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파수병 / 김수영

[올드걸의시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와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 시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

 

 

직장생활을 한 지 두 달이 흘렀다. 한산한 일요일을 보낸 지는 두 번째다. 늦은 아침 차려 먹고, 책 붙들고 뒹굴다가 낮잠 자고, 시장 한 번 다녀오고, 그리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다. 이런 나의 상태가 영 어색하다. 마음 같아서는 주말에 눈에 활자를 듬뿍 바르고 글도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적응이 되면 나아지려니 했는데, 분주한 일요일도 한가로운 일요일도 눈만 껌뻑거리는 사이 휩쓸리듯 지나가기는 매한가지다. 불현 듯 불안이 생겼다. 근근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글쓰기를 배반하고 사는 삶에 대해.

 

지난주에는 퇴근 후 오랜만에 연구실에 들렀다. 중요한 회의 자리. 몇 가지 결정해야할 안건을 처리했다. 한 동료가 나에게 직장생활은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아마 최소 2년에서 기약 없이라고, 현재로서는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고 했다. 집에 아이가 혼자 있어 허겁지겁 돌아오는 길, 한없이 착찹했다. 어쩐지 내가 멀리 떨어져 나온 느낌이 들었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성북천을 산책하면서 고추장이랑 현장인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구상을 얘기했었다. 준비된 것 없지만 막연히 설렜었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던 각오에서 풀려난 지금은 회의 한 번 참석하는 것도 쩔쩔 매고 있으니 암담한 거다. 글쓰기 수업도, 현장인문학도, 시즌4가 끝나가는 시 세미나도, 잠시 보류가 될지 아주 단절일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열상에서 내가 어떤 연관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밤에는 끊어진 관계를 고통스러워하는 여자가, 낮에는 새로운 일상을 웃어넘기는 여자로 산다. 회사가 이상의 제비다방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이다. 마당에 하늘이 들어차는 아담한 한옥이다. 우리 사무실에 다녀간 한 친구는 처마 끝만 봐도 힐링이 되겠다고 했고 다른 한 친구는 여기서 놀고 싶어서 어떻게 일하냐고 걱정했다. 편집장님은 유머 있고 지적이고, 무엇보다 언어사용이 유려하니 존경스럽다. 마감을 앞두고 추가 인력이 필요해서 글쓰기수업 도반이었던 친구를 채용하여 크게 의지가 된다. 같이 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는 소설 출간을 앞둔 예비 작가로서 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다. 5명이 마감 작업을 함께 했는데 팀워크가 좋아 서로 얼굴 맞대면 웃음보부터 터졌고, 일할 때는 진지했고, 점심 저녁마다 서촌 근처의 맛집을 섭렵하며 보신했다.

 

이렇게 써놓으니 신의 직장 같다. 그게 전부는 아니기도 하거니와, 나는 이런 조증 상태가 다소 버겁다. 주린 것 우는 것과 궁상떠는 것에 익숙한가 보다. 부를 축적하는 건 아니지만, 잘 먹고 잘 놀려니 어색하다. 월급날을 향해 하루씩 좁혀가며 남들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쑥스럽다. 이 일말의 안락함이 수렁처럼 나를 끌어들일 것도 같다. 한 선배랑 같이 취재 가면서, 가진 자들의 잡지를 만드는 게 삶을 배반하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죄의식이 든다고 했다. 그러지 말라고, 자기가 아는 가장 급진 좌파인 지인도 가정생활을 위해 대기업에 다니고 실적 올리는 상품 판매도 열심히 하는데 좋아 보인다고 했다. 한마디로 밥벌이가 어때서라며, 이념과 가치를 추구하느라 가족들 굶기는 운동가를 비판했다.

 

나는 밥벌이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거기에 붙들릴까 염려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무너질까 두려워할 때 발생하는 것이 '불안'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강고해질까봐 두렵다.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는, 그런 어리석음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인생이다. 밥을 위한 삶. 가치를 추구하는 삶. 이분법적으로 하나만 선택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노동과 삶이 분리된 처지가 사람에게는 폭력적이다. 하나만 골라서 극단을 취하기는 어쩌면 만만할 것이다. 둘 사이의 경계에서 긴장을 견디는 게 삶의 기예일 것이다. 그게 어려워 김수영도 제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노상 주문을 외웠고, 자기 미움으로 온통 시를 도배해 놓았겠지. 내가 무슨 돈, 권력, 명예 같은 권력의 표상을 탐하는 자도 아니고,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말리고 내일을 위해서 잠을 자야하는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도, 사는 일이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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