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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걸의시집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지하철에서 소요했다. 이리저리 헤매면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취재였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잠실에서 무학재까지, 3년간 매일 세 시간 가량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사춘기 시절 나의 자궁이었다. 지하철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친숙하고 중요한 삶의 장소인데 ‘이용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배치에 놓이니까 그 공간이 한 없이 낯설었다. 개찰구 주변 저만치에 나처럼 서성이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열다섯살 정도 되었을까. 얼굴은 검고 키가 작았다. 몸집이 왜소했다. 생기없는 낮은 걸음걸이. 보라색 셔츠에 검은 넥타이로 멋을 냈는데 몇 개월 갈아입지 않은 옷 같았다. 후즐근했다. 내 맘대로 ‘가난한 아이’라고 규정했다.  

수녀님이 대신 역무원에게 말했다. 저 아이가 아까부터 저기 있는데 차비가 없는 거 같다고. 역무원이 표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가난한 아이였다. 역무원이 리모컨 원격조종으로 문을 열어줬다. 그 아이가 개찰구를 나가는 순간, 수녀님이 천 원짜리라도 줘야하나 싶다면서 가방을 열려고 했다. 나도 같이 지갑을 꺼내는데 이미 ‘문’을 통과한 아이가 뒤를 잠시 돌아보고는 가방을 만지는 수녀님과 눈이 찌르르 마주쳤다. 아이는 어정쩡하게 일초 정도 몸을 이쪽으로 틀려다가 뒤돌아 진행방향으로 총총 사라졌다. 나는 불러 세워서라도 줘야하는 건 아니었을까, 후회했다. 밥을 먹는데 아이의 애처로운 눈빛이 냉면 육수 위에 떠다녔다.  

차비가 없으면 밥은 당연히 못 먹겠지.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훔치다가 걸려서 혼날지 모르겠다. 부모는 안 계시거나 아프시겠지. 관절염이 심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키우려나. 시설에 있는 아이가 뛰쳐나왔을까. 동정과 연민의 정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며칠 후 빈곤에 관심이 많은 선배에게 의논이랍시고 말했다. 독거노인도 그렇고 태어나자마자 영아원에 맡겨지는 아이도 불쌍한데 나는 그중에서 청소년이 제일 마음 아프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거나 중국집 배달하면서 노동착취 당할 테고 한참 클 나이에 먹지도 못하고 공부할 나이에 배움에서도 소외되는 아이들. 최소한 기본권을 보장받으면서 길러져야하는데 무슨 죄냐고. 그냥 속상하다고. 그랬더니 선배가 심상하게 말했다. “다 살아. 걱정마라.” 나는 그 아이를 불행한 애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비는 퍼붓고 거리가 캄캄했다. 을씨년스러운 토요일 오전 모란역 근처. 모란시장을 가야했지만 무리였다.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몇 개의 식당을 통과했다. 대부분 술안주를 파는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그 중에 가장 백반집 같은 간판이 붙은 ‘전주식당’을 택했다. 나는 첫 손님이겠거니, 영업을 하려나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라서 튕겨 나올 뻔 했다. 동굴의 박쥐처럼 달겨드는 눈동자들. 얼굴이 벌겋고 눈이 풀려 있는 남자들이 일제히 출입문 쪽을 쳐다보았다. 손님이 많았다.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촘촘히 놓여있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아주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주방에서 나와 “저기 앉으시라”고 환대했다.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 나는 농촌스릴러물에 나오는 잠입형사처럼 구석에 앉아 눈치를 살폈다. 오전 11시에 저렇게 취하려면 최소한 10시부터는 마셨겠지. 주방의 분주한 손놀림과 아저씨들의 질펀한 자세가 비단 오늘만은 아닌 것 같았다. 참이슬로 속을 씻어내지 않으면 처음처럼 살아갈 수 없는 고단한 삶일까. 아저씨들은 그렇다 치자.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왔다가 일감을 못 얻고 열 받은 김에 한잔 할 수도 있다. 건너편 테이블의 인적구성이 의아했다. 여덟팔자 눈썹의 순박한 중년 아저씨와 선량한 시민의 어머니 같은 아주머니, 그리고 블라우스와 스커트 차림의 긴 생머리 이십대 아가씨 둘. 그들은 소주와 아구찜을 먹다가 반도 더 남은 상태에서 또 샤브샤브를 추가했다.  

테이블에 음식과 술이 넘쳤다. 아가씨들은 이마까지 술이 차올랐다. 화상 입은 것처럼 빨간 얼굴. 무표정했다. 술 마시면 더 괴롭거나 더 즐겁거나 둘 중 하나인데, 판단중지가 일어난 듯 보였다. 가장 설득력 있는 진부한 설정으로 술집아가씨와 업주 사이라 하기엔 어딘지 느슨하고 어설펐다. 그렇다고 가족의 지겨움도 안온함도 없다. 여하튼 통속적이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에서 변주되는 그 숱한 삶의 유형으로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다. 어쨌거나 다 살아간다. 세상에는 무수한 삶이 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는 뜻이다. 알고 싶은. 그러나 알 수 없는. 그래서 보고도 모르는.