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독회 풍경을 기사로 써보세요.” 지난시간 돌발과제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수업시간에 엄청 조용했다. 한 사람이 시를 낭독하고 소감을 발표할 때면 사각사각 볼펜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침묵을 깨는 말말말. 그렇게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당신에게 여행은 무엇이냐. 중저음으로 깔리는 물음들. 잔뜩 긴장한 표정들. 지금 청문회 아니니까 편하게 대화하라고 말하는데 웃음이 났다. 처음엔 다들 토시 하나 안 놓치고 열심히 적더니 나중엔 손놀림이 점점 느려졌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운 빠지는 일. 듣기도 어렵고 쓰기도 고되다. 나는 조심스레 예측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의 편집은 저마다 다를 것이라고.
반만 맞았다. 의외로 대동소이한 글들. 예비작가들은 자기 육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일에 서툴렀다. 여행, 죽음, 학창시절 추억 등 스토리가 강렬한 에피소드, 즉 기억하기 쉬운 사례는 모두의 글에 빠짐없이 등재됐다. 시에 대한 인식변화 역시 공통으로 언급했다. 대학시절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를 읽었으나 해석하기 급급했고 기형도는 지적 허영같아 멀리했다는 정연씨. “처음 해 본 낭독회는 내가 미처 놓친 시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정의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 들려주는 고유한 풍경에 흠뻑 취해도 보고, 한편 스스로에게 감정을 이렇게 드러내도 괜찮다며 다독이는 그런 자리 말이다.”
글쓰기수업에서 가장 유연한 신체-변용 능력을 보여주는 경수씨. 이번에도 시가 주사바늘처럼 들어왔음을 고백한다. “낯선 시를 통한 내 몸의 변화가 좋다. 또한 시를 읽으면서 내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도 시가 똑같이 읽힌다면 그만큼 내 삶도 정체되어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대로 시를 즐기기 위해서는 나를 세상에 던져 봐야한다." 자타공인 최전선의 모범생 초롱샘의 결심 또한 다부지다. "여전히 시 앞에서는 아직도 국어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기다리는 학생이 된다. 아직 내게 시는 가깝지가 않다. 시와 친해지자. 거부하지 말자. 이 기회에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닳도록 음미해보자 결심한다."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나의 열변. 침 튀긴 말들이 조금씩 다르게 기록됐다. 혜인샘의 다짐.‘고정된 편견을 없애기 위해, 내 경계를 허물어 세상 어디서든 즐길 수 있기 위해 시를 읽으련다.. 읽히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은유샘의 말처럼 햇빛을 쐬듯이 글자를 쐬련다" 옥기샘이 통쾌했다는 말. “우리가 기형도나 니체에게 내 생각이 맞는지 결제 받을 일은 없잖아요." 귀선샘이 인용한 나의 말은 가장 근사해서 가장 낯설었다. '시를 읽으면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영역이 더 커진다. 시집이 때로는 삶으로의 입구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을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의 주인공이 된다.'
10차시 교재, 시집 같은 철학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좋아하는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니체는 낙타-사자-어린아이 세 단계 변화를 말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면서 삶을 사막으로 만들어버리는 낙타. 관습적 명령을 거부하며 '나는 하고자 한다' 말하는 사자. 그리고 거룩한 긍정의 화신 '어린아이'로의 변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다가 파도가 휩쓸어 가도 까르르 웃고 다시 성을 쌓는 아이들. 우리는 아이들처럼 잔혹한 우연을 즐거운 놀이로 긍정할 수 있는가. 니체를 읽고 ‘아름다운 몰락’을 자처해직장 그만 둔 사람 많다니까 아눈씨가 조심스레 손을 든다. 몇 년 전에 차라투스트라의 이 부분을 읽다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자처럼 살고 싶은 용기가 생겨서 교직을 그만 두고 대학원에 갔다고 고백한다. 신기했다. 시는, 시 같은 니체의 글은 또 다른 ‘삶의 입구’를 열어준다.
영혼의 해방에 기여하는 시를 허하라. 그동안 미뤄온 오래된 숙제. 정민씨의 요청에 따라 착수했다. 책꽂이를 서성이고 시집을 뒤적였다. 마음의 저울에 달아보았다. 손때가 묻은 순으로 열권을 정했다. 다른 삶으로 들어가는 열개의 입구.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기형도의 시를 읽고 거리가 통째로 내 것이 됐다. 버스정류장의 점령은 값지다. 삶의 영토가 확장됐다.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을 사랑하면서 사는 일이 덜 불안해졌다. 용기가 생겼다. 심지어 재밌다. 거리에서 심심하지가 않다. 내 육체를 통과한 기억할만한 지나침의 장면이 늘어갔다. 기형도표 입체안경. 세상이 다르게 감각되는 어지러운 체험을 나는 곧잘 즐긴다. 고흐의 그림과도 같은 친근함은 어쩔 것인가. 섬세한데 조잡하지 아니하고 원색적인데 질리지 아니하다. 한참 보고 있으면 빨려든다. 무한영감의 원천. 그의 많은 시구를 왼다. 나의 언어는 기형도에 빚지고 있다.
이성복 『남해금산』 문학과지성사
처음 읽을 때 어려웠고 오십 번 쯤 읽어도 어렵다. 이 엄격함이 좋다. ‘시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시가 뭐냐고 묻는다면 증거로 제시하고 싶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말해지는 시집. 이성복의 시는 몽환적인데 시어는 쉽고 명료하다.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좋다. 뒷 표지 글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사랑근본주의자인 나를 위한 연가라고 믿고 있다. 그리운 누군가에게 읽어주다가 울고 말았던 민망한 추억. 마흔을 앞둔 어느 날, 한 권을 통째로 손수 필사한 유일한 시집.
김수영 『거대한 뿌리』 민음사
‘여편네’라는 단어. 알싸한 술주정 같은 때 묻은 시어들. 때로는 선사의 깨달음 같은 날카로운 통찰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삶에 쉽게 타협하지 않는 정신들. 사는 일에 흔들리고 자신 없어 하면서도 자기응시를 멈추지 않는 김수영의 고집스러움에 반한다. ‘시시한 발견’으로 자기초극을 이루는 사람. 솔직한 어른. 그가 그리는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 까만 거미같은 시어가 아름답다.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황지우의 시에는 가슴 메어지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유연한 정신의 몸놀림. 능란한 말부림. 배우고 싶은, 배워지지 않는 도저한 황지우다움. ‘이혼한 아내를 결국에는 찾아가는 사내처럼 동숭동엘 갔다’는 그의 시어처럼 나는 흐린 주점으로 가끔 그를 찾아 간다. ‘하루를 저질렀다’는 느낌이 드는 밤이면 마루에 누워 두 팔 뻗어 벌서면서 읽는다. 시집이 얼굴위에 아프게 떨어질 때까지.
김종삼 『북치는 소년』 민음사
맑고 향기롭게. 참되고 바르게. 그러나 교과서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게. 그것들을 충족하는 순수시 다발. 안개꽃 같은 무채색의 시집. 잠언적인 시에 대해, 그러니까 잠언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시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김종삼은 예외다. 보기에는 맹물 같은 시. 마시면 레몬 맛이 난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 한 없이 모던하다.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반전반자본환경운동가의 알몸 시위 같다. 매혹적인 젖가슴처럼 위로 치켜 든 피켓. 둘 다 봐야한다. 눈을 뗄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발적이다. 동시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릎에 팔 괴고 사유를 요청한다. ‘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시가 미쳐 사랑이 될 때까지’ 일필휘지로 쓰여 진 비타협투쟁의 순수시집. 날카로운 첫키스 같은 첫 시집. 최영미의 두 번째 시집부터는 신기 빠져버린 무당의 잠꼬대다.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
여자, 사랑, 외로움의 트라이앵글. 때로는 처량맞게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먹먹하게 쳐들어오는 시어들. ‘까무라쳤다 십년 후에 깨어나고 싶’을 때 최승자를 읽는다. 궁상의 증상이 낫는다. 혈관주사처럼 회복이 빠르다. 정신병원을 오가는 그의 소식이 아프고 반갑다. 개량한복에 호미 들고 텃밭 가꾸는 문인의 노년만 있는 게 아니구나. 환자복 입고 세상을 토해내는 시인의 노년도 아름답구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미친여자겠지만 나에겐 여전히 고혹적인 시인. 오십이 넘도록 예민한 정신성의 날이 무뎌지지 않은 그의 첫 시집.
고정희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들꽃세상
‘너인가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읽어본 적이 없는 황진이의 시조같다. 입에 착착 감긴다. 몇 번 읽다보니 외워졌다. 짧다. 쉽다. 강화도 가는 길. 자유로를 달리면서 한강의 낙조를 바라보면서 읽었다. 문자질 하다가 괜히 한 줄 넣어주기도 했다. 하얀 눈 내리는 어느 겨울에 홍대 골목길 걸으면서 친구에게 암송해주기도 했다. 소주 1병 까고 불현 듯 그리움이 치밀 때, 아름다운 사람 하나 떠오를 때 읽는다.
김정환 『지울 수 없는 노래』 창작과비평사
식빵처럼 변한 시집. 테두리가 밤색이고 본문은 미색으로 그라데이션 처리됐다. 세월의 풍화를 견딘 시집. 시편들이 아닌 시집의 물질성이 나를 끌어당긴다. 뜨겁던 시대. 시가 융성했던 시절. 나 역시 생의 의지가 고양됐던 그 시절. ‘아스팔트에 깔려 들끓던 수많은 것들이 이제사 다시 설운 김을 내뿜고 설움이 모여 사랑이 되고 사랑이 모여서 분노가 되고...’ 한 없이 촌스러운 80년대 적인 날것의 언어들의 성찬. 언젠가 학림다방 창가에 앉아서 읽고 싶은.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 문학과세계사
농사짓듯이 시를 쓰는 사람. 살아온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살아가는 시인. 이라는 내 맘대로의 믿음을 가져버린 이. 대학시절 동기였다는 선배의 증언. 방학이 끝나면 시를 500편씩 지어왔어. 시골에 살고 가난하다고 다 이런 시 쓰는 건 아니다. 그렇구나. 생활인의 자세로 사는 시인에게 경배. 이 세상 모든 가난한 시인들의 지속가능한 창작을 위하여. 매월 시민단체 회비 내듯 정기적으로 시집을 사 모으는 나.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한번 발 담그면 쑥 빠지는 물컹물컹한 반죽의 언어. 말랑말랑한 힘의 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