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1 / 김남주

[올드걸의시집]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떨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 치밀하지는 못했으리.

 

 

- 김남주 시집 <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사 

 

 

 

예전에 인터뷰하러 한참 다닐 때, 빈민운동 현장에 몸 던지고 사는 분을 찾아간 적이 있다. 여성이었다. 나보다 열살 위 정도 연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세 살 위여서 놀란 적이 있다. 삶은 더욱 놀라워서 인터뷰 끝무렵에는 주책 맞게 눈물까지 흘렸다. 삶에 감명 받아서다. 나중에 세살 위의 선배를 만났을 때 생각나서  그 얘길 했더니 "몸 던지고 싸우면 몸이 퍼지고 늙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몸매 관리와 꽃단장이 있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묵묵히 한 평생 힘없고 약한 이들과 몸 비비며 살다가는 분들이 있다. 눈만 마주쳐도 존경스럽고 죄송스럽고 부끄럽고, 불상 앞에 선 것처럼 마음이 정화되면서 참회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그런 분들의 삶에 거울처럼 나를 되비추고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잠깐이라도 성찰할 수 있었으니, 고마운 존재인 거다. 요즘은 집회도 안 나가고 인터뷰도 안 다니고 그런 기회마저 없으니 어째 내 삶이 뺀질뺀질해져가는 것 같다.

 

대선 끝나고 노동자 두 분이 목숨을 던졌다는데 한 숨 한 번으로 끝내고는 잊었다. 대선 다음 날, 친구한테 오랜만에 전화가 왔는데 첫 마디가 이랬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네?" 다른 친구는 아침에 눈 뜨기 싫다며 식음 전폐 분위기라고 전해주었다. 대통령 일인에 대한 별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앓아 누울만큼 큰 실망도 한탄도 없었다. 그러다가 시집을 뒤적거리다가 시를 봤다. '학살1' 스무살 피 끓던 시절에 참 열심히도 읽던 시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랑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는. 새삼 이번 대선에서 광주의 91% 지지율이 떠올랐다. 광주는 5월에 제사 없는 집이 없다던, 누군가의 말이 연달아 스쳤다. 시 세미나에 가면 '학살1'을 읽어야겠다고 맘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소리 낮춰 읽고 싶었다.

 

세미나에서 한분이 토끼털 목도리와 이별식을 공개적으로 갖는 바람에 화제가 채식과 모피로 흘렀다. 채식은 훌륭하지만, 채식이냐 육식이냐 유기농이냐 아니냐의 선택지가 자체를 가질 수 없는 삶도 있음을 상기했다. 어느 글에선가 유기농 채식하는 사람이 육체노동자가 삼겹살에 소주 먹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길 보고 공감했기 때문이고, 푸코도 그랬다. 자아의 예술적 창조란 특정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유럽에 채식주의자가 많고 동물애호가가 많은 것도 문화적 수준이나 교양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또 우리의 이야기는 흘러흘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에관한 예찬이 만발했다. 한 친구는 터키로 여행 가서 두 달 동안 동굴방에서 지냈다고 했고, 한 친구는 한동안 집에서 하루 종일 누워 지냈던 시절 오후에 창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 노는 소리와 햇살이 들어차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친구는 인간이라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는 시간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시간 낭비'란 말 자체가 생겨난 것이 인류의 불행이고 자본주의적 개념이라고 주장하며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얼마나 지배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힐링이니 치유니 여가니 하는 말들이 다 오염되었는데 무위의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을 뜻하는 언어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런 삶을 많이 영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나의 의견에, 아무 것도 안 하기를 매우 즐기는 한 친구는 그런 말이 만들어지면 뜻이 변질되니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불쑥 화가 났다. 뭐야, 혼자만 즐기겠다는 거야? 따지듯 궁싯거렸다. 그 친구는 그런 개념짓기는 철학의 영역이고 "그래서 나는 문학이 좋아요" 했다. 집에 와서도 속이 뒤숭숭했다. 내밀한 얘기를 종종 나누는 친구이다. 무위의 시간을 영위하는 삶에 대한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길 바라는 염원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옹졸하기도 하지, 나는 영 그 발언이 못마땅했다. 그리고 헷갈렸다. 로고스화된 존재로부터 해방되어 자기의 자연스러운 있음으로 돌아가는 일을, 로고스로 규정하는 것은 모순일까? 그렇다고 언어의 문법을 벗어난 삶이 가능하긴 할까?  

 

며칠이 지나 생각하니, 내 삶에 대한 불만이 그 친구의 발화로 표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살 따위 잊고 대통령 선출 따위에 무심하며 시 읽고 책에 밑줄 긋고 사는, 유사 안빈낙도스러운 나의 삶에 대한 화풀이같은. 꾸짖지도 못하는 빈정거림 같은. 자주 생각한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이 외부세계로 흘러 타자에게 이르지 못하고 독서경험의 사적소유-축적에 그치면 명품백과 옷가지로 자기 삶을 위로하는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러니 철학도 문학도 아니고, 나는 존재의 순환에 연연한다. 순환이 되지 않는 삶에서 갑갑함을 느끼고,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병증이 있는가 싶다. 여러 증상을 유추해보건데, 필요 이상 화가 날 때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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