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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불취불귀不醉不歸 / 허수경, MOT-wing

 

 

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그녀의 시가 물미역처럼 몸에 치덕치덕 감겨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원래 시는 언어이고 기류이다. 만져지지 않는 헛것이다. 그런데 어떤 물질성으로 육박해오는 경우가 있다. 정서감염이 어찌나 강력하던지 세미나 전에도 시름시름 앓더니 세미나 후에도 여음이 가시질 않았다. 손에서 내려 놓은 첼로가 지혼자 계속 울리는 듯했다. 아니다. 첼로 아니다. 허수경은 선술집 작부감수성이다.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는 술잔에 흡빨리는 것처럼 뱅뱅 어지러웠다. 미안하게도 다음 시인 시가 읽히지 않았다. 일주일에 시 한권이 무리인가 처음 생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시세미나에서 몇몇이 고백했다. 자기도 그랬다고. 시집을 덮어도 끝나지 않는 시. 다른 시의 독해에까지 끼여드는 시. 어차피, 이 세계에는 단독자도 없고 단절도 없다. 조금씩 걸쳐있고 상호침투하는 관계. 마치 첫번째 남친의 언행이 두번째 남친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듯이 말이다. 시를 읽을수록 느낀다. 시는 혁명적이다.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노동을 거부하고 딴짓하게 한다.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된다. 나의 정상성은 나를 잊고 제쳐두고 사는 것이었을까. 날마다 시 읽고 음악 듣고 살면 그건 너무 폐인같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한다. 스스로가 그렇게 죄의식 갖는 신체가 되어버린 게 안쓰럽다. 시 때문에 일주일, 이주일 좀 취한 듯 꿈꾸듯 사는 게 뭐 어때서.

오늘 저녁에 선배를 만나 저녁을 먹었는데 허수경 시 좋아할 것 같아서 읽어줬다. 성경책 넣어갖고 다니다가 전도하는 사람처럼 나 잘 그런다. 제목부터 죽이지. 혼자 가는 먼 집. 좋단다. 시집 사겠단다. 커피가 5천원인데 시집이 8천원이면 미안한 거 아니냐. 삶의 진액인데. 이래가면서 바람잡는다. 맛보기 서비스로 시 다섯 편 정도 읽어줬는데 불취불귀가 제일 좋다고한다.

집에 오는 길. 예전에 시세미나 같이 하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술김도 홧김도 아닌 시김에 문자질을 다 해본다. 언론고시 준비하다가 모 신문사 기자시험을 한번 봤는데 덜컥 합격해버렸다. 가지 말라고 말리기도 난감하고 안 말리기도 찝찝하고, 내 기준에 좋은선택은 아닌데 그걸 강요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래서 애정어린 고별사만 건넸다. '거기 사람들 너무 합리적이고 명민하고 멀쩡하다. 당신의 하루하루는 아마 아무 것도 바뀌는 건 없을 거다. 하지만 5년 뒤 당신의 삶은 이상한 곳에 가 있을 확률이 높다. 적당한 때 털고 나와라.' 그게 쉽지 않을 거란 거 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를 합리화시키면서 살아간다. 곤경에 처하면 자기자신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데 능하다. 조직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기 전까지는 사람은 잘 안 바뀌더라만. 그래도 옆에서 누군가는 말을 꾸준히 해주어야 한다. 같이 시를 읽었던 동지로서 당신을 적진에 보내놓고서 시방 내가 맘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그가 고맙다며 껄껄 웃는다. 시 안 읽은지 오래됐다고 머쓱해한다. 경찰서 전전하는 수습기자가 시 읽을 시간 어디 있겠냐마는, 읽기 전에는 시를 위한 시간은 생기지 않으니까. 2년 뒤 경력기자 시험 보고 꼬옥 이직하라고 당부했다.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널 묶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