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delssohn- Piano Trio No.1

[차오르는말들]


Mendelssohn- Piano Trio No.1 in D minor, op.49

2월, 겨울밤이 깊어간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애수어린 느낌이 좋다.
오래된 것은 왜 위로가 될까. 

200년 전 멘델스존이 남긴 음악이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선율타고 눈발처럼 날린다.

서리낀 창틀 아래..
사모바르가 하얀 입김 뿜으며 끓고 있는 그림이 그려지네.. 

20년 전에 산 책, 누렇게 바랜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읽으며 
나는 지금 우주의 조화로움을 경험한다.

오래된 음악과 책과 시간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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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 스물셋, 멀리해야 할 남자

[극장옆소극장]

위험한 혜화, 動   엔딩 장면에서 시작해보자. 여자(혜화)가 문을 나선다. 가는 데마다 얼쩡거리는 옛 남자(한수)가 와 있다. 무시한다. 차를 몰고 남자를 지나쳐간다. 백미러로 남자의 전신이 잡힌다. 힐끔 쳐다보는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카메라가 손을 클로즈업한다. 후진기어를 넣는다. 남자를 향해 다가가는 여자. 여신의 미소를 짓는다. 영화가 끝난다. 아마 용서와 화해의 결말 같다. 나는 그 장면에서 후진 기어 넣고 내리 달려서 여자가 남자를 확 쳐버리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이 땅의 ‘지질한 남자’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싶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18살 고등학생 혜화와 한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혜화가 임신을 하자 한수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 앞에 한수가 나타난다. 그는 혜화에게 용서를 구하며, 죽은 줄 알았던 자신들의 아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혜화는 처음엔 그를 믿지 못하지만, 아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황폐한 혜화,冬  청소년의 연애. 그것은 올바르지 않은 사랑이 아니라 축복을 받지 못하는 관계이다. 재벌가 아들과 천민의 딸의 사랑과 같은 맥락이다. 남근권력의 계급적 이해가 얽혀 있다. 남자 부모의 반대가 극심하고 최종적 피해자는 여자다.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산달이 가까워진 혜화는 ‘집안에 임신사실을 말했다’는 남자의 말을 믿고 한수 엄마를 찾아갔다가 “오늘 처음 알았다”며 “원하는 건 다 해드릴 테니 (앞길이 구만리 같은) 우리 한수를 놓아 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는다. 뭐,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설정과 흡사하다.  

두 가지 상황이 예측 가능하다. 물리적 나이 18세 한수는 여친의 임신과 출산이 두려워서 집안에 알리지 않았을 수 있고, 얘기했지만 엄마가 무시하고 둘러댔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크게 상관없다. 중요한 점은 한수가 지금-여기의 진실을 회피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문제에 주체적으로 나서지 않아 둘 간의 사랑(아기)을 잃었다. 혜화 혼자서 긴 겨울을 보냈다. 그리곤 5년 후에 나타나 무릎을 꿇고 예의 그 관용구를 울먹인다. “넌 왜 나한테 아무 것도 묻지 않니?” 마치 은폐된 진실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  

기막힌 혜화, 童  진실은 언제나 표면적이다. 그는 홀연히 떠났고 그녀는 남겨졌다. 그것만이 엄정하다. 남자의 인격적 도량이 거기까지였다. 그걸 인정하기 싫은 한수는 우리 사랑(아기) 살아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혜화의 주위를 맴돈다. 엄마아빠놀이 스위트홈 퍼포먼스의 욕망을 위해 엽기적인 행각을 펼친다. 이 대목은 영화에 장착된 다이너마이트다. 어이상실의 극점. "진짜 미친놈이네"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여전히 철들지 못한 채 삶의 중심에 가닿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꼴이라니.

이 영화 남녀주인공의 처신은, 연애에 대처하는 갑남을녀의 윤리적 태도로 읽어내기에 무리가 없다. 한수는 5년 전 이별 후에도 유학을 가지 않았다. 가출 상태에서 방황하다가 군대에서 사고로 다리를 다친 채 제대했다. 스물셋이나 먹었는데 현실감각 없어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존재다. 혜수는 동물병원에서 애완견 미용사로 일하며 유기견을 돌보는 등 훨씬 건강하게 아픔을 극복한다. 연애경험은 대상에 따라 독 혹은 약이 됨을 알 수 있다. 


가혹한 혜화, 同  <혜화,동>은 민용근 감독의 첫 장편이다. 정교하고 영리하다. 잔잔한 톤을 유지하며 극적 긴장을 끝까지 밀고간다. 개인적으로는 치미는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영화적 미덕도 많은 작품이다. 성교육용 영화로 전국 중고등학교에 추천한다. 한줄 교훈은 '청소년 시기에 연애하면 인생 망친다'가 아니라 ‘미성숙한 남자는 인연의 뿌리를 잘라라’이다.  청소년은 결코 미성년, 덜 어른이 아니다. 한수가 청소년이라서 우유부단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5년후에도 놀라울만큼 변치않았다. 반면 혜화는 열여덟살부터 줄곧 사려 깊고 의연하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무너진다. 아직 유아기적 언어와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 한수와 단호히 단절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다. 두 사람은 이전과 같아질 수 없는 인연이다.  

민용근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둘 사이에 상처가 있어도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 맞다. 그런데 중요한 단서가 빠졌다. 한 인간의 숙성 정도를 고려해서 연을 맺어야 한다. 혜화처럼 모성애가 발동하여 미성숙한 남자 곁을 지키다가 피폐한 일생을 산 여자가 얼마나 많은가. 감독은 알고 있다. 여자는 강하고 남자는 약하다는 사실, 그리고 남자는 비겁하고 여자는 미련하다는 점까지. 그러므로 감독은 한수를 홀로 남겨두는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 '어리석음'의 원죄를 가진 남자란 종의 진화를 위해서 말이다. 후진기어는 가혹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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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생각한다

[차오르는말들]

* 생애를 생각한다

‘오래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며칠 전 아는 동생이 댓글로 달았다. 표현이 적절하고 절실해서 뭉클했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나야 말로 산다는 것이 뭘까, 인생은 왜 이리 긴가, 상념이 많은 요즘이다. 아이들 밥 세끼 거둬 먹이다보면 어느 새 부엌 창문으로 어둠이 깔린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하루살이. 앞으로도 큰 틀에서 달력의 질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일상은 이리도 단조로운데 인생은 왜 이리 험난한가. 아이러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학교 다니고 어른 되어 일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식 키우다가 병들어 죽는 인간의 일생. 이대로 살기도 벅차다. 고난도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쩔쩔매면서 내 한몸 챙기고 내 새끼들만 거두다가 저무는 게 삶이라면 허무하다. 인간이 단체로 약속한 듯 그런 생을 살아가는 세상이 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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