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유하

[올드걸의시집]


풍뎅이가 방충망을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징허게 징징거린다  

(난 그의 집착이 부담스럽다)

나도 그대 눈빛의 방충망에 마음을 부딪치며
그렇게 징징거린 적이 있다

이 형광등 불빛의 눈부심은
어둠 속 풍뎅이를 살게 하는 희망? 

(글세, 희망이란 말에 대하여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그가 속삭인다) 

그 무엇보다도,
징징대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풍뎅이는 벌써 풍뎅이의 삶을 버렸으리


- 유하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아들이 졸업했다. 졸업식 전날, 아들의 등짝을 두드리며 치하했다. “욕봤다. 중학교 3년을 무탈하게 마쳐 다행이구나.” “앞으로 3년 동안 더 힘들 텐데요.” “아들, 공부가 고생스럽지?” “뭐...” “주변에 이십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라.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고 정해진 과목 공부할 그 때가 인생에서 가장 편했다고. 어른이 되면 먹고 사는 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기 선택, 자기 책임이야. 자유가 얼마나 피곤한 건데. 그래서 사람들은 명령에 따르고 무리에 끼고싶어하지.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는 책도 있어.” 아들 귀에는 여름철 매미울음만큼 뭉개진 소음일 말의 덩어리를 뱉는다. 방충망을 온몸으로 들이받는 짓을 하던 나는 만감의 교차를 어찌하지 못하고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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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가판대 상장, 그리고 오후의 산책

[사람사는세상]

서울 사는 게 점점 부끄럽다. 어제 숙대입구역 버스정류장에서 경악했다. 금빛 테두리에 궁서체 글씨, 누런 트로피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상장이 가판대마다 나붙었다. 내용은 ‘당신이 서울을 빛낸 진정한 영웅입니다.’ 가판대마다 수상자가 달랐다. 건설노동자, 대중교통기사,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들, 소방공무원 등에게 주는 상이란다. 하나같이 3D업종, 저임금에다 비정규 직업군 종사자다. 홍대 청소노동자 파업사태를 의식한 모양이다. 당사자가 저걸 보면 어떤 느낌일까. 나로선 일그람의 진심도 느낄 수 없다. 우롱하는 처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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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이 멋진 글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글 쓸 일이 종종 생긴다. 새 학기에 어떤 담임선생님은 자녀에 대해 참고할 사항을 써달라며 백지를 보낸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면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나도 순간 난감하다. 다른 엄마들은 어떨지 괜히 염려스럽다. 글쓰기가 확실히 만만한 일은 아니다. 여러 생각이 붓을 가로막는다. ‘잘 써야한다’는 부담감, ‘뭘 쓸까’하는 막막함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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