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개와 샐러드 그리고 민주주의

[비포선셋책방]

수유너머R 심야합법강좌  '저자와 함께 읽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지난 6월 7일부터 4일 연속 열렸습니다. 첫날 강의 제목이 '개와 샐러드, 그리고 민주주의' 입니다. 저자 고병권은 "제목은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몸이 안 풀려 죽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일각에서는 '단기유학파로서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며 '영어로 강의해도 좋다'고 권했건만, 극구 한국말을 고집했습니다.


민주주의 강의안에 갑지가 웬 개?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말했죠. "나는 개다." 어떤 개인가 하면, "탐욕과 불의에 대해서는 사자처럼 사납지만 선물에 대해서는 사슴처럼 다정한 개"입니다. 또 왜 샐러드일까요. 샐러드에 얽힌 사연을 일부 공개하자면, 

# 플라톤이 길을 가다가 샐러드를 씻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한 마디 던졌다. 네가 디오니시오스 왕에게 조금만 더 공손했더라면 넌 네 샐러드를 손수 씻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네가 네 샐러드를 직접 씻는다면 넌 디오니시오스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간단한 재치문답 같지만 여기에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노들장애인 야학에서 공부하는 김호식이 묻습니다. "요즘에 디오게네스처럼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병권이 답합니다. 디오게네스처럼 산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어렵고, 고대에도 어려웠다고요. "가장 좋은 게 왜 불편할까요? 제가 보기엔 호식씨도 어쩌면 디오게네스처럼 사는 겁니다. 중증장애인인데 시설이나 집에 있지 않고 길밖으로 나왔으니까요. 길은 민주주의가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 길 위에서 한다는 것. 모든 것을 공적으로 하는 것이 디오게네스의 습관이었다궁정이 음모와 전략의 장소라면 길이란 다툼(시위)과 사건의 장소다. 반값등록금 시위현장을 보라! '잘사는 것'에 대한 삶의 설계는 길에서 나오지 절대 대통령자문위원회 지하벙커나 정치전문기술자들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샐로드를 씻을 수 있기에 누군가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는" 박옥기, 그 역시 여자 디오게네스입니다. 주부에게 평일저녁 4일 연속강의는 '넘사벽' 입니다만, 일산에서 해방촌까지 달려왔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조용히 이뤄지는 삶의 실험들. 자기 삶을 가꾸기 위한 모험들. 이 자.발.성이 데모스의 힘입니다. 

# 언젠가 디오게네스는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자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노예는 디오게네스 없이 살 수 있는데 디오게네스는 노예 없이 살 수 없다면 그건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자율적인 능력. 이 힘은 양도와 복종을 통해 행사되는 주권과는 아주 다른 성격이다.  


# 프랑스혁명을 겪고난 후 칸트는 공적public이란 말이 갖는 해방적 성격을 환기해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칸트는 이성의 사적사용과 공적사용을 구분했다.  교황과 성직자의 예를 보자.  교황이 부당한 지시를 내릴 경우에, 성직자는 이성의 사적사용에서는 정해진 규율에 따라 복종하며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학자처럼 세계 대중을 향해 그 부당성을 말하는 것이다. 

출판-이성의 공적사용에 앞장서는 그린비 출판사!
수년만에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손수 편집한 유재건 대표님. 열혈수강생 1인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린비 영상팀이 4일 연속 강의를 촬영했습니다.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하다가 "정읍에서 소 키운다"고 자기소개를 한 오기수 씨. 고병권의 저서를 감명깊게 읽고서 이번 강의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직장인, 주부, 학생, 백수, 장애인, 영농인, 출판인. 뒤섞여서 민주주의를 고민합니다.



뒤섞임.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고병권은 디오게네스의 말을 빌어 '만물은 원래 뒤섞여 있다'고 말하며 이주노동자 관련 얘기를 들려줍니다.

무현 정부 초기, 이주노동자 단속이 극심할 때 원곡동 주민들이 불법체류자를 감춰주었다고 합니다. 이주민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이웃으로서 오며가며 정이 든 게죠.  삶에 어떤 '혼합'이 일어난 것입니다. 법 이전에, 로고스 이전에, 삶에서 어떤 변형, 어떤 사건의 일어남. 이 경험은 더 이상 기존 제도와 정책을 불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바로 이 뒤섞임이 일어나는 영역,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만들어지고 어떤 급진적인 변형이 일어나는 영역에서 고병권은 민주주의를 봅니다.    

#  이 삶을 변화시키고 가꾸는 능력, 이 힘으로서만 우리는 한 사회 민주주의 정도를 말할 수 있다.


고병권은 이어 말합니다. 포털 뉴스기사마다 포도처럼 매달린 "그러니까 투표 잘하자"는 댓글을 보면 화가난다고요. 좋은 목자 만나기를 기대하는 순간, 대중은 양떼로 전락합니다. 내 삶의 조건이 타자에 위탁돼 있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정녕 민주주의 일까요. '투표 잘하자'는 구호 하나로 민주주의 의미와 실천을 축소시키지 말아달라는 저자의 당부. 그리고 외침.

"선거가 민주주의에 꽃이라는 말만 들으면 꽃대를 확 분질러 버리고 싶어요."

근대 민주주의 자체가 국민과 주권, 대표라는 세가지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대표의 문제에만 매달려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강의 마지막날인 6월 10일에는  '민주화 이후, 그리고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었습니다. '최장집 실명비판' <한겨레> 기사(2011.5.17)로 화제가 됐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3장입니다. 그나저나 이 책에는 '플라톤 실명비판' 도 수두룩한데 제목이 꽤나 편파적이었죠.  

저자의 최장집 비판은 한마디로 '민주주의 발전론' 비판입니다. 즉 민주주의에 어떤 완성모델이 있고 올바른 정치가의 출현이나 제도의 성숙을 통해 여기로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반론이 펼쳐집니다. 

독재 정권이 선거를 통해 교체된다고 민주주의가 달성되는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제도가 성숙해져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달성되는가? 아니다. 즉 내용과 형식의 일치 문제가 아니다. 2008년 대중이 20년만에 다시 촛불집회를 열고 길바닥으로 나온 것이 민주주의의 후퇴인가? 아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민주주의가 문제되는 것은 그 사회가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가진 후진사회이기 때문이 아니라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어떤 완성 모델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현재의 체제가 실패한 곳, 무능을 드러낸 곳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최장집은 ‘대의불충분’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고병권은 “대의불가능이 문제”라고 반박합니다. 이주민, 중증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네티즌, 중고등학생 등 현재 대의제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사람들의 문제로부터 알 수 있듯, 지금은 80년대와 달리 ‘참된 대표’를 찾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투표 때마다 대중 낚기 게임이 되어버린 민주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엘리토크라시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념이 아니라 힘입니다.
정치엘리트의 힘이 아니라 데모스의 힘. 
쥐그림을 그리고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그 길위의 힘말입니다.



 

커피와 상처

[차오르는말들]

모처럼 믹스커피가 먹고 싶어 커피물을 끓였다. 2분여 흘렀을까. 보글보글 물이 익어가는 소리 요란했다. 무선주전자 뒤편의 믹스봉지를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벌레를 포획하는 새처럼 날렵하게 믹스스틱 하나 빼오려는 찰나, 눈보라처럼 회오리치던 뽀얀 김이 손목을 감쌌다. 1초 정도. 아아아. 칼바람 속을 지날 때 "추워 추워" 란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아파. 아파. 말이 샜다. 손목을 심장 앞으로 얼른 뺏어왔을 때는 이미 피부가 벌겋게 익은 이후다. 찬물로 씻고 얼음찜질을 했다. 손목에 가스렌지가 내장된 기분. 시간이 흐를수록 살이 가열됐다. 후끈후끈. 약국에 가서 화상 연고를 사서 바르고 진정되길 기다렸다. 웬걸. 반나절이 지나자 상처부위가 검지손가락만한 투명에벌레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달걀이 비둘기로 변하는 마술. 징그럽다. 눈 뜨고 볼 수  없어 두 눈 감고 봤다. 욱신욱신 통증이 번졌다. 아무래도 피부과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자 우울했다.

세상에서 제일 가기 싫은 곳이 은행과 병원이다. 거기에 있으면 그냥 초라해진다. 삶이 통째로 위탁되는 곳. 생존을 허락받기 위한 곳.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로운 곳. 나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장소. 시키는대로 버튼을 누르고 서류를 내고 사인을 하고 그리고 받아오는 것은 숫자가 찍힌 종이 나부랭이. 그것이 내 삶을 쥐락펴락하는 화폐증서다. 병원은 생명증서를 발급한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검사하라면 하고 돈내라면 내고 시키는대로 일사천리로 행해야 한다. 삶에서 살이 고스란히 분리되는 그곳. 그 살의 선택권은 내게 없다. 한없는 기다림이 요청되는 그곳. 불쾌한 수동의 삶, 피하고만 싶은 거다.

더보기



'차오르는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수레의 존재미학  (20) 2011.08.17
보편적인 노래 보편적인 하루  (8) 2011.07.02
커피와 상처  (16) 2011.06.13
조르주 프레트르 - 헝가리무곡 1번  (8) 2011.05.19
여자의 한살이  (18) 2011.05.17
리스트 라캄파넬라 - 윤디 리  (6) 2011.04.28
TAG. 상처, 커피

두리반 승리와 파티하쥐 기사

[사람사는세상]

* 두리반 투쟁 531일째인 6월 8일 철거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오늘 현대자동차 노조원 자살로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지만, 어쨌든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저희 파티를 물심양면 도와주신 두리반 사장님 내외분과 그 컴컴한 동굴같은 두리반을 지키던 인디밴드, 문화투쟁생활자들 면면이 떠올라 뭉클합니다. 우리 연구실 동료 안티고네도 두리반을 함께 지켰는데 어제 모여서 그랬대요. 칼국수집 새로 열 때까지 우리는 울지 않겠다.. 너무 기쁘면 그 기쁨이 달아날까봐 울지도 못하죠. 먹먹합니다. 파티할 때 순박한 사장님 무대에 올라가셔서 두 주먹 쥐고 "투쟁~" 딱 한마디 하던 게 생각나서 좀 웃기기도 했고요. 투쟁의 티읕도 모르던 사람들을 투쟁하게 만드는 세상입니다. 두리반 승리와 파티하쥐에 관한 좋은 기사가 미디어 오늘에 났습니다. 이안(영화평론가) 글.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익입구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예전에 칼국수집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작은 용산’이라 불리며 인디 음악가들과 뜻있는 문화예술인, 자원활동가들이 힘을 보태 대책없이 자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철거와 개발논리에 맞서고 있는 공간이 된 '두리반'이 보인다. '마포 지구 단위 계획' 철거 지역 가운데 두리반을 제외한 다른 세입자는 800만~2100만 원의 이주 보상비만 받고 떠났다. 그러나 권리금 1억 원을 내면서 2002년 식당을 열었다가 겨우 이사비 300만 원만 받고 떠나라는 건설회사의 횡포에 맞서다 전기까지 끊긴 두리반에서 6월 3일 저녁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가 열린 홍대 두리반 전경. 이치열 기자 truth710@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