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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맑스

정치론: 서론 - 인간본성에서 출발하는 정치적 기획


왜 읽는가. 스피노자의 <정치론>이 내게 왔다. 아니 내가 찾아갔다. <에티카>를 읽고 나니 스피노자에게 욕심이 생겼다. ‘이 오빠, 뭐 있다’는 촉이 왔다. 체내 당분이 부족할 때 케이크만 봐도 군침이 돌듯이 그는 내 사유에 필요한 영양소를 담뿍 함유하고 있는 철학자였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나만 아니라 자식, 친구 그리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고귀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책장을 넘길수록 방법이 아주 없지 않다는 희망이 보인다. 다 같이 잘사는 법이란 결국 정치문제로 귀착된다. 현실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 삶을 다스리는 측면에서 볼 때 <정치론>은 맞춤한 책이다.


왜 스피노자인가. 스피노자는 1600년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당시 서구는 오랫동안 지켜오던 것들이 흔들리며 새로운 방향을 위해서 몸부림치던 시대이다. 격동의 시대를 통과하며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삶의 현실에 연결시켜 보았다. 체제에 안주하지 않았고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계획했다. 그의 책은 이단으로 몰려서 출판조차 불가능했다. 그만큼 불온했다. 그렇다고 스피노자를 17-18세기에 가두고 시대적 맥락에서만 본다면 텍스트를 풍부하게 읽어낼 수 없다. 2010년 신자유주의의 독소가 뿌리처럼 넓게 퍼진 대한민국에서 ‘반시대적 사상가’의 정치적 기획은 어떻게 쓰임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읽는 자의 몫이다.

왜 윤리학=정치학인가. 스피노자의 정치학은 곧 윤리학이다. 자기 삶의 좋음과 나쁨을 분간하는 법이 윤리학이라면 그러한 자유로운 개인들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 큰 힘의 증대를 도모하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게 정치학이다. 신즉자연을 주창한 스피노자의 자연학=윤리학=정치학 등식이 성립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유리하다며 본성이 같은 개체가 결합했을 때 두 배의 힘이 생긴다고 말해왔다. 스피노자에게는 개체가 이미 하나의 복합체다. 우리가 개인이라고 부르는 개체도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오장육부와 팔다리 등등의 복합체다. 정치체도 마찬가지다. 스피노자에게 국가라는 공동체 형성은 코나투스(존재확장노력)라는 인간 본성으로부터 연유한다.   자연에서 개체를 다루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다룬다. 국가는 더 큰 개체화를 이루며 모든 사람이 하나의 정신으로 인도되는 것과 같다. 이는 고립된 인간으로서 개인과 개인의 결합으로서의 국가를 동일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개인도 국가도 모두 개체지만 그 능력과 본성은 완전히 다르다.


왜 인간본성에서 시작하는가. 스피노자가 이단인 이유는 모든 철학자가 인간의 고매함을 들먹이고 도덕적 통치를 말할 때 스피노자는 인간의 밑바닥을 들추고 거기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학>첫 문장을 보라. “철학자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정념의 변화들을 사람들 스스로의 잘못으로 생겨난 악덕이라고 생각한다.”  정념? 악덕 아니다. 본성 맞다.  철학자가 꿈꾸듯이 인간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지극히 정념에 의해 움직인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철학자보다 정치가를 높이 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성적인 이유에서보다 두려움에 따라 행동함”을 알고 인간의 악덕 방지를 연구하는 정치가가 철학자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정념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본 스토아학파를 비난한다. 

“나는 인간의 행동들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공격하지 않고, 그것들을 이해하고자 신중을 더 했다.”

스피노자의 정치학은 ‘인간 본성’에서 출발한다.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이상이 아닌, 경험과 현실을 참고해서 정치학을 구상한다. "
사랑, 증오, 질투, 야망 등등의 정념을 인간 본성에 있는 악한 빛이 아니라 본성에 내재한 고유한 특징"으로 간주한다. 더위, 추위, 폭풍, 천둥처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현상들이라는 것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연만물은 긍정이고 필연이다. 상어가 정어리를 잡아먹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자연의 법칙이다. 해충/익충을 가르는 것은 인간의 목적론적 시각이다.) 이러한 정념들, 자연의 질서를 '인식'하는 것이 곧 그에겐 '이성'이다. 그리고 "이성과 경험은.. 구성원들의 힘을 하나의 신체, 사회체에 집중시키는 확실한 수단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왜 힘이 권리인가. "국가는 마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정신으로 인도되는 것과 같고, 국가의 신체와 정신은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그런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국가의 행복이 다른 누군가의 선한 믿음에 의지하여" 성사된다고 보지 않는다. 덕성을 갖춘 지도자의 출현과 인도로 세상은 좋아지지도 자유로워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에 반대한다. 그렇기에 "국가의 영원성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불충실하거나 비열한 행동에 이끌리지 않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 고 말한다. 여기서 '법'은 처벌과 심판체계로 이루어진 실정법이 아니라 만물조응의 원리 즉, 운동과 정지, 조성과 해체가 이루어지는 물리적 법칙을 뜻한다. 스피노자는 국가를 도덕이나 정의같은 형이상학으로 설명하지않고 힘의 증가와 축소를 가져오는 배치의 구성, 즉 물리학으로 분석한다.

힘과 권리의 관계. 스피노자 <정치학>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상당부분 기댄다. “얼마만큼 힘이냐에 따라 오직 그만큼의 권리를!”  군주론의 이 표어는 스피노자 철학의 원리를 잘 설명한다. 개체는 능력만큼의 권리가 주어진다. 하늘에서 저절로 뚝 떨어지는 도덕, 천부인권 그런 것은 없다. 힘만큼 확대된 권리가 있을 뿐이다. 정치체가 하나의 신체라면 자신이 표현하는 능력만큼 권리를 가지며 그것을 규제하는 법칙을 따른다. 스피노자의 정치론은 정치적 공동체, 즉 정치적 개체가 어떻게 자신의 안전과 능력의 확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관한 기술이다.

* 매주 월요일 7시 수유너머R  <스니카즈> 세미나 합니다. 스피노자, 니체, 카프카, 들뢰즈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하룻밤에 읽는 철학사> 같은 지루한 철학공부도 하룻밤에 끝장내는 공부도 아닙니다. 튜터 박정수와 좋은 동료들과 함께 강도높게 공부합니다. 쉽다고는 말못하지만 고통이 쾌락이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 좋은 사람과 좋은 가을 보내실 분 언제든 환영합니다. 스피노자 <정치론>으로 지난주에 시작했고 보조교재로 네그리의 <전복적스피노자>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