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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칼럼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화장도 안 하고 다니다간 피부 망가진다는 경고를 20대부터 들었다. 내 딴엔 스킨로션을 바르고 분첩을 두드린 건데 그랬다. 뭘 어떻게 덧발라야 화장한 티가 나는지, 자외선이 차단되는지 알지 못했다. 확 망가지지도 않고 쫙 피어나지도 않고, 피부는 제 나이를 야금야금 먹어갔다. 피곤하면 뾰루지가 나고 뾰루지를 뜯으면 착색이 됐다. 새살이 돋지 않고 어엿한 잡티로 남았다. 세포 재생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느 날 자고 나니 오른쪽 눈가에 콩알 만한 얼룩이 생겼다. 자고 나니 책에 누운 글자가 흐릿해지던 즈음이다. 혹시? 이건 할머니 손등이나 얼굴에 나는 건데 난 ‘아직’ 40대이므로 설마했다. 노안이란 말을 그랬듯이 그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거슬렸다. 내게 ‘화장하라’던 조언자 일군은 충고했다. ‘피부과 좀 가라.’ 


검버섯. 내심 따돌리던 그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넣었다. 연관 검색어로 검버섯 제거비용, 검버섯 제거방법이 줄줄이 떴다. 링크를 하나씩 눌러봤다. 대부분 성형외과 광고글이었다. 비용도 천차만별. 십만원부터 백만원까지 개수와 크기와 기기에 따라 시술 비용이 달랐다. 몇 개까지 얼마라는 할인 혜택은 혹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제거 후 미백 관리가 필수’라는 문구를 본 다음에야 검색창을 닫았다. 


<몸에 갇힌 사람들>의 저자 수지 오바크는 말한다. “언어들이 사라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다양한 신체 종류들과 표현들이 사라지고 있다...다양성과 차이라는 강점을 잃어가고 있다...우리는 몸을 개조하기를 원하고, 미용산업에는 떼돈을 벌어다주면서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안긴다.”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영화 비포시리즈는 내 인생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1995)에서 <비포 선셋>(2004)으로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동일한 남녀 주인공이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 30년 시간의 폭과 결을 ‘몸소’ 보여주는 연기와 설정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들이 방부제 미모였으면 영화가 그토록 기품있었을까. 주름과 잡티를 예찬하던 나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얼굴에서 ‘그것’을 지우려했을까. (난 쥴리 델피가 아니니까) 수지 오바크 말대로 “몸이 흡사 낡아서 창피한 부엌이라도 되는 것처럼” 못마땅하게 굴었을까. (쥴리 델피처럼 예뻐지고 싶어서) 내 신체 박피 욕망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용납하지 못하는 개발 신화와 얼마나 다를까. (쥴리 델피는 영화에서 사나운 환경운동가다)


지루한 연휴 끝의 피부과 광클릭, 그 시작은 심각했으나 시시하게 종료됐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책도 있다시피, 피부과에 가면 점과 잡티는 무한 발명된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은 한번 받은 사람은 없다지 않은가. 안 하거나 또 하거나. 


‘계속’이라고 말하는 건 자본의 오랜 속삭임이다. 그 지속적인 피부 재생 및 미백 관리 및 주름 제거에 들일 시간과 비용이 내겐 없다. 운명이고 다행이다. 사회적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는 몸들을 만들어내는 미용산업 대열에 섣불리 발 들이지 못한다. 가끔 흔들릴 것도 같다. 잡티 빼는 게 뭐라고, 남들 다 하는데, 하면서 공돈이라도 생기면 피부과 문을 빼꼼히 열지도 모르겠다. 


내 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질문이 남는다. 노화는 섭리다. 몸에 대한 근원적 불안과 불만의 강도가 높아질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것이 아닌 것 같은 몸, 낯선 모습으로 고개 내밀 얼굴과 동거하는 연습을, 콩알 만한 그것으로 해보고 싶다. ‘일찍 시작하고 자주 시행하라’는 시대적 요청에 거슬러, 40대부터 잡티 제거 안하고 살면 어떻게 되는지, 나의 신체 표현이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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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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