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별 해금연주자 - 국악계의 보아, 나의 삶 나의 해금

[행복한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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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훈

이름은 주문이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이름에 깃든 기운은 염원이 된다. 스물여덟 해를 꽃과 별로 불렸다. "꽃별아". 수천수만 번의 울림이 그녀의 생애를 빚었다.

국악계의 별로 뜨고, 무대 위의 꽃으로 피어난 신세대 해금연주자 '꽃별'의 얘기다. 그녀도 말한다. 이름이 영희나 철수인 것보다는 뭘 해도 도드라졌으니, 이름에 책임을 지려고 열심히 살았노라고.





'열심'의 방법은 끼와 욕망에 충실하기다. 무엇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구애됨이 없다. 꽃별의 해금은 클래식, 팝, 뉴에이지를 넘나든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연주스타일도 분방하다. 날렵한 청바지 차림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는다. 때로는 맨발로 무대에 오른다. 정장이나 한복이 불편했단다. "어린 마음에 튀고 싶었다"고 터놓는다. 솔직한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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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꽃별, 해금

임종진 사진가 - 광석이형 미공개 사진전 '그가 그리운 오후에'

[행복한인터뷰]

시간이 기억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뭇 사람에게 1월은 이 신년벽두 주옥같은 결심을 낳는 달이라면 그에게 1월은 '광석이형'에 대한 그리움이 한량없이 짙어지는 시간이다. 1월 6일은 김광석의 12주기다. 어느새 십년이 훌쩍 지났지만 긴 세월의 더께를 뚫고 그 날의 아릿함은 새순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그 감정이 꼭 처연한 슬픔만은 아니다. 시큰한 기쁨과 짠한 고마움에 가깝다. 여전히 김광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고, 또 새로이 빠져드는 이들이 소리 없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갈수록 깊어지는 김광석의 존재감과 팬들의 애틋함은 작은 기적을 불러일으켰다. '광석이형 추억하기'는 어느 순간부터 '견뎌야할 시간'에서 '누려야할 시간'으로 변해갔다. 그가 가슴속에 서리서리 접어두었던 낡은 필름을 조심스레 펼친 이유다.

어느새 12주기, 이제야 벽장 속 낡은 필름을 꺼내다

벽장에 넣어두었던 필름을 십년 만에 처음 꺼냈습니다. 먼지가 '풀풀' 나는 그 필름 속에서 광석이형은 그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참 많이 웃고 있더군요. 제가 사진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찍은 것들이라 노출도 프레임도 엉망이라 부끄럽지만 이 사진들을 혼자만 품고 있을 게 아니라 그를 아끼고 기억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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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아 피아니스트 - "이젠 통일의 꽃으로 불러주세요"

[행복한인터뷰]
[인터뷰] 북에 휠체어 1004대 보내기와 평양공연 추진하는 이희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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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훈

"내년 6월에 평양 공연을 추진 중입니다. 북한사람들이 장애가 심한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통일을 위해 ‘다시 만납시다’ ‘반갑습니다’ ‘임진강’ ‘여성이 꽃이라네’ 등 북한노래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희아(23)씨가 앞으로는 ‘통일의 꽃’으로 불러달라며 환하게 웃는다.
무릎 아래가 없고 손가락이 네 개뿐인 중증장애를 안고 반도의 딸로 태어난 그가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커트머리에 앙증맞은 핀을 꽂고 ‘희망’을 연주하던 ‘기적의 소녀’는 이제 옛말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이희아씨는 통일과 장애인인권을 위해 적극 힘쓰고,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선거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서는 ‘행동하는 사회인’이 됐다. 그런 그를 지난 6일 ITF 태권도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1차로 250대 휠체어 전달, 십시일반 모금 계속

이희아씨는 ‘북한장애인 돕기 휠체어 1004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북한 장애인돕기 자선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공연수익금과 기부금으로 휠체어 250대를 구입해 1차로 북한에 전달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십시일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한번 보여주는 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1004대를 보낸다는 계획이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북한 장애우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식량난도 심하고 어렵다고 하는데 장애인들은 더욱 힘들 것입니다. 북한 장애우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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