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공연> 다시, 정태춘 박은옥을 기다리며

[극장옆소극장]

“이런 일이 있었어요. (경기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인) 대추리 싸움 하다가 논구덩이에서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경찰에 연행돼 가지고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거기 병원에 쫓아온 후배가 그랬대요. 형님은 아직도 이러고 사시냐고, 세상 좋아졌는데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다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지금도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박은옥)” 

현관문 앞에서 이틀째 뒹구는 한겨레신문을 펴자 정태춘 박은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요즘 들어 신문을 외면했다. 괴롭고 무기력해지니까 안 봤다. 헌데 구석에 방치된 것은 신문이 아니라 시대의 진실이고 정태춘의 노래였다. “군부독재가 물러났지만 이젠 더 공고하고 사악한 자본의 독재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군부독재와 싸우던 사람들이 그런 변화에 대해선 외면하고 그 질서 속에 들어가 명랑한 얼굴로 개혁을 말하고 민주화를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정태춘선생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두 분이 5년 만에 공연을 하신다. 공연도 보기 전에 이미 노래 스무 곡쯤은 들은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더보기

신고

그후 / 정일근 '생을 담은 한잔 물이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올드걸의시집]
 


사람 떠나고 침대 방향 바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불과 베개 새것으로 바꾸고

벽으로 놓던 흰머리 창가로 두고 잔다

밤새 은현리 바람에 유리창 덜컹거리지만

나는 그 소리가 있어 잠들고

그 소리에 잠깬다, 빈방에서

적막 깊어 아무 소리 들을 수 없다면

나는 무덤에 갇힌 미라였을 것이다, 내가

내 손목 긋는 악몽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먹은 것 없어도 저녁마다 체하고

밤에 혼자 일어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바늘로 따며

내 검은 피 다시 붉어지길 기다린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정일근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지성사



 


더보기

신고

아들과 딸

[차오르는말들]

며칠 전 아들 학교에 갔다. 아들 학교가 내년에 실시될 교원평가제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공개수업을 실시했다. 아들 반은 체육시간이었다. 전교생이 이천 명인데 운동장이 매우 협소하다. 100m달리기를 못해서 50m달리기로 시험을 봤을 정도다. 그 좁아터진 곳에서 다섯 학급이 체육을 하러 나왔다. 한 반에 40명 씩 200명에 학부모까지 모이니까 이건 완전히 추석 연휴 전날 서울역 대합실보다 더 바글바글 복잡했다. 체육수업이 과연 가능할까 염려스러웠는데 세상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 학급별로 달리기, 줄넘기, 농구 등등을 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기까지 했다. ‘다 살게 마련이구나...’  

감탄을 하면서 지켜보는데 어떤 엄마가 말을 건다. “누구 엄마세요? 애가 학교생활 재미있다고 하죠? 담임선생님이 애들한테 참 잘해주시더라고요....” 아들네 반 딸아이의 엄마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나로서는 죄다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민망했다. 난 있는 그대로 말했다. “울 애는 집에 와서 학교 얘기를 상세히 안 해요. 뭘 물어보면 ‘좋아요.’ ‘없어요.’ '몰라요' 이렇게 세마디면 끝나요. 단답형이에요.^^;”   “아들들이 좀 그렇죠. 저도 둘째가 아들인데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몰라요.” 그 엄마가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보기

 

신고

'차오르는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변한다는 것  (2) 2009.12.02
대화  (12) 2009.11.12
아들과 딸  (6) 2009.10.25
여덟살인생 - 딸의 명언노트  (10) 2009.09.24
점쟁이의 말  (8) 2009.09.11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의 기일  (4) 2009.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