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하청업자의 희비의 쌍곡선

[차오르는말들]

집을 막 나서려는데 문자가 띠리릭 왔다. 아침 댓바람부터 누군가 봤더니, 어제 수업 너무 좋았다고. 그 얘기 하고 싶었다는 애정고백이다. 나도 그대들이 좋다고 화답했다. 이문동에서 오랫동안 어르신들 반찬봉사한 친구들이, 어르신들 인터뷰해서 사람책을 만들 예정인데 내가 그걸 돕는 단기강좌를 하게 됐다. 어제 첫 수업을 했다. 수업보다도 수업 후에 그 친구들이 들려준 어르신들 얘기가 난 더 좋았다. 애잔하고 뭉클하고. 그놈의 불쌍병 연민병 측은병이 또 돋아나려해서 문제지만, 나는 오래 견디는 것들에 끌린다.

아르바이트로 사보일을 하는 회사에 가는 길이었다. 업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교육을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이번달 본부장 인터뷰 원고가 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담당자를 만났는데 원고 두 개를 내민다. 내가 쓴 것과 그가 고친 것. 비교해서 읽어봤더니 몇 군데 조사를 넣고 완곡한 표현, 정치적 표현으로 바꾸고 두어 단락은 삭제했다. 잘려나간 내용은 회사의 이미지 제고와 성공신화 이데올로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것들과 불리한 것들이다. 내가 알아서 뺐어야하는데 눈치없이 꾸역꾸역 넣은 꼴이 됐고, 결국 담당자는 원고의 완성도를 문제삼았다. 지난달에는 나에게 원고가 너무 좋다면서 소개시켜준 사람에게 밥을 한번 더 사야겠다고 하길래 '원고를 고작 한 편 보았으니 몇 번은 더 보고 판단하시라'고 얘기해두었던 참이다. 그 당시 흡족함에 못내 겨워하던 표정이 오늘은 살짝 일그러진 채 나에게 한다는 말이,

"지난번 원고가 100이었다면 이번 원고는 한 50정도 돼요."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모욕스러운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보기자로 일할 때도 원고AS가 들어올 확률은 거의 2~3% 정도나 될까.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배고픈 프리랜서의 세계다. 편집자들이 다시 써달라고 할 때도 양해를 구하고 미안해 하면서 정중하게 얘기한다. 원고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러는 거다. 그런데 이 사람은 면전에다가 대고 뭐라고 말하는 건지, 내 귀를 의심했다. 자기 자식에게도 해서는 안 될 말을 다 큰 업무 파트너에게 하다니 기가 막혔다. 나는 평정심을 되찾고 또박또박 말했다. "글을 더 회사입장에서 잘 써달라고 말하면 될 것을 참 무례하시네요. 어떻게 50점 이라는 표현을 쓰시나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핑 돌려고 해서 입술을 꽉 깨물고 잠시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그가 당황했는지 자기가 원래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받아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교육이라는 것을 받고, 꼭 점심 드시고 가라고 해서 그냥 가면 속좁은 사람처럼 보일까봐 또 배도 고파서 갈비탕 한 그릇 비우고, 인사드리고 나오면서, 나는 나의 질긴 생명력이 애처로웠다. 

이런 게 밥벌이의 서러움인가. 애들만 아니면 누가 왜 그 딴 소리 듣고 살겠는가. 나 어릴 때 아빠가 회사를 자주 옮기셨는데 이럴 때마다 사표를 쓰신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원고 쓸 때마다 점수로 평가받는다는 생각하니까, 무슨 신춘문예도 아니고 정답 있는 수학문제도 아니고 고작 기업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복무하는 글일수록 높은 점수가 나오는 이 시스템에서 이래도 열받고 저래도 불쾌하다. 그냥 단순 밥벌이 돈벌이로 생각하고 일하면 그만인데 그게 잘 안 된다. 내 스스로 나를 납득시킬 명분이 없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 비참하다. 오늘 따라 가방에 담아온 책이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일게 뭐람. 속상한 마음에 한줄 한줄 북북 줄쳐가면서 읽었다.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공동체로 만드는 그런 세상 언제 어떻게 온단 말인가.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 나의 구직선언에 선배가 주선해준 편집회사에 면접 비슷한 걸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아두었다. 내가 만약 취직한다면 해야할 일에 관한 브리핑을 받는데, 그냥 취재요청서 받고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에디터 일 - 섭외, 취재, 원고작성, 교열교정, 이미지 서핑 등등 까지 해야한다. 마감 임박하면 야근불사는 당연지사고. 안 해본 일이라 호기심도 생기고 두려움도 일었다.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아서 도전해보고 싶다가 눈물바람 하고 하루만에 짐싸들고 나오는 내 뒷통수가 떠올려지기도 했다. 나는 일을 시작하면 몰입하는 편이고 한발 걸치는 걸 체질적으로 못하니까 까다롭기로 소문난 주간과 합을 맞춰가면서 할 수 있을 것도 같았고 의외로 재밌을 수도 있다. 체력이 점점 약해지니 지금 아니면 영영 못할까 싶기도 하고. 만약 취직을 한다면 글쓰기 수업과의 병행문제도 잘 맞추어야 하고 미안한 사람도 생기고 여러가지로 심경이 복잡했다. 선배랑 친구한테 의논했더니 "다 그러고 산다"면서 고정수입 보장되는 일을 하라고 권했다.

저녁 먹고 대충 치우고 방에 누워서 올만에 친구랑 통화하면서 낮에 겪은 수모, 50점의 난을 한바탕 터놓고 욕을 한 바가지로 하면서 소심한 복수를 마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예전에 글쓰기수업했던 이다. 추석은 잘 보냈느냐 보고싶다 자기는 잘 있다는 문자다. 괜히 서러웁던 참에 반가워서 나 못지낸다고 잉잉거리면서 티를 냈다. 왜 어떤 일이 있느냐고 힘내시라고 그러면, 난 또 그대가 지방 발령 받아서 간 곳은 어떤지 쓸쓸하지는 않은지 묻고, 주거니 받거니 문자질을 한참 하고는 작별인사 무렵에 그가 '그래도 선생님이랑 글쓰기수업할 때가 제일 즐거웠어요.' 한다. 내 말이...우리는 그리움 공동체 아니겠는가 말했다. 나는 글쓰기수업할 때 제일 나로 사는 것 같다. 존재가 피어나고 웃음이 솟아난다. 그런데 그 생명감도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늘 낯설게 유배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유지해야 마땅하거늘 막상 닥치면 두렵고 익숙한 삶에 묻어가고 싶어진다. 남이 건네는 말 한마디에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희비의 쌍곡선 그리면서 도대체 나의 삶은 어디로 가시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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