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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니까


거리, 도서관, 모텔, 버스, 술집...기억에 남는 장소다. 남편과의 연애는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주말마다 집회에 같이 나가고 술 마시는 자리나 공부할 때나 항상 옆에 있었다. 사노맹에서 하는 무슨 강좌에도 손잡고 다녔다. 종로 어디쯤 골목길 같은데 장소와 배운 내용이 하얗게 지워졌다. 낡은 책상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랑 옆자리 남편의 착한 웃음만 흐릿하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다. 잉꼬 같은 동지였다. 그 시절엔 그랬다.

며칠 전 다퉜다
. 이과지망생 아들한테 남편이 너 카이스트 가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다. 세 명이 자살했을 시점이다. 나는 순간 발끈했다. (물론 성적도 안 되지만) 그 죽음의 소굴에 왜 아들을 넣으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남편이 자살은 어느 대학이나 있는데 한겨레가 부풀려 보도했고 그런 편향된 기사에 부회뇌동 한다며 나를 비난했다. 또 경쟁으로 애가 상처받는 게 싫으면서 왜 목동을 고집하느냐 따져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