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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말들

절판기념회를 축하해도 되나요?


아마도 ‘국내 최초’가 아닐까 싶은 ‘절판기념낭독회’가 지난 3월 17일 역촌동 북앤카페 쿠아레에서 열렸다. 주인공은 나의 첫책 <올드걸의 시집>. 이 책은 여자, 엄마, 작가로 사는 이야기에 시를 곁들인 산문집이다. 2012년 11월에 출간됐는데 출판사의 사정으로 3년 만에 절판의 운명을 맞았다. 절판은 출판하였던 책을 더이상 펴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예기치 못한 절판 사건을 통해 지난 한달, 나는 출판 만큼이나 값진 경험을 했다. 


먼저 물건 파는 법을 배웠다. 출판사에서 남은 책 100권을 내게 보내주었다. 사과 상자 크기 두 상자 분량의 책이 현관에 도착했다. 실물을 보자 아찔했다. 날 풀리면 야외 벼룩시장에서 팔까? 별별 궁리를 다하다가 페이스북에 절판 소식을 알렸더니 ‘페북에서 판매하라’며 ‘사겠다’ ‘나도 사겠다’는 의견이 와글와글 달렸다. 댓글만 봐도 근심이 가셨다. 그런데 내가 직접 물건을 판다는 게 영 어색했다. 입금 확인과 상품 발송 같은 실무의 번다함도 우려됐다. 아니, 단지 화폐로 내책이 교환되는 행위가 어쩐지 쓸쓸했다. 더 유의미한 유통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때 북카페 한켠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페친’ S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팔게요! 그는 다음날 차로 책을 실어갔다. 북한산 아래로 멀어지는 차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따로 또 같이 살자. 책 쓰기는 작가에게 책 판매는 책방에서. 


다음은 인연을 다하는 법을 배웠다. 페친 S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올드걸의 시집>이 출간됐을 당시 난 흔한 무명 작가였다. 책 소개가 언론사 두 곳에 나왔고, 강연 요청은 도서관 한 곳에서 들어왔다. 그 한 번의 강연을 기획한 사람이 바로 S다. 그가 3년 사이 도서관 사서를 그만두고 북카페 겸 책방을 차린 것이다. 그리고 도모했다. “절판기념회를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는 ‘출판기념회만 하란 법 있느냐며,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 열명 정도 모여서 같이 좋아하는 부분을 읽고 대화하는 오붓한 자리를 마련하자’고 했다. 마음이 동했다. 자고 나면 쏟아지는 신간의 홍수 속에서 어떤 책들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응시와 애도는 <올드걸의 시집>의 주된 메시지와도 통한다. 또 책의 시작과 끝을 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래, 하자. 복 있나니 조촐한 절판기념회는. 


마지막으로 제 짝을 찾는 법이다. 사실 나는 ‘책이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다행히도 서울 끝자락 동네 한 건물 3층 책방에서 햇살을 받으며 주인을 기다리던 책 백여권이 한달만에 임자를 만났다. 독자가 직접 와서 사가거나, 부산에서 제주에서 저 멀리 필리핀에서까지 우편으로 구매했다. 예닐곱 권 남은 책은 그날 절판기념회에 온 이들이 ‘선물용’으로 사갔다. 100권의 책이 모두 영혼의 짝을 찾은 것이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리지 말라”(「봄밤」)고 시인 김수영은 노래했던가. 남은 책을 빨리 ‘팔기’보다는 늦더라도 ‘가닿기’를 바란 무모한 욕심, 사고 파는 일이 단지 ‘물건의 거래’가 아닌 ‘삶의 교류’이길 바라던 낭만적 시도가 이로써 무사히 성사됐다. 그래, 이거다. 어떻게 할까는 누구와 할까의 문제로 풀면 낫더라는 것. 그걸 배웠다. 


“절판기념회를 축하해도 되나요?” 누가 묻길래 난 진심으로 답했다. “그럼요.” 이토록 귀하고 요란한 이별 의식을 치르는 사이, 나는 더없이 좋은 책을 쓰고 싶어졌다. 책으로 세상과 내통하는 쾌락을 맛보았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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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실림


(올드걸의 시집은 다른 출판사에서 여름즈음, 다른 제목으로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