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비판요강 - 화폐와 자본 그리고 노동

[스피노자맑스]

<정치경제학비판요강1>172~308 요약 

 

1. 화폐의 기능형태

화폐는 모순되어 보이는 기능들의 복합체다. 맑스는 화폐가 어떤 기능적 형태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역할, 역사, 그로부터 초래되는 위기들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1) 가치척도: 상품들이 교환되기 전에 이미 전제되는 척도로서의 화폐. 척도로서의 화폐는 계산화폐로 기능한다. 가격으로서의 상품은 관념적 화폐로 전환된다.

2) 유통수단: 상품이 화폐로 실현될 수 없다면 그 가격은 단지 상상에 머물 뿐이다. 화폐는 모든 사물의 형리이고 모든 것이 바쳐져야 하는 화신이며, 모든 상품의 전제군주가 된다.

3) 화폐로서의 화폐: 부의 축적. 화폐가 가치척도나 유통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순환. "화폐는 더 이상 수단으로도 척도로도 현상하지 않고 자기목적으로 현상한다“ -> 자본으로서의 화폐 규정을 예감.

 

* 유통수단으로서 화폐도식 W(배추)-G()-W(자전거): 화폐는 유통바퀴로서 유통에 머묾. 영구기관으로서 끊임없는 자기회전.

* 화폐와 화폐를 상품이 매개하는 도식 G()-W(배추)-G(): 화폐가 상품들의 단순한 교환수단으로서, 중간자로서, 결론의 소전제로서 나타나는 형태와는 특유하게 구별된다. “화폐도 유통으로부터 이탈될 수 있음을 보여줌.

 

** 화폐 그 자체를 목적으로 유통에서 퇴장시킨다는 것 - 화폐가 부의 보편적인 물적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화폐는 모든 사물 중의 일반자이다. 단순한 유통수단일 때는 종의 형체였지만 부의 일반적 대표자로 인식되는 순간 그것은 상품세계의 지배자이며 이 된다. “화폐는 욕망의 한 대상에 그치지 않고 욕망의 유일한 대상이 된다.” -> 치부욕의 탄생. 물욕은 화폐가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나 치부욕은 역사적 산물이다. 치부욕의 발전은 개성의 부재와 공동체의 몰락을 초래한다.

 

2.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1) 교환의 사회이론:

자연은 환율이나 은행가를 낳지 않듯이 화폐도 낳지 않는다.” 화폐를 역사적으로 발전된 생산관계와 상관없이 설명하면서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내재적 대립이 단순히 파악된 화폐관계에서 해소된 것으로 현상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더욱 다시 화폐로 도피한다.

 

2) 화폐제도의 발전은 표면적으로 자유와 평등 체제의 실현. 판매자에게는 구매자가 왕이든 노동자든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심층으로 다가서면 피상적 동등성이 사라진다. 교환가치가 생산체제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생산물이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것의 규정을 따른다는 강제가 내포 됨. “결코 개인의 의지나 직접적인 본성으로부터 유래하는 전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전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이미 사회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정립된다.”

-> 노동과 자본의 대립 잠재 : 일한 만큼 받지 못했다는 부등가교환만을 착취로 이해하고 교환가치 자체의 착취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문제 = 교환가치 체제가 이미 폭력적이라는 것.

 

3) 자본의 규정에 대한 경제학적 통념 비판:

순수유통에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교환가치의 단순운동은 결코 자본을 실현할 수 없다. 유통의 외양 뒤에서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의 전제는 노동에 의한 상품의 생산,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의 생산이다.”

 

* 자본을 자본이게 하는 형태규정. “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는 모든 대상화된 노동이 자본인 것은 아니다.” 만약 자본이 축적된 과거의 노동일뿐이라면, 자본은 모든 사회형태에 존재했으며 전적으로 비역사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잘못은 자본을 인간적 생산의 특수하게 발전된 역사적 단계로 만드는 특유의 규정을 추상해버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 자본은 관계로 파악해야지 사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프루동이 생산물과 자본을 동일시했던 이유는 그가 자본이 관계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A는 그 자체로 노예가 아니다. 그는 사회 속에서, 사회에 의해서 노예가 된다.”

 

4) 자본에 대한 규정: 첫째. 유통을 전제하고 유통 속에서도 보존되는 것. 단순유통에서 교환가치의 실현은 사라지는 실현이다. 자본은 유통을 전제하지만 유통을 통해서 또한 보존되어야 한다. “자본은 번갈아 상품이자 화폐이다.” 둘째. 노동을 매개로 증식되는 교환가치. “노동의 단순한 등가물, 노동의 단순한 대상화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갱신되고 스스로 다시 유통을 시작하기 위해 노동에게만 바쳐지고 노동의 재료가 되는그런 교환가치로 스스로를 정립.

 

5) 대상화된 노동: 아무리 큰 화폐액도 그 자체로 자본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일정함이라는 한계, 그 규정을 넘어서는 무한성이 자본의 규정. 자기 증식하는 가치’. 어떤 사용가치가 자본에 마주하려면 화폐를 증대-배가 시키며 자본으로서 보존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 모든 상품들의 공통적인 실체, 교환가치들로서 그것들의 공통적인 실체는 대상화된 노동이다.

 

3. 자본과 노동의 교환

1) 자본가와 노동자의 교환: 노동자와 자본가의 교환은 등가적이다. 이 교환을 통해 자본가가 받는 것은 타인의 노동에 대한 처분이라는 사용가치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 자신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

* 임노동의 탄생: 임노동은 토지소유에 대한 자본의 행위에 의해 창출된 것. 토지에서 불필요한 입들을 청소하고 대지의 자식들을 그들이 성장한 가슴에서 떼어냄. 생산수단의 폭력적 박탈.

 

2) 절제와 근면, 그리고 박애: “최대의 근면, 노동과 최소의 소비는.. 그가 최대의 노동에 대해 최소의 임금을 받는 결과를 낳고, 노동의 일반적 가격을 낮춘다...일반적인 절약은 그들의 임금이 너무 높다는 것을 자본가에게 보여줄 것이다.” 노동자는 어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다. 다만 환상으로서의 일반적 부가 그를 추동할 뿐이다.

 

* 맑스의 조언: 어느 정도 저축이 가능할 때 (노예와 구별하는 몫) 정서적 향유 범위를 넓혀라.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동, 신문구독, 강의청취, 자녀양육, 취향발전 등.

 

* 부르주아적 박애의 위선적 구호. “어떤 자본가든 그의 노동자들이 저축할 것을 요구하지만, 단지 그의 노동자만 저축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에게 노동자로 마주 서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노동자 세계는 결코 저축해서는 안 되는데, 그들은 자본가에게 소비자로 마주 서 있기 때문이다.”

 

** 노동자가 절약을 통해 자본가가 될 수 있다는 환상. 절약을 통해 집적한 화폐가 자본이 되려면, 그것은 다시 노동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은 비자본인 노동을 가정하고 요구하는 것. “한 점에서는 지양되어야할 대립이 다른 점에서는 수립된다.” 자본이란 비노동으로서만 자본이므로, 자본이 자본이기 위해서는 노동이 자본에 마주서야 한다.”

 

3) 자본은 비노동이고 노동은 비자본이다: 노동자가 끊임없이 반복된 노동 후에 언제나 살아있는 직접적인 노동 자체만을 교환해야한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매일 반복할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력을 낭비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20년 동안 지출할 그의 전체 노동능력을 가져간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매번 생명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20년의 생명을 매번 조금씩 나눠 쓰고 있는 것이다. -> 자본은 노동자의 시체더미다.

 

* ‘자본은 필요하지만 자본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반박: 대자적으로 실존하는 노동이 노동자이듯 대자적으로 실존하는 자본 역시 자본가이다. 자본을 개별적인 자본가에서 분리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유일한 노동자에게 맞서 있는 유일한 자본가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다계급적 재생산. 뼈아픈 적대의 확인. 자본이냐 생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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