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드걸의시집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 파블로네루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히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없이 죽었다, 우리의 가나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 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게 그는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 파블로네루다 시집 <충만한 힘>, 문학동네  


 

인천공항에 취재가 잡혀있었다. 어제 연평도에서 국지전이 벌어졌다. 대략 인천 부근이니 가까울 듯싶었다. 슬며시 걱정스러웠다. 애들이랑 뉴스속보를 보다가 엄마 내일 인천공항 가는데... 했더니 가지 말란다. 오늘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니까 아들이 “엄마, 진짜 갈 거예요?” 한다. “아들아, 걱정 마라. 인천공항은 높은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그 어디보다 안전하단다.”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서는데 내가 말해놓고도 기가 딱 막혔다. 한숨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에 사는 게 괴롭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죽어나가는 이 야만과 미개의 나라.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 죽어야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는 사람들. 아,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들. 연평도주민들이 찜질방에서 라면 부스러기로 하루를 보냈단다. 외국 정상들 올 때는 펜스치고 감을 철사로 묶고 별 해괴한 짓을 다하더니, 정작 자기 국민들에겐 인간의 기본 도리도 못 지킨다.  

김포공항역에서 리무진을 타려다가 건너편에 인천공항까지 가는 열차가 와 있어서 그걸 탔다. ktx처럼 눈앞에 모니터가 걸려있고 YTN뉴스가 나왔다.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왔다 갔다 하고 군복 입은 사람들이 강력, 응징 어쩌구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겨웠다. 몇배로 보복한다니. 누구를 또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저러나. 국민을 파리 목숨쯤으로 아는 저들. 속이 훤히 보였다. 자기들 살기 위해서는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를 안 볼 권리조차 없는 이 시끄러운 나라.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도시. 현란한 광고로 온국민을 생각없이 만들고 자기들끼리 칼과 삽을 휘두르고 권력의 배를 불리는 탐욕스러운 얼굴들. 눈을 감았다. 새가 날아갔다. 느닷없이 20년 만에 '새'라는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죽어 너 되는 날의 그리움... 아, 묶인 이 가슴.

 

 

 

'올드걸의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날 이후 / 최승자  (2) 2010.12.14
흰둥이 생각 / 손택수  (6) 2010.12.04
우리 동네 구자명씨 / 고정희  (2) 2010.11.22
버리고 돌아오다 / 김소연  (10) 2010.11.03
내 속의 가을 / 최영미  (4) 201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