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

[사람사는세상]


짙은 보라색 어둠이 칠해진 거리. 군데군데 간판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황량한 대로변엔 삶의 배설물이 낭자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캔이 구르고 비닐이 저 홀로 춤춘다. 옷깃을 세운 남자가 단역배우처럼 구부정한 뒷등을 보이고 사라진다. 정지화면 같은 적막함 뚫고 어디선가 쓰륵쓰륵 싸리비질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산사의 정적을 깨우는 목탁소리 같기도 하고 아침밥을 짓는 어머니의 쌀 씻는 소리 같기도 하다. 반복적인 만물의 기척에 산새가 파닥거리고 아이들이 눈 뜨듯이, 연두색 빗자루가 지나간 이곳 거리도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새벽 5시 반, 해님보다 먼저 찾아온 환경미화원으로부터 명동의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4시 넘어 일어나서 첫차 타고 나와요. 겨울이 추우니까 제일 힘들죠. 더운 게 낫긴 한데 여름엔 또 아이스크림, 음료수 쓰레기가 많아요. 명동은 원래 유명해요. 정말이지 너무 지저분해서...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렇지 뭐. 짐승이 지나간 자리는 표시가 안 나도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표시가 난다고 하잖아요. 다 먹고 입고 버린 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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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2일, 명동유람

[사람사는세상]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수유너머R에서 마련한 이상엽 사진강좌 출사수업이 명동에서 진행됐다. 이상엽 선생님 꼬드겨서 강좌를 기획한 사람으로서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날이 나의 생일이라도. 처음엔 생일이라서 빠지려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생일이니까 가보고 싶었다. 서울을 사랑한 여인, 마흔 살 생일에 국내 최대 번화가 명동을 걷는다. 카메라를 들고서.  



사진강좌 제목이 ‘마틴파처럼 찍기’이다. 난 마틴파를 모른다. 앞의 이론수업도 안 들었다.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 석 장 훑은 게 전부였다. 처음엔 그저 선생님과 수강생에게 인사만 하고 따라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엽 선생님이 내 디카를 플래쉬 강제발광으로 설정하고는 테이블에 놓인 케첩 한 장 찍어주고 ‘이렇게 찍으면 마틴파 사진’이라고 했다. “그냥 찍어도 멋있네요? 모에요~” 진정 부러웠다. 셔터본능이 발동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마틴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가서 찍어라. 훌륭한 것은 전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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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청소노동자 농성장에서

[사람사는세상]

지난 월요일에 홍대 앞에서 약속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3년 만에 연락이 닿은 과거 동지들과의 모임이었다. 1월 2일 청소노동자 170명 해고된 후부터 홍대 앞은 더 이상 나의 놀이터일 수만은 없었다. 원래 계획은 일찍 나서서 홍대 농성장에 들르려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회포를 풀기 위해 만난 선배들에게 빨리 밥 먹고 가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여태 뭐하다가 이제 와서 유난 떠는 거 같아서. 암튼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 저녁에 홍대 근방에 아는 언니와 일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눈치를 보다가 슬쩍 운을 뗐다. “잠시 가보자. 월급이 75만원이었대. 점심갑은 한달에 9000원이래. 홍대 총학생회장이 외부세력 운운하는 헛소리 들었어?” 난 괜스레 흥분해서 횡설수설 떠들었다. 다행히 언니가 동의해서 편의점에서 휴지 사고 음료수 사서 양손에 들고 정문을 통과했다.  

왼편 건물에 자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긴가 보다 하고 들어갔더니 아니었다. 경비아저씨께 “농성장이요?” 여쭸더니 웃음 띤 얼굴로 학교지도 펴놓고 볼펜으로 콕콕 짚어가며 알려주셨다. 정문에서 볼 때 약간 오른 편 ‘홍익대학교’라고 새겨진 가장 높은 건물 1층이란다. 농성장 가는 길. 양쪽으로 현수막이 꽃길을 이루었다. 한예종 등 다른 대학 총학생회에서도 청소노동자 농성 지지한다는 내용이 붙어있었다. 모처럼 대학캠퍼스다운 풍경으로 그야말로 안구호강했다. 농성 초기에 비운동권 총학생회와 마찰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사과하는 듯 ‘어머님들 오해푸세요.’라는 애교 섞인 글귀도 눈에 띄었다. 민노당, 민주노총, 진보신당 현수막은 고딕체로 틀에 박힌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저것이 생활속의 보수. 좀 유머러스하고 유연하면 안 될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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