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메리올리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올드걸의시집]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  김연수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표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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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문 사진전> 천국보다 낯선

[극장옆소극장]


나, 길을 잃었어  자발적 백수의 길로 접어든지 석 달. 자신을 선천성 '길치'라고 규정한 그녀와 삼십 여분 수다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 시간 낭비이고 헛사는 것 같다. 슬며시 불안감이 엄습한다. 왠지 훌쩍 여행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생을 놓아둠. 가만히 있음은 곧 정체라고 여긴다. 우린 이미 자본의 속도에 길들여졌다. 왜 뭘 꼭 힘들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을까. 해야 한다는 강박, 하면 된다는 환상이 쌍두마차로 우리 삶을 견인하고 있다.

죄의식 없이 마음껏 빈둥거리는 것도 고난도의 삶의 운영 능력이다. 휴식도 공부하기 못지않게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젊음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엄마 말씀이 젊어 실컷 고생하고 이제 좀 놀아볼까 싶으니 몸이 아파서 말을 안 듣고 입고 싶은 옷도 없고 옷 입고 갈 데도 없고 기껏 모아 놓은 돈 쓸 데라고는 병원비 밖에 없다더라. 내 평생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가을, "우리, 놀까?"  "그래, 놀자!"  그녀의 남친이 구해준 <사라문 사진전> 티켓 2장 들고, '09가을산백수'와 '데이트생활자'는 예술의 전당으로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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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학자적 삶에 대하여

[니체의답안지]

니체 공부하면 행복해져요? 누가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흑마늘의 효능을 묻는 것이나, 요가하면 살 빠지느냐는 질문처럼 들렸다. 단답형의 명쾌한 답변을 해줘야할 것 같은데 확신이 없었다. 니체가 행복의 특효약이라면 이론상으로는 우리나라에 내로라하는 니체전문가들. 번역자들이 가장 행복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머뭇거렸다.

니체를 읽으면서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은 엄청 괴롭고 자학했다. 문장이 난해하고 맥락이 안 잡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좋으니까 봤겠지. 어려워서 낑낑대고 열 불나는 ‘스팀현상’이 은근히 중독성 있다. 끝 맛이 달달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시대와 전면적으로 대결하면서 세계와 인간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자신만의 사상적 결과물을 정리했다는 게 보통 생의 의지는 아니지 않나. 그 에너지가 주는 힘이 큰 거 같다. 고생 끝에 산에 올라 대자연의 품에 안기면 기운이 나는 것처럼. 다른 산에서 보는 풍광은 어떨지 궁금해서 도전해보고 싶고, 힘든 길 같이 올라간 친구들과도 정이 흠뻑 들고. 그 과정이 고통이면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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