고 있는데 매번 읽기와 쓰기가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다며, 작가와의 만남에 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강연 주제는 ‘여성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였다.


산수유 꽃망울 터지는 3월 셋째 주 금요일, 한달음에 전주로 달려갔다. 봄봄은 여전히 잔꽃무늬 옷을 입고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강연장에는 여성 30여 명이 자리를 꽉 채웠다. 맞은편 벽면에는 ‘원더풀 비혼-너에겐 친구가 있잖아’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가슴이 콩콩 뛰었다. 여자들만의 신나고 친밀한 세계. “나는 말도 부드러워지고 생각도 부드러워져서 상기한다. 모든 것이 머지않아 다른 모든 것이 된다는 걸(146쪽).”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고 열을 논하다 보면 속 깊은 질문 하나는 반드시 던져주는 여성들과 함께하는 강연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는 강연 전날 내려가 봄봄의 집에서 묵었다. 봄봄의 벗들과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지역에서 비혼 공동체를 꾸린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남성들에겐 이해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소하게는 “여자들끼리 있으면 짐을 나르거나 험한 일은 누가 하느냐”라고 묻거나, 진지하게는 “그렇게 폐쇄적으로 살지 말고 바깥으로 나오라”고 충고한다는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살뜰한 챙김에서 상상하는 다른 삶

대로변에 공간을 갖춰 10년 가까이 유지하는 단체를 불완전하거나 폐쇄적이라고 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남자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연을 앞두고도 문의가 왔단다. “남자인데 가도 됩니까?” 여성 생활 문화 공간이라서 여성이 우선이며 정원이 이미 차서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혹스러웠을 거 같다. 남자가 남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충만한 1박2일을 보내고 집에 와서 봄봄이 들려준 선물상자를 열었다. 쌀·멸치·깨소금·들깻가루·양말·수첩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이런 살뜰한 챙김에서 깨닫는다. 다른 삶을 상상하라고 말하지만, 그러한 “세상은 우리의 깊은 관심과 소중히 여김의 소용돌이와 회오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124쪽)”을.







* 시사인 '은유 읽다'



출판하는 마음... 알면서 '외않사'

[사람,기억,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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