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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고3 엄마로서의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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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마지막 수업 날, 뭔가 포옹이라도 하고 끝냈어야하는데 저녁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후다닥 자리를 나와서 영판 아쉽습니다. 7기 수업 일정표 짤 때만 해도 12차시 수업이 수능시험은 전전날 이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고3 엄마로서의 자의식이 형성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수능 열흘 전 즈음에야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 했고, 마땅한 노릇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사골을 우리고 유기농 혼합 잡곡을 사고 성능 좋은 보온도시락을 마련하고 등등 끼니를 헐하지 않게 채워주는 것으로써 제 소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렇게 3 엄마 벼락치기를 하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무탈하게 돌아가는(듯 보이는) 일상의 위대함이랄까요. 입학, 졸업, 진학, 취업, 결혼, 출산, 이별, 죽음 등등 생의 매듭을 통과하는 게 쉽지 않은데도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꽤나 당연히 여겼던 거 같아요. 살수록 느낍니다. 한 사람이 어른이 되기까지 엄마아빠 등 지지 세력의 역할이,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수고로움이 무척 크다는 사실을요. 아이 낳고 기르면서 부모님께 고마웠는데 아들 수능시험 보면서 정서적 부침을 짧고 강력하게 경험하고 나니 더, 감사하게 되었어요.

 

, 아들이 수능을 잘 봤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실력대로 봤습니다. 수학교육과를 지망해서 수학은 실수하면 안 된다며 막판까지 수학 공부에 열중하더니 수학은 잘 보고, 910월 모의고사가 잘 나와서 만족하던 영어랑 국어는 등급 하락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성복 선생님의 글쓰기론이 떠오릅니다. 글은 나 자신보다 잘 쓸 수도 없고 못 쓸 수도 없다던 말씀이요. 시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실력보다 잘 보기도 못 보기도 어렵지요. 기적은 일상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네요.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한 명이 크기까지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거든요. 이번에 수능시험 본 아들의 성장을 돌이켜보면서 실감했습니다. 특히 수능시험을 앞두고 아이에게 크고 작은 도움과 관심과 응원과 찹쌀떡과 초콜릿을 건네준 많은 분들에게, 많이 고맙습니다. 아이에게 잘 전달해주었고요. 네가 살면서 받은 것은 다 세상에 내놓고 가야 공정한 삶이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돌봄의 순환을 위해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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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남자 독자들은 아낙네를 긴 생머리의 청순한 여자로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 아낙네는 34세의 남자다.’-> 혹시 아낙네를 긴 생머리의 여자로 기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낙네는 34세 남자다.

 

남자는 청순한 여자 좋아할 것이라는 젠더적 이분법을 따르는 해석입니다. 그러기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모호하게 처리하는 게 낫죠.

 

콩밭의 아낙네가 내려주는 밝고 다정한 맛의 커피에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커피 파는 사람 인터뷰에 드러나야 할 요소들, "좋은 커피를 골라서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표현, "이렇게 싹 비우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손님이 커피를 남기면 꼭 맛을 본다는 아낙네. 소심해서 커피를 남긴 손님이 자기 전에 생각난다는 설명. ‘OECD평균 노동시간으로 노동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직업관. ‘커피는 변수가 많아서 워낙 잘하기 힘들다고 한다. 심하게 말하자면 똑같은 한 잔의 커피는 없는 거라고. 정성 없는 음식을 먹는 것은 비참하다고. 그에게 정성이란 주문을 외우고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하자면 다정한 커피죠." ’ 커피에 대한 그만의 해석. 이 글을 읽고 나면, 앞으로 어느 커피 전문점에 가도 덜 남기려 애쓸 것 같고 다정한 맛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까눌레 익는 향기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좋은 글입니다.

 

 

* 스말러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면 내일 또 새로운 문제가 터지는 기간. 이 기간이 괴롭기만 했다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책임을 피하지 않고 적극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면 또 모든 문제는 쉽게 풀려간다. 엉킨 실타래를 풀 듯 순리대로 하다보면 어느새 건물은 완공된다. 무엇이든 끝은 오는 것이다.’

 

무언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면 얻어지는 통찰이 있죠. 직업을 통해 얻어낸 귀한 삶의 통찰이네요. 무엇이든 끝은 온다. 스말러님의 일의 현장이 눈앞에 그려져요. 노동의 애환도 있고 기쁨과 보람도 있고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노하우도 보이네요.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구체적 묘사의 사례로 삼으면 좋을 문장들.

 

안 그래도 책상 2개를 붙여서 쓰는 넓디넓은 내 자리가 페이퍼로 덮여지는 순간이다. 오른쪽 귀와 어깨 사이에 전화를 끼고 이 도면에서 저 도면으로 이 타입에서 저 타입으로 정신없이 옮겨간다. 체크가 끝난 도면은 건너편 이사님 책상으로 날라가기도 한다.(->날아가기도 한다) 이 순간에도 전화비용을 생각한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가능하면 모든 질문과 확인사항을 남기지 않고 짚어내야 한다. 목 언저리의 뻐근함과 뜨끈해지는 수화기 열만 견디면 된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도 이제 모델하우스를 지날 때면 부드러운 곡선의 화려한 건물보다는 안전모를 쓰고 허허벌판 현장을 지나던한 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싱크대를 놓는 일, 누군가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아주 뜻 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스말러님은 글은 부들부들 국수 가락 넘어가듯 술술 읽혀요.

 

 

* 율마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과 네 주변의 사람들, 가족, 친구들, 방황하는 지금의 너까지도 모두 너야. 너의 뿌리를 의심하지말아.(-> 의심하지 마라.)’

 

문제 안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율마님의 고민도 이 글에 답이 있는 걸로 보이네요. 엎치락뒤치락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이니 다시 원점이라니. 경험할수록(->경험할수록), 부딪힐 수록, 사랑 할 수록 더 모르겠다는 결론 없음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 아닐까요. 인생에 정답이 있고 가야할 명확한 길이 쉽게 정해진다면 숱한 문학과 예술은 태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힘들어도 안고 가야할 물음이 아닐까요.

 

모기물린 곳이 가렵다면 피가 나고 딱지가 앉을 때까지 긁어볼 일인가? 가려움은 통증으로 바뀌고 남은 것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뿐이었다.’

 

이건 시행착오에 대한 좋은 비유로 읽혀요. 그런 상처가 삶의 무늬를 이룬다는 것. 이 모기 상처와 대조적으로 손톱 발톱은 순한, 무탈한 영역이고요. ‘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성장나의 '손톱, 발톱, 머리카락'라고 규정하는 마지막 정리는 불안하지 않은 요소, 비교적 안전한 것에 자신을 정의내리고 싶어 하는 의지로 보여요. 어느 날은 손톱 발톱, 어느 날은 모기물린 자국, 어느 날은 혼돈을 써내려간 글, 그렇게 변화 생성하는 존재가 율마님이구나, 빛깔 고운 나무의 잎사귀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

 

 

* 맑은샘

도심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식탁 위 생명의 소중함과 감사함에 대해 말로만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는 엄마가 있어 오늘 하루 동행해 보겠습니다.’

 

생생정보통 인터뷰의 시도. 아주 멋지세요. 기자이자 엄마인 일인이역을 잘 소화해내셨습니다.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요.^^; 정말 생생하게 흙밭에서 고구마 캐고 두꺼비랑 지렁이 보고 구르다가 온 기분이 돌아요. ‘꼬방 꼬방 장꼬방에/ 모래알로 밥을 짓고/ 꽃잎따다 전부치고/ 풀잎따서 국끓이세시와 노래가 들어가서 더 입체적인 글이 되었고요. 홍엽샘 아니면 쓸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서 고유하고 독창적인 글이 되었습니다.

 

먼저 무섭다고 소리 지르고 비명을 지르며 뛰어 다녔다면 두 딸들은 아마 자연의 생명들과는 아주 멀어졌겠죠. 두 딸들 보시다시피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행동을 하는 거죠.’

 

이 대목에서는 자연을 벗 삼아 키우는 엄마의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과 강화도를 오가고 밭일하기까지 어려운 점, 에피소드도 들어간다면 더 생생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빛과 그늘이 적당히 공존하는 글이 더 설득력 있거든요. 어렵지만 그래도 실행에 옮기면서 얻는 보람이 제시된다면 자연과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크는 빛나와 예나는 분명히 좋은 열매로 자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기자의 마무리 멘트에 힘이 실릴 거예요.

 

아이참. 지렁이는 햇빛을 보면 말라 죽어요. 그리고 지렁이는 밭에 흙을 먹고 똥을 예쁘게 싸줘서 우리 밭에 고구마가 맛있게 크는 거예요. 이제 알겠어요?’

 

아이의 이 말이 너무 예뻐요. 홍엽샘만 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을, 홍엽샘만 쓸 수 있는 좋은 글로 많이 기록해보세요.

 

* 김현미

이창국 선생님은 큰 아이 다니는 중학교의 과학 선생님이시다.(->이다.)’

 

현미샘 덕분에 아이들을 섬기는 참 스승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접했네요. 정말 교사로서 노력하는 분이고 애정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단서를 적절히 제공해주셨어요. “<써머힐>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고 그들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고서야 이런 것 이었구나깨닫게 되었다는 것, 기억에 남는 제자의 이야기, 단단한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교사의 존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등.

 

한 가지, 질문이 크고 추상적이어서 아쉽고요. ‘선생님 교육 중에 강조하시는 가치는 무엇인가요?’를 좀 쪼개서 파고들면 이야기가 더 생생할 텐데요. 교육자로서 지키고 싶은 가치가 흔들린 경험을 물어봐도 좋을 것이고요. 또는 ‘1980년대의 학교 현장은 기성의 교육 관료들과 젊은 선생님들과의 부딪침을 겪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런 답변을 듣고 나면, 교육 관료와 젊은 교사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묻는 것도 좋겠죠.

 

아이들에게는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냥 젖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게 있었던 일상의 일을 조금씩 들려주면 그것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사례와 독서교육 이야기는 선생님의 노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요.

 

지금부터 실망스런 얘기가 나올 거예요. 좀 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요. 원자력이 너무 위험하니까 빨리 이 나라를 벗어나고 싶어요. 어느 나라로 도피할 것인가? 터키를 가 볼까? 원전이 하나 있어 안전하지 않네. 칠레를 생각하니 너무 멀고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올까 생각 중이에요.’

 

이번 인터뷰의 백미와 반전은 마지막이 아닐까요. ^^ 반듯하고 온당하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글을 살리는 게 아니라 실망스런 이야기, 불량스런 이야기가 들어가야 글이 재밌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선생님이 그러면서도 살다가 떠난 자리에 흔적을 안남기고 싶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섬기고 있다는 말씀이 더 진솔하게 느껴져요. 지극히 세속적이면서도 고고한 추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분열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외려 더 존경심이 갑니다. 긴 원고, 정리하느라 애쓰셨어요. 현미샘의 아이들과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더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랄게요.

 

 

* ㅇㅈ

오랜만에 만난 그는 살이 올라있었다. 얼굴이 이렇게 컸나? 자다 나온 것도 아니면서 눈은 왜 저렇게 부었대, 아 저 갈라진 앞니. 재빨리 스캐닝을 한 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우습다. 콩깍지가 벗겨지긴 했나보다.’

 

구체적인 묘사, 필자의 심리가 적절히 유머러스하게 드러난 좋은 문장이네요. “지적 교류라는 관심으로 변형되어 유지되는 가부장적 지배로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연애만한 것도 없으리라.” 이 글의 주제 문장이죠. 이를 뼈대로 관계를 분석해가는 연애실패담 추적기.

 

당신은 왜 연락을 끊었는가? 그랬으면서 전화로 인터뷰 요청할 때 왜 우리 관계가 한 번도 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는가.’

 

가부장적 지배로서 사제지간의 연애(발단-전개), 가부장적 규범에 반하는 불륜스러운 연애의 불안과 불균형(위기-절정), 가정으로 복귀하는 형식의 일방적 이별과 그 후(결말). 이 과정에서 매우 세속적 태도를 보여 온 남자가 교묘한 해석술로 치장하면서 급진적 자유연애주의자운운하면서 자기 합리화하는 태도의 우스꽝스러움. 지적 욕망과 젊은 살의 욕망의 거래, 자기분석을 통한 사랑의 한 단면, 등등 이걸 보여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사랑이 다해서 헤어졌다는 마지막 결론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해요. 이 부분을 더 은재만의 언어와 정념으로 표현해 봐요. 롤랑바르트의 이야기보다 압도적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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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수업 장면 아쉬워서 찍었어요. 아래 사진운 회의 갔다가 늦게 참석한 뒷풀이에서 <도시기획자들> 축하 케이크 촛불 밝혀주셨어요. 세번째 책이라고 초 세 개. 고마워요. 더 열심히 쓸게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