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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북DB 문장수집가 은유 - 좋은 글은 검열하지 않는 용기에서 나온다


인터파크 웹진 북DB 인터뷰 기사가 나왔네요. 객원기자 정윤영씨가 르포에 관심 많고 작업하는 분이셨고, 심지어 니체를 좋아해서 나중에 아기 낳으면 이름을 '은유'라고 지으려고 했다고 하셔서 놀람. 이것은 인연 오브 더 인연. 




글 쓰는 사람, <쓰기의 말들> 저자 ‘은유’의 가방에는 노트 한 권이 들어 있다. 버스에서, 거리에서, 책에서 삶의 말들을 찾을 때마다 고스란히 노트에 담아놓는다. 노트는 진부함에 저항하는 법을 일러주는 글, 자기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의 말, 고통 속에서 각자의 존엄을 지켜내는 삶으로 가득하다.


은유는 고통 탐험가이고, 문장 수집가이며, 보석 세공사이다. 어딘가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볼품없는 돌멩이를 찾아내 조심스럽게 다듬고 가꾸면, 조금씩 자기 빛을 내기 시작한다. 고통뿐인 삶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은유가 읽고 쓰고 들려주는 삶의 말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해서, 책을 읽다 말고 꼭 끌어안았다. 글 쓰는 삶이 고통을 연마하고 삶의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자기수련이라니,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써보라는 은유의 권유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Q <쓰기의 말들>은 작가님이 수집한 문장노트에 적힌 문장들을 엮은 책이에요. 글쓰기 관련 책을 쓰고 문장노트를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 대충 사는 것 같지만 갈등이 있고, 보석처럼 빛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업하면서 느끼고 배운 걸 기록하고 싶었고요. 학인(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들이 글쓰기 어려움을 많이 얘기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기술을 익혔다고 어렵지 않은 건 아니고 매번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까, 글쓰기가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가까이에서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또 저에게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문장을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Q 책엔 104개의 문장이 있는데, 실제로 문장노트에 얼마나 모아놓으셨어요? 언제부터 문장을 수집하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세어보진 않았지만 사과 한 상자 넘게 있어요. 본격적으로 모은 건 11년 됐는데, 문장이 너무 좋아서 써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써둔 걸 짬짬이 읽어보니 감동이 되살아나더라고요. 그게 또 좋아서 계속 하게 됐어요.

 

 

“자기자랑 글쓰기는 목소리 공해... 사회적 의미 생각해야”

Q 책을 읽고 문장을 수집하다가 글을 쓰게 된 걸 보면, 읽기와 쓰기가 상호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처음엔 독자였고, 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어떤 계기로 글을 쓰게 된 후로 더 적극적인 독서를 하게 됐어요. 행간의 의미까지 보게 되고,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생각하면 책을 더 맛있게 읽을 수 있어요. 좋은 책 읽으면 자극을 받아서 나도 좋은 문장 쓰고 싶다고 생각하죠. 읽기와 쓰기가 밤과 낮처럼 순환하는 관계 같아요. 

Q 특히 니체를 읽고 삶에 변화가 생겼다고 하셨는데요, 그게 글쓰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도덕에 위축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고요. 글 쓴다는 게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글 쓰고 싶은 욕망을 증폭시켰죠. 사는 것과 쓰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거든요. 글을 쓰면 글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사는 게 답답할 땐 글을 쓰면서 정리하고 결론을 내려요. 그걸 또 삶에 적용하고… 계속 연동하는 것 같아요.

Q 요새 글 쓰는 의사, 글 쓰는 판사들처럼 작가가 아니어도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전문적인 글쓰기 경계가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글쓰기를 가르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글이 누구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글 쓰는 의사나 판사, 이런 사람들은 이미 기득권이고, (그들이 글을 쓰는 건) 또 하나의 표현수단을 얻는 거라고 생각해요. 점차 넓어져서 글 쓰는 아르바이트생, 글 쓰는 청소노동자, 글 쓰는 고등학생까지 사회에서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사람들까지 글을 쓰면 좋겠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글쓰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물론 자기표현 하는 건 좋지만, 자기 자랑이나 과시하는 글쓰기가 많아지는 건 목소리 공해가 될 수도 있어요. 무조건 열심히 쓴다고 좋은 건 아니고, 글 쓰는 행위가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야 돼요. 

Q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대부분 재능 있는 사람만 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 쓰는 게 부담스러운 것 같고요. 글쓰기에도 타고난 재능이 있을까요? 

기술적인 측면은 일정한 기간 훈련하면 단련이 되거든요. 중요한 건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야 돼요. 왜 쓰고 싶고 뭘 쓰고 싶은지, 고유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죠. 자기에 대한 관심,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훨씬 중요하고요. 그래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에게 글감으로 다가와야죠.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몸이 중요하고, 미루지 않고 써내는 힘이 중요해요. 그게 꾸준히 단련됐을 때 재능이 되는 거고요.

 

 

“글쓰기 기술보다 중요한 건 자기와 세상에 대한 관심”

Q 최근에 어떤 작가가 비문학 글쓰기는 훈련으로 가능하지만, 문학은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한 걸로 기억을 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 저는 우리나라가 순문학이라고 하는 시, 소설을 우대하는 풍토가 있다고 봐요. 장르문학은 ‘B급’ 문학으로 취급당하고 르포르타주는 문학 영역에 잘 안 넣죠. 외국은 장르문학도 발달해 있고 르포문학도 존중을 받아요. 특이하게 우리나라는 순문학이 성역화돼 있다고 할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시와 소설만큼 기록문학도 충분히 중요하고 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 풍토를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작가님이 학인들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한데요, 작가님께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자의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글을 쓰고 있으면 정신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의하는 일이 저를 살게 해주는 것 같아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돼서 좋아요. 그 행위가 없으면 삶에 긴장이 사라지고 무의미해져요. 작가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정한 건 제 역할을 구체화해본 거예요. 글을 쓴다는 동사의 의미를 강조해서 세상에 개입하는 글을 쓰겠다는 걸 나타냈어요. 자기만족이나 도취가 아니라 세상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쓰기를 하겠다는 욕심, 경각심이죠.

Q 출간 앞둔 책이 있나요? 이후에 계획하고 있는 글이나 쓰고 싶은 글도 궁금해요. 

가을에 에세이집이 하나 나올 거예요. 여자로서 살면서 느끼는 이야기,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수시로 울컥하는 여자의 이야기예요. 올해 초부터 준비한 국가폭력 피해자 인터뷰집도 곧 나오고요. 

지금은 성폭력 피해자 (기록) 작업을 하고 있는데, 사회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어요. 좋은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고통이 다 있는데, 그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고통이거든요. 세월호 유가족들도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을 잃은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고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어떻게 자기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것인지, 그걸 풀어내는 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겨주세요.

똑같은 얼굴 없듯이, 똑같은 삶은 없잖아요.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검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쓰면 고유한 글이 나와요. 결국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자기다운 글을 쓰거든요. 글은 내 몸에서 나오잖아요. 내 몸을 이야기가 많은 몸으로 만드는 거죠.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우고 듣고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글쓰기 책 읽고 강좌 몇 달 듣는다고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꾸준히, 느긋하게, 하지만 게으르지 않게 자기 속도대로 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글 쓰다 힘들면 <쓰기의 말들>을 읽어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