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글쓰기의 최전선]



마지막 수업은 엠티를 갔다. 연천 김융희선생님 댁으로. 서울역에서 전철타고 동두천에서 내려서 기차나 버스로 갈아타는 코스. 대략 2시간 넘게 걸린다. 황금 같은 봄철 주말. 요즘은 회사에서도 회식이나 야유회를 가지 않는 추세라고 들었다. 젊은 직원들은 예사롭게 빠지고 대놓고 싫어한다니, 글쓰기반 엠티를 계획하면서도 내심 걱정했다. 안 가는 사람이 절반을 넘으면 어떡하나, 갈수도 아니 갈수도 없고. 왜 나는 아직도 엠티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잠시 자책했다. 그냥 근처 밥집에서 거나하게 뒷풀이를 할까 망설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므로 엠티를 강행하기로 했다. ?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가장 슬픈 가난은 추억이 없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기억을 파먹고 산다. 또질투유발 장치로 사람만한 것이 없다. 주변에 자기를 자극하는 글벗을 많이 오래 두어야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상호 우정의 금자탑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니 나는 수업시간 마다 삐끼처럼 같이 가보자고 졸랐다. ‘나이 들면 관광은 다녀도 엠티 갈 일은 없다’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아니면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 ‘죽을 때 기억나는 순간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렸던 한 시절 아니겠는가등등. 출석률이 높았다. 마지막까지 수업에 나왔던 이들 중 서넛 빼고 13명이 모였다. 햇살 뜨거운 6월 둘째 토요일. 덜컹거리는 시외버스 39-2번 뒷자리를 점령하고는 삼삼오오 떠들다가 도신삼거리에서 하차, 우리는 한적한 시골길을 개미처럼 줄지어 걸었다.

김융희선생님이 점심을 한상 차려놓으셨다. 목살을 굽고 십여 종의 야채를 씻고 쑥국을 끓이고 그리고 막걸리와 한국 전통 김치의 모든 것. 묵은지, 총각김치, 배추김치, 파김치, 양배추 김치가 망라됐다. 우리는 허겁지겁 밥술을 뜨고 김치와 고기와 야채를 깨끗이 비웠다. 너도 나도 너무 맛있다” “김치가 끝내준다고 감격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숫자가 모여서 먹으면 뭐든 맛있지~” 일손이 많으니 설거지도 일사천리. 후다닥 치우고 마당과 별채로 뿔뿔이 흩어졌다. 짐을 풀고 산책하고 씻고 옷 갈아입고 커피 마시고...한준씨의 믹스커피가 고객감동 수준이었다. 비법은 해병대. 군생활 동안 수천 잔의 커피를 생산하며 커피물 농도 맞추기 달인으로 등극한 것. 그를 신의 손으로 단련시킨 상사의 명령어가 압권이다. “내 커피라인은 여기까지다!"

오후 4시 방에 둥글게 앉아 인터뷰 에세이를 읽었다. 인생의 멘토를 만나고 온 귀선샘. 대안학교 동료교사 이야기를 쓴 혜인샘, 편의점 사장과 고객으로 만나 멘토가 된 한준샘의 선배이야기, 경수샘의 친구 특수학교 교사의 교육관, 도도한 스물아홉 커리어우먼 유정샘이 만난 직장상사 상무님의 카리스마, 대치동 수학학원 원장의 교육관을 담아온 경숙샘, 영화감독 김전한을 만나 외로움의 가치를 발굴해낸 정민샘, 달달한 신혼을 보내는 가연샘 친구가 사는 법, 세계 최고의 서점을 만들겠다는 야침찬 계획을 가진 시네필 출신 남편을 인터뷰해온 정연샘, 그리고 11년차 동거녀 할머니의 육성을 살려낸 글로 심금을 울린 지오샘..과제를 못 해왔지만 끝까지 함께 신의를 다하며 동료들의 글을 보아준 병채샘, 지연샘.

우리는 글을 읽다가 중간에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시원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어둑어둑 밤이 될 때까지 글을 읽었다. 유정샘과 가연샘이 나폴레옹제과점표 초콜릿을 선물로 가져와 나눠 먹어가면서 열량을 보충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방에서 곤충과의 전쟁을 벌이며 나머지 글들을 읽었다. 김융희선생님이 물으셨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재밌게 하길래 5분마다 웃음소리가 나느냐. 재밌었다. 원래 남의 글을 읽고 듣는 행위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콘크리트 건물 강의실에서 글 서너 편만 읽으면 머리가 아파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공기 좋은 시골에서 읽으니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자연에 자리하고 앉아 글 읽고 담소 나누는 선비가 된 듯도 하였다. 그 많은 글을 거뜬히 읽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시상식. 그간 출석과 과제를 100% 수행한 3. 초롱-옥기-지연샘. 앞의 두 분은 오십을 목전에 둔 기혼녀다. 초롱샘은 직장생활까지 하면서 모든 과제를 완벽히 해왔고, 글 실력도 매주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인터뷰도 가장 원칙대로 써왔다. 각각 시집 두 권 상당의 책을 받았다. 동생 결혼식으로 안타깝게 1회 결석의 오점을 남긴 지오샘, 그리고 정민샘은 과제를 빠짐없이 제출해 시집 한권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둘 다 대전에서 다녔다는 점. 글쓰기반에서 만나 삼삼한 우정을 나누는 그들이다. 그리고 과제 미제출 및 지각으로 가장 많은 벌금을 낸 기부천사한준샘은 우수납세자상. 나에게 두 권 있었던 문학과지성사 1번 황동규 시집을 선물했다. 나머지 동료들에게는 완소 노트를 주었다.

 

이번 엠티의 하이라이트는 반딧불이 단체관람이다. 시상식까지 다 마치고 새벽 1시 쯤, 우리는 야밤산책을 나갔다. 그러다가 집 앞에 숲속에서 반짝반짝 별빛처럼 발광하는 반딧불이의 일대 빛의 향연을 본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순간. 경이로운 자연. 나를 비롯한 내츄럴본서울여자들은 반딧불이 실물로 처음 본다며 탄성을 터뜨렸다. “, CG작업 같다” 9.11 테러에서도 그랬듯이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이미지 범벅의 시대를 살다보니 이리도 헷갈릴 수가 없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반딧불이가 눈앞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느릿느릿 지나가는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한없이 따라가는 눈길. 온몸. 조금 오버하자면 책에서만 보았던 개념, 내가 공간으로 열리는 '탈존'을 몸소 경험했다.

거미줄에 매달린 반딧불이 덕분에 꼬리부분의 발광지점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소지자들은 촬영을 시도했으나 잘 나오지 않았다. 작고 소박한 너무도 야무진 자연광의 작동에 압도당한 탓인지 웅성웅성 떠들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침묵과 빛으로 감싸인 밤. 반딧불이 빛나는 밤에. 깜빡깜빡. 저기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어쩐지 익숙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그대인가. 반딧불이 한 번, 하늘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반복하면서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가슴을 채우고서야 그 자리를 떴다.

우리가 자는 방에 노래방 기계가 있다. 원래는 노래도 좀 부르고 놀 계획이었는데 반딧불이를 알현하고 왔더니 기계따위는 시시하게 느껴졌다. 반딧불이로 영혼을 데우고 오자 차가운 마이크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도시 밤문화 의욕 급상실. 그래도 술은 마셔야지. 맥주와 과자가 그립다고 누군가 말하자 유정샘과 가연샘이 스마트폰으로 편의점을 검색해서 차를 몰고 읍내까지 핑하니 댕겨왔다. 그 많은 안주와 술을 다 먹어치우고 새벽 4시에야  잠자리를 폈다. 남성동지 2명은 본채에서 편히 자고 여성동지들은 굳이 한 방에서 자겠다고 해서 난민수용소처럼 열두 명이 나란히 성냥처럼 낑겨 누웠다. 아침이 밝아오자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잠자리를 사수한 최후의 일인은 이불을 뒤집어 쓰면서 울부짖었다. "저 문을 확 떼어버리고 싶다"    

시골에 살면 부지런해지나 보다. 공기 중으로 볕이 듬뿍 쏟아져 온몸을 간질이니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삼시세끼 같은 반찬에 먹어도 밥은 왜 이리 맛있느냐며 또 한 주발 씩 식사를 마치고 밭에 우르르 나갔다. 상추랑 시금치, 근대, 치커리 등 각종 야채를 뜯어서는 한 봉지씩 챙겼다. 김융희선생님 가라사대, 알아서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면서 서운함을 표현했기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수확에 임했다. 저 귀한 것들을 씨 뿌리고 실하게 키워놓았는데 누구의 입에도 들어가지 않고 시들어버린다면 정말 속상할 것이다. 결국 농사를 짓는 건 나누기 위해서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닌가.

밀도 높은 놀이. 엠티가 끝났다. 김융희선생님이 선물한 그림 두 점은 할머니에 대한 글을 감동적으로 쓴 지오샘과 성실종결자 초롱샘에게 돌아갔다. 각자 집으로 갔다. 예정된 일이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헤어진 다음 날. 궁상맞게 그 노래까지 떠올랐다. 그런 표준적인 이별 감정은 아닐진대 하루 이틀 사흘... 왠지 모를 허전함이 목 끝에서 찰랑였다. 토요일이 길었다. 한 보름 걸렸다. 달이 차고 기우는 동안 서서히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처음은 얼마나 무서운가. 첫 사랑, 첫 아이, 첫 친구, 첫 스승, 첫 동료. 처음이라서 서툴고 두렵고 설레고 그리고 애틋한 그 무엇. 한 존재의 급진적 변화를 끌어내는 첫 바이러스들. 몇 군데 급류같던 인연을 통과하고서 글쓰기의 최전선 동지들을 만나며 나는 믿게 됐다. 인간은 처음 인연에 매몰된 만큼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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