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동무

[글쓰기의 최전선]


쓰던 번호 그대로. 십년이 넘었다
. 핸드폰 개통 당시 번호를 지금껏 쓴다
. 딱히 바꿀 기회가 없었다. 얼마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때 친구다. 혹시나 해서 연락했다면서 대뜸 타박이다. “! 아직도 016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옛날 애인한테 전화 올까봐 번호 못 바꾸고 있냐?” “흐흐. 말만 들어도 행복하다. 그런 낭만적인 일이 생기면 참 좋겠구나.” 모처럼 이년저년 해가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말이 씨가 된 걸까. 며칠 후. 옛날 애인은 아니고 예전에 가까이 지내던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내친 김에 만남까지 성사됐다. 3년만의 재회. 우리는 방금 전화 끊고 만난 사람처럼 따끈따끈한 대화를 이어갔다.

좋아하는 선배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떨어져 지내면 잊어버린다. 문득 보고 싶지만 쪼르르 연락하지 않는다. 모진 풍파 헤치고 외로움 벗 삼아 잘 살리란 믿음이 서로에게 있다. 수년 전 남편과 헤어진 선배는 직장과 육아의 생활고로 무척 힘겨워했는데 그날은 홀가분해 보였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앞면에는 바뀐 이름이 뒷면에는 벚꽃잎 같은 여릿한 글씨가 반짝인다. ‘싱글맘아, 행복해져라' 선배는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싱글맘의 정체성 찾기와 육아, 자립의 노하우를 나누는 싱글맘 웹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명함을 보고 또 보았다. 뭉클하고 뿌듯했다. 내 그리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으쓱함과 나도 더 나누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교차했다.

핸드폰 번호는 십년 넘게, 남편은 이십년 가까이 못 바꾸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고리타분하고 우유부단하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말이 너무도 가슴 시렸다. 좋아하면 꼬박꼬박 만나고 살아야한다고 우겼다. 이제야 수긍한다. 끈끈함을 추구했는데 서늘함이 좋아진다. 나와 닮은 종자보다 이질적인 대상에게 매료된다. 관계의 근속년수를 자랑했으나 그냥 두어도 제 스스로 불어나는 숫자가 무의미해졌다. 하얀 목련이 피었다가 지듯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사람의 인연 또한 다르지 않음을 배운다. 끌림으로 꽃피웠다가 연분을 다하면 스러지더라. 삶은 인연의 꽃밭. 혹은 난투장. 관계의 쟁투 끝에 친구가 바뀌면 삶의 풍경도 그 빛깔을 달리하는 것이다.

친구를 통해 나를 사유하기. 6차시 수업은 김영민의 <동무론> 읽고 좋은 친구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했다. 내심 걱정했다. 책 내용이 딱딱하다. 글쓰기도 쉽지 않다. 친구, 가족, 돈과 같은 삶의 근간은 웬만해선 들추기가 싫게 마련이니. 그래서인지 과제 제출율이 낮았다. 토론은 활발했다. 김영민은 친구와 동무를 구분한다. 친구는 공유된 기억이 축축한 정서적 결속감에 의존한 관계. 동무는 같을 , 없을 같은 것이 없는 관계, 거듭 새로운 실천으로 서로를 증거 하는 서늘한사이다.

나는 친구를 과거적 관계로 규정하며 동무보다 한 수 아래에 놓는 김영민의 <동무론>에 반대한다.” 비판적 사고의 종결자 지오씨. 친구는 현재에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과거의 시공간을 함께 나눈 삶의 기록이란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옥기샘이 동조했다. 여고시절 꽃 편지지를 정성스레 써주어 아름다움이 무언지 가르쳐주던 친구가 공무원이 되고 나니 순수함이 사라져 지금은 대화 불통 사이라고. “술 마시고 수다 떨어도 집에 갈 때 무슨 말을 했는지 공허해요. 그래도 과거의 친구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요.”

오랜-착한-친구는 때로 불편하다. 가령 자신을 못났다고 여길 정도로 착하고 변함없이 나를 믿으며 보호자처럼 끊임없이 나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친구. 명운 씨는 거기서 오는 우울함이 있다여전히 자신을 고등학교 때 순수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친구가 편하면서도 가족처럼 짐스럽다고 터놓았다. 마치 작아진 옛날 옷처럼 친구가 몸에 맞지 않게 된 셈이다. 우정에서 필요한 건 삶의 리듬과 생각의 크기를 맞추려는 노력이다. 현재 10년 지기 남편과 부부백수 생활중인 그녀는 서로를 발전적으로 극()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길을 같이 가며 생()하는 것이 즐겁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선언한다.

초등학교 친구부터 사회에서 만난 친구까지 그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추억으로 관계를 끌고 가는 거라면 옛 애인처럼 놔 버리려고 한다.”

엄청 좋은 친구, 현 애인과 달콤한 날들을 보내는 경수 씨는 치즈버거에 빗대어 동무론을 폈다. 치즈버거에 치즈가 없다면 무슨 맛일까, 마찬가지로 좋은 친구관계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라고 정의했다. 아니 대체 이토록 담백한 비유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물었더니 요즘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역시 가장 좋은 비유는 삶에서 나온다. 빵집 아들 김연수가 자기 삶을 영원히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이 뚫린 도넛에 비유했듯이 말이다. 다시 경수 씨 글.

수유너머에 온 이후로 어제의 나가 아닌 과 비교를 하며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내 생각은 보잘 것 없다고 느끼는 순간, 나 자신은 사라졌다." 

치즈
가 흐물흐물 녹아버릴 지경에 이른 그녀에게 남친은 자존감 돋는 자작시 좋은여자를 바쳤으니, 시들어가던 경수씨는 자기긍정으로 만개했음을 고백했다. 대체 어떤 시길래. 부끄럽다며 극구 꺼려하는 경수씨를 졸라 시를 공유했다. 봄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시가 울려 퍼지고 강의실은 잠시 질투의 원성으로 들끓었다. "거기, 누가 대패 좀 줘요-.-;" 요즘도 이런 올드한 감수성의 소유자가 있느냐고 내가 신기해하자 한준 씨가 나선다. “저도 여자 친구한테 시를 써줬어요."  그렇구나. 사랑의 전사는 언어의 발명가다.

김영민은 <동무론>에서 "낡은 언어로 말하며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사랑" 심리적 동일시의 환상 감정을 비판한다. “사귐은 비밀번호를 나누어 확인하고, 이심으로 전심하며, 특정한 문법과 어휘들을 나누어 쓰고, 관념의 궤도와 코드를 다시 잇는 재미로 깨가 쏟아지는, 일종의 정신적 가족주의가 아니다.” 좋은 관계는 단지 감정이입이 아니라 평소에 시 한 줄 안 읽던 사람의 시인본능을 자극하듯, 서로에게 잠재된 타자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없다"고 말한 혜성 씨. 솔직 당당한 고백에, 어디선가 친구가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긴 마찬가지라는 말들이 새어나왔다. 혜성 씨는 발 묶인 새 마냥 날아가지 못하는 속세의 관계와 달리 친구는 해방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주어야 한다며,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더 약한 속박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약하게 속박하면서 날아가게 한다니.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 지오 씨는 관계의 창조적 발전은 친구에서 동무가 아닌 친구이자 동무에 있다고 했다. 이것은 축축함과 서늘함의 공존상태다. 연암 박지원은 벗 사이에 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틈이 있는 가까움. 이 모든 역설의 언설들. 대체 어쩌라는 건가 싶다만, 생각해보면 원래 삶은 그렇다. 모순에 직면하는 일이다. 십년 묵은 핸드폰 번호에서 새로운 삶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생산적 인연을 가꾸어야 하듯이, 우리가 글쓰기의 기술을 배우지만 원칙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써야하는 것처럼. 온통 쓸쓸하고 고단한 노동이다.

예상은 했지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 문득 난감하다. 사실 어떤 한계를 통과하는 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약간의 용기, 약간의 깡만 있으면 된다. 나로선 삶의 최전선을 함께 서성일 밖에. 역설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정신적 강인함의 척도다. 좋은 친구, 좋은 글.  모두 원리는 같다. 김영민의 말대로 내 기질과 버릇을 털어내면서 내 몸을 끄-을-고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너지면서 배우고 자빠지면서 얻는 것이다."  고독한 채로 함께 하는 법. 다음시간 주제다.

 

 

산 / 김종삼

[올드걸의시집]

샘물이 맑다 차갑다 해발 3천 피트이다

온통

절경이다

새들의 상냥스런 지저귐 속에

항상 마음씨 고왔던

연인의 모습이 개입한다

나는 또다시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 민음사



시 한줄 읽고 음악 한곡 찾아 듣고 원고 한 줄 쓰면서 계속 시계를 힐끔거린다. 회의하러 가야하는데 회상을 듣고 있다. 9시 반. 그래도 회의는 가야한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4월 22일 슬픔과 충격을 가누지 못해 결석을 해버렸었다. 영하 10도 이하의 엄동설한에도 빠지지 않았던 나. 근면성실 외길인생인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고사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버스정류장.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오후 2시에 약속 땜에 핸드폰을 챙겨야했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나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컴퓨터를 켰다. 위클리 게시판에 몇줄 남겼다. '내일 강의안과 인터뷰 원고를 아직 못 썼는데 주말에 시댁을 가야합니다. 냉장고는 텅 비고 세탁기는 꽉 차고 살림이 엉망입니다. 열흘 째 혓바늘이 돋아서 가라앉질 않고 아무래도 제 삶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전사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규호에게 전화가 온다. '보류-끊기' 버튼을 누른다.  어디냐고 문자가 온다. 못본 척 하려다가 게시판에 결석사유를 남겼다고 문자를 넣었다.

인터뷰 강의 요청했던 김모씨에게 문자가 온다. 정식 이력서가 있으면 보내주시란다. 없다고 했다. 편집회사 전화번호가 뜬다. 사보일을 95% 그만두었다. 지금까지 나를 찾는 에디터는 신뢰관계가 돈독한 친구다. '매우 급한 취재'라는 전보다. 앰블런스 신호음같이 요란하다. 저절로 지쳐 끊기길 세 번. 거절하기 미안해서 못 받았다. 오후의 약속도 어찌어찌 자연 취소됐다. 박모씨에게 전화가 온다. 회의하다가 물어볼 것이 있는 모양이다. 외면했다. 못된 년의 날. 부재중 전화의 난. 타인의 개입을 원천봉쇄 하는 건 처음이다. 음악 듣고 원고 쓰고. 장을 보려고 현대에 갔다. 시동 끄고 내리려다가, 오디오를 다시 켰다. 3만원 주유하고 공짜로 받은 싸구려 커피가 남았다. 달고나처럼 단 그것을 마저 마시며 노래를 듣는다. '괜찮아요. 나도 예전엔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적 많았죠.' 궁상스러운 노랫말. 송곳처럼 파고든다. 문자가 온다. '쉬라고 하고싶은데 쉴 수 없는 상황이고.. 원고정리 잘하시고 내일 봐요~' 늘 미안한 지연씨. GS칼텍스 주유소 휴지 한장 꺼내 눈물을 찍는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괜히 서럽다. 오늘 따라 가슴 에이는 머저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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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도약해 미래를 구원하라

[글쓰기의 최전선]


삼주 전 즈음이다. 4차시 강의안 쓰던 날. ‘글감의 4가지범주의 사례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 인생의 핫이슈 서모군을 활용하기로 했다. 옛날 기사를 검색했다. 8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 서태지 신보가 나왔다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화제형, 8집 장르는 네이쳐파운드이며 곡의 메시지와 녹음 기법 등 상세한 자료를 제공하면- 정보형, 서태지는 이번 앨범에도 역시 철저한 자기관리와 혹독한 맹연습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으로 완성도 높은 음반을 선보였다고 쓰면- 감동형, 서태지가 컴백하면 평론가도 컴백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앨범도 평가가 엇갈린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면- 논란형 기사이다.

아니, 어쩜 이리도 글감의 범주가 사례별로 똑 떨어지는지, 기사원문 붙여넣기를 해가며 풀어쓰는데 콧노래가 절로 났다. 수업시간에 수줍음을 무릅쓰고 나는 서태지 팬이다커밍아웃을 하고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며... 이혼-결혼 기사가 빵! 터졌다. 연예인 스캔들이 꼭 결혼-이혼 기사 순으로 나와야 한다는 통념이 산산이 부서지던 순간. 나는 얼결에 외쳤다. ‘역시 태지는 주류질서의 전복자야. 우월한 내 남자같으니라구.' 근데 갈수록 기분이 이상했다. 슬픔과 회한, 허무와 동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분단위로 기사가 쏟아졌고 나는 친히 광클릭으로 독파했다. 그런데 기사들이 하나 같이 서태지의 과거를 예언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점치다니.

서태지 역사의 재구성을 목도하면서 헤겔과 벤야민의 시간관념이 떠올랐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이념이 자기완성을 위해 전개하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해했다. 이를 테면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발전해가고 서양은 동양이 이르러야할 목적지라는 생각 등등,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기본적인 인식 틀이 헤겔의 시간관을 따른 것이다. 이를 벤야민은 비판한다. “근대 역사철학은 역사를 하나의 잘 짜인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어떤 순간들은 과장되었고, 어떤 순간들은 은폐되었으며, 어떤 순간들은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연속적이며 발전적이지 않다. 결코 하나의 연쇄를 이루지 않는다. 순간들 단절들만 있다. 과거가 현재에 선택된 과거라면, 묻혀버린 미지의 과거는 점치기가 가능한 거다.

태지가 아니 떠오를 수가 없는 대목이다. 문화대통령, 천재뮤지션, 완벽주의자 등 서태지를 하나의 잘 짜인 신화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숱한 과장’ ‘왜곡’ ‘은폐가 있었는가. 개인이든 국가이든 존재는 복합구성물이고 고정불변체가 아니라 매 순간 재구성된다. 서태지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 모든 역사는 현재 상태의 욕망과 힘들에 의해 승인되고 편집된 과거. 그래서 니체 역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역사화 되지 못했던 무수한 비역사적 순간들의 발굴자! 니체는 억압된 과거의 순간들을 새로운 현재를 위해 동참시키려 했다. 과거의 무수한 순간들을 살려내고 해방시키는 그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마침 5차시 수업이 과거-되살림 프로젝트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서문에 나온 대로 내가 사랑한 시절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내게서 빠져 있는 것들...’을 써오라고 했다. 순대국밥의 순대처럼 떠다닌 날, 손녀에게 극진했던 할머니 사랑, 삼수생의 천덕꾸러기 같던 하루, 자신을 탕진하지 못하고 내일을 위해 늘 무언가 남겨둔 여행자의 소회, 인생을 배운 야구의 추억, 여름날 짧은 연애 등 다양한 과거사가 쏟아졌다 

수업시간. 그간 내 삶에서 역사화 되지 못한 무수한 순간들을 발굴하는 일의 어려움과 당혹감을 이구동성으로 토로했다. 정연 씨는 막상 글을 쓰려니 과거 추억이나 쓸 만한 내용이 생각나는 게 없었다며 과거 기억을 생생히 간직한 김연수가 부럽다고 말했다. 아눈 씨는 두 번 째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허진호의 영화처럼 잔잔히 글로 써내며 남다른 감회를 터놓았다. “그 사람은 제 인생에서 없던 사람이거든요. 누구에게 얘기한 적 없고.. 세 번째 남자친구는 자기가 두 번째인 줄 알아요.(웃음) 저도 잊고 지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신기하게 생각이 하나씩 하나씩 나더라고요.”  

김연수가 남달리 성능 좋은 기억장치를 가졌기 때문에 <청춘의 문장들>을 쓸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기억할 것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 같은 기억이라도 붙잡고 늘어지며 글로 쓰다 보니 청춘이 통째로 부활한 것이다. 김연수는 지난날의 가난, 사랑, 음악, 비루함, 고생, 친구, 봄날, 방황 등 모든 추억과 아픔을 자산화했다. 이 과정에서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는 말처럼 스스로 구원받았고 완전히 소진되고 나사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통해 자기를 긍정했다. 김연수의 행복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도약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수업 후 명운씨가 진솔한 후기를 남겼다. 글쓰기가 스트레스인데 그 이유는 "태어나서 글을 이렇게 정기적으로 써 본적이 없어서이기보다는 나의 현재 상태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어서 괴롭다". 하지만 글쓰기가 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다른 삶을 사는 방편이 되기를 바라며, 매일 써보려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존재감염이 이뤄진 모양이다. 좋은 사례다. 우리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배워야할 것은 김연수처럼 미려한 문장을 쓰는 법,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끌어내는 법이라기보다 과거를 살려내고 해방시키는 실천이 아닐까.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것으로서의 글쓰기. "그러므로 글 쓸 때 나는 가장 잘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지복의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